旅行落穗

하늘엔 천당 지상엔 항주 소주

如岡園 2007. 10. 4. 10:07

 호화호특에서 항공편으로 북경을 거쳐 항주 공항에 도착한 것은 1993년 7월 25일 오후 2시 30분이었다.

 한자 글씨의 미려함에서 서예라는 말이 나왔다고 할 만큼 중국 각지의 한자 현판글씨는 모두 예뻤지만 유독 공항이나 역참에 크게 오려 매어단 글자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항주 공항 건물에 높이 매달린 '杭州'라는 글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5박 16일 전 여행일정의 총괄 안내를 맡은 안내자의 생활 근거지이기도 하여 여기서는 지역 가이드가 필요 없다면서, 신바람나게 자기가 살고 있는 항주를 열을 내어 상세히 소개하는 바람에 친근감이 들기도 하였다.

 한 당 송으로 이어져 온 중국 역사에서, 오 월 남송의 도읍으로 일찍부터 문화가 번성했으며 남송 관요(官窯)가 있어 도자기가 유명했던 곳, 서호를 중심으로 한 명승지 항주는 중국 화동지방 굴지의 고도이기도 하다. 미녀 서시에 비유되어,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비오는 날에는 더 좋다는 항주에는 아닌게 아니라 그런 자연환경을 닮아 모든 여자가 미인으로 보였다. 수밀도 같이 탐스런 볼에 달덩이 같은 얼굴의 전형적 중국 미인의 면모였던 것이다.

 연중 최저 기온이 섭씨 4도를 내려가지 않는다는 이곳 항주에는, 난방은 필요 없어도 에어컨이 유독 눈에 띄게 설치되어 있어, 아열대성 식물의 가로수 숲과 어우러져 북쪽 만주나 북경의 풍경과는 또 다른 이국 풍정을 드리웠다.

 항주에서의 첫 관광은 북송 때 형성된 서호의 둑인 '蘇제'로부터 시작되었다. 東波 蘇軾이 축조하였다는 이 둑은 유독 '蘇제'를 고집하여 빗돌에 새겨 두고 있었다. 호수를 막은 물막음이었으니 '방죽을 뜻하는 '堤(제)'이기보다는 '못'을 뜻하는 '제(* )'가 옳았던듯 싶다. 실제로 '소제'는 둑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그대로 평탄한 평지의 못이었던 것이다. 북송의 시인 소동파가 1089년부터 2년간 항주 지사로 재임하던 중, 20만명의 사람을 동원하여 쌓았다는 소제는 남북으로 2.8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사계절 내내 아침과 저녁으로 미묘하게 아름다움을 바꾼다는 이 소제는 그의 시에서 "사시 좋다고 하여도 봄의 새벽을 최고로 친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름 수양버들 가지에서는 꾀꼬리가 울고 있어 굳이 봄새벽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둑길을 따라 호수에 면한 수양버들가지가 휘늘어진 벤치에는 연인들이 짝지어 젊음을 향유하고 있었다. 중국이 경색된 공산주의 국가여서 사랑마저 얼어붙었을 것이라는 인식은 크나큰 판단착오였음을 실감하는 장면이어서 비디오 카메라의 초점은 여지없이 그 곳으로 쏠렸다.

 그 다음으로 들른 남송 관요지와 남송 박물관에서는 도자기 실물과 모조품을 접하여 고려자기와 비견할 수 있었는데, 그 정교함에서 대국다운 풍모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이튿날은 유람선을 타고 서호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소제의 최남단 화항공원의 동문을 들어섰다. 화가산에서 흘러내린 계류가 이곳을 지나 서호로 흘러든다는 데서 이름지어진 화항공원은 200종 15,000 그루의 꽃나무와 붉은 잉어가 떼지어 있는 홍어지, 500 그루의 모란이 만발한 목단원이 볼 만하였다.

 춘추시대 말기 항주 일대에서 패권을 다투었던 월나라의 왕 구천이 오나라의 왕 부차에게 바쳤던 세기의 미녀 西施에 비유되었던 서호의 풍광은 38도의 더위로 증발한 수증기로 인하여 문자 그대로 서시의 찌푸린 얼굴을 닮아 흐려 있었지만 역시 미인은 미인이었듯이 서호는 아름다왔다. 눈이 모자라게 넓기도 한 서호에는 외국 관광객을 가득가득 실은 유람선이 연락부절로 오가고 세계의 명승지임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나라 이전에는 金牛湖로 불렀던 서호는 둘레 15킬로미터로 호수면을 가르는 白堤 蘇堤의 두 제방이 있는 최적의 하이킹 코스이기도 하단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로 인해 그 아름다움은 한층 더 돋보였다.

