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落穗

실크 자수 운하의 도시 蘇州

如岡園 2007. 10. 9. 13:32

 동양의 베니스라고 일컫는 물의 도시 소주(蘇州)를 향해 특쾌연좌(特快軟座) 열차편으로 상해를 출발한 것은 1993년 7월 27일 아침 9시였다. 양자강의 하류 해발 50 미터 이하의 충적평야 지대를 한가로이 달리는 특급열차 차창에 비친 강소성 남쪽 평야지대는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온화한 기후와 알맞은 강수량, 뚜렷한 사계(四季)로 말미암아 옛부터 물고기와 쌀의 마을이라고 하여 농수산물이 풍족한 곳이라 한다.

 그런 평야지대를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소주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였다. 마을의 낮은 주택가 밑으로 운하가 흐르고 그 운하를 교통로로 하여 끊임없이 오가는 배와 화물들, 태양에 그을린 사람들의 씩씩한 모습으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소운하를 따라서 늘어선 검은 기와지붕과 흰 벽의 집들, 아침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한 굴뚝의 연기가, 항주와는 대조적으로 공업화로 인한 오염의 그늘을 지우고 있어 당나라 시대 많은 시인이 물 많은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것을 무색케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들런 곳이 인민로에 있는 소주예술박물관, 수예작품을 제작 전시 판매하는 곳이었다. 수(繡)라면 일정한 그림이나 글자의 본을 헝겊에 그려 색실로 떠서 표현하는 일종의 노작품으로, 흔히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수가 그렇게 생동감 있는 예술품이란 것을 실감하기란 소주에서의 실물을 보지 않고는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실크라는 섬세하기 이를데 없는 천연섬유의 신비와, 끈기와 지혜로 대변되어지는 인간 의지의 소산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실크 천의 수판에 가늘디 가는 명주실로 한땀 한땀 수놓아지는 고양이 자수는 한 마리 살아 있는 고양이였다. 캠코더의 렌즈 속에 금방 바람결에라도 날리는 듯한 그 고양이의 잔털과 그것을 수놓는 여자종업원의 숨결마저도 들어박히는 듯하여 무아의 경지를 느낄 만했다.

 이슬을 머금은 듯한 장미, 춤추는 미녀, 요염을 극한 서양난의 한떨기 한떨기 선연한 꽃의 색 그 태깔... 작품 하나에 몇 개월, 몇 년도 걸리는 작품이 있다 하니, 창조에 대한 인간의 끈기가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어디까지 이를 것인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물관을 나와 풍교로(楓橋路)를 달려 철령관을 지난 곳에 풍교(楓橋)가 있었다. 풍교에서 차를 내려 200 미터 정도 걸어가니 한산사(寒山寺) 산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성당(盛唐) 때의 시인 장계(張繼)의

                      월락조제상만천(月落鳥啼霜滿天)    강풍어화대수면(江楓漁火對愁眠)

                      고소성외한산사(姑蘇城外寒山寺)    야반종성도객선(夜半鐘聲到客船)

                                                   이란 시로 유명해진 절이다.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천감 연간에 창건되었지만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여 청나라 때 보수된 고색창연한 절 안 대웅전에는 붓자국은 희미한 채로 한산(寒山) 습득(拾得)의 자세를 그린 화상이 살아 있는 것과 같이 벽에 선명했다. 장계의 절창인 '풍교야박(楓橋夜泊)'이란 한산사를 읊은 시비는 따로 비각에 모셔져 있었고, 야반종성도객선(夜半鐘聲到客船)의 그 문제의 종은 아직도 둥근 창이 있는 종루에 매달려 있어 일행이 모두 올라 종을 치고 촬영도 하며 객기를 부렸다.

 한산사 산문 앞에는 아름드리 수양버들이 늘어진 사이로 운하가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장계의 시 '夜半鐘聲到客船'에서 객선이 지났을 법한 소운하에 걸쳐진 석촌교를 배경으로 석조의 강변 가드레일에 걸터 앉아 뜨개질하는 소녀가 인상적이었다. 한가로운 양광(陽光)이 수음(樹陰)으로 여과된 조용하면서도 화사한 강변, 간드러진 중국 유행가요의 가락이 명쾌하게 흐르고, 뜨개질 하는 소녀의 손놀림은 부지런하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그림이 한치라도 흐트러질세라 조마조마하며 캠코더의 LCD 모니터를 주시하고 혼신의 열정을 기울여 촬영을 했다. 모르긴 해도 아마추어 카메라 맨으로서는 걸작 중의 걸작이었을 것이다. 

 

 한산사 관광을 마치고 호구(虎口)로 향했다. 호구는 춘추시대 월나라와 강남의 패권을 다툰 오나라 왕 합려(闔呂)의 묘지라 했다.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가 숫돌처럼 평평한 바위가 보였다. 아주 넓은 이 바위는 천 명이 바위 위에 앉아서 고승의 설법을 들었다고 하여 천인석(千人石)이라 하였고 그 끝엔 호구검지(虎口劍池)라는 빨간 글씨가 보였다. 그 왼쪽의 월동문(月洞門)을 나온 곳에 있는 것이 검지(劍池)였는데 사실은 이것이 오나라 왕 합려의 묘라는 것이다. 옛날 오나라, 곧 오늘날의 소주지방은 명검으로 유명했단다. 합려를 매장했을 때도 애검(愛劍) 3천 자루를 같이 부장했다 한다. 지하에 있는 컴컴한 오왕 합려의 무덤을 관람하고 나오니 곧바로, 검지 위에 높이 솟아 있는 운암사탑(雲岩寺塔)이 무너질 듯 시야를 가로막았다.

 

 남의 나라 사적을 낱낱이 뒤져가며 돌아본다는 것은 일정한 여행길에서는 무리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天馬酒家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운하 유람을 하였다. 운하 주위로 물에 잠길 듯이 떠 있는 검은 기와지붕의 흰벽 집들, 운하를 오가는 운송선들은 석재 목재 석탄 농산물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소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유람선 관람이다.

 운하 위로는 오랜 석조의 아치형 구름다리, 그 중에서 보대교(寶大橋)는 교공(橋孔)이 모두 53 개이고 총 길이가 300 미터를 넘는 중국에서 가장 긴 석교란다. 유람선을 타고 우리 일행이 흘러 가고 있는 운하는 천년고운하(千年古運河)라고 불리어 만리장성과 함께 중국의 명소라 한다니 새삼스러이 감회가  어렸다.

 

 그 다음으로 갔던 곳이 졸정원(拙政園), 명나라 가정 연간에 어사였던 왕헌신이 중앙 정계에서 뜻을 얻지 못하고 고향에서 칩거생활을 했을 때 건축한 정원이란다. 호수 축산(築山) 건축 3가지를 조화시킨 이 정원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모든 것을 집대성한 하나의 미술품이었다. 졸정원을 나와 근처 골동품 가게에서 天桃와 선녀가 그려진 화병 하나를 샀다. 大淸康熙帝製라는 낙관이 찍혀 있고 예스러운 느낌이 들긴 했지만 진품이라 믿지는 않으면서...

 

 소주의 모든 아름다움에 취하다가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저녁 무렵에 상해로 돌아왔다.15박 16일의 긴 중국 여행길도 여기에서 접어야 했던 것이다. 상해의 호텔 銀河賓館에서 1박을 하고 