 아쉬움을 남기고 유람선을 내렸지만 그 대신 대형 중국식 식당인 杭州飯店에서 접한 고급스런 중국음식과, 접대하는 여자 복무원의 전통 옷차림을 통하여 항주의 아름다움과 풍요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전형적인 중국미인의 용모와 자태에, 실크의 고장답게 붉거나 푸르거나 흰 비단천을 소재로 한 차이나 칼라의 상의와 옆트임의 치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복무원의 자태는 서호변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하는 풍경이어서 미안함과 실례를 무릅쓰고 비디오 카메라에 찍어 담았다.

 항주반점 서쪽 옆에는 금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운 남송의 무장 악비를 모신 岳廟가 있었다. 금나라의 군사와 싸워 승리해 하북남락초토사(河北南洛招討使)가 되었지만 泰檜 때문에 형벌을 받아 10년의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고 한탄하면서 죽어간 남송의 영웅 악비는 관우와 함께 무묘(武廟)에 제사를 지낸다는데, 그 악비의 廟를 보게 된 것은 서호유람의 큰 부산물이었다.

 '氣壯山河'라고 문루에 현판한 문간을 지나 악묘(岳廟)를 면대하면서 대뜸 눈에 띈 것은 '心昭天日' 이라는 현판과 눈을 부릅뜬 무장의 위압적인 조각상이었다. 하늘의 햇빛처럼 밝게 곧았던 충신의 기상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악비의 묘(墓)는 岳廟 내의 중정 서쪽에 있고, 묘 앞 철책 안에 있는, 양손을 뒤로 묶이고 무릎이 꿇린 4개의 철로 만든 동상은, 악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간적(奸賊) 태회 무리의 모습이었다. 충신과 간적을 대비시켜 후세인을 계세코자 했던 1221년에 창건한 악묘를 보고 관광객은 무심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악묘를 관람하고 영은사(靈隱寺)로 향했는데, 서호변 영은산의 산길 오른쪽 일대에 퍼져 있는 영은사는 서기 326년에 창건된 오랜 절이었다. '雲林禪寺'라는 액자가 걸려 있는 천왕전 안에 있는 사천왕과 우스꽝스런 형상의 미륵보살상, 엄한 표정을 한 韋태天보살상은 모두 남송 목조예술의 걸작이라 한다. 대웅보전에는 중국에 있는 좌불로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대급인 19.6미터의 석가여래상이 안치되어 있어 그 장엄함이 서호의 요염함과 대조를 이루었다.

 돌아올 때는 산길과 나란히 흐르는 강이 서로 마주보는 비래봉 산 속을 지났다. 72개나 되는 환상적인 동굴에 5대부터 송 원대에 걸쳐 만들어진 330개가 넘는 석굴 조각상이 있다고 하지만, 그 모두를 볼 수는 없고 길목에 있는 서너 너덧개의 동굴을 보아 그 모양새와 규모를 짐작할 수는 있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지상에는 항주 소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杭蘇)고 했는데, 또 하나의 지상 낙원인 물의 도시 소주를 지나칠 수 없었다. 항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단 상해에 안착했다. 항주가 그 아름다운 경치로써 낙원의 도시라면 상해는 인간의 도시답게 사람으로 들끓었다. 중심지인 남경동로의 복잡한 거리를 아무 할 일 없이 걷고 있는 사람들, 예원상장에서 윈도우 쇼핑을 즐기는 주부와 가족들, 자유시장에서 벌어지는 말싸움, 황포공원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 길가에서 잠을 자는 어린 거지들, 거리에는 중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듯한 거대한 빌딩이 빽빽하게 서 있는 반면, 중세 유럽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석조의 서양건물, 서민의 생활 그 자체를 보여주는 뒷골목이 공존하는 인간의 도시였다. 열 평 짜리 셋집에서 3대가 기거하며 아직도 마통에 대소변을 받아 오물차에 실어나른다는 안내자의 말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거대한 도시였다.

 외탄(外灘) 일대와 야간의 황포강 유람을 예정했지만 항주에서의 일정이 늦어졌고 소주를 관광하여야 했기에 일찌감치 숙소인 銀河賓館에 투숙하였다.    (1993. 7)

                   여강 김재환의 산문집 <如岡散藁>

                                                                                 ...운하의 도시 蘇州 기행으로 이어짐

                                                               如      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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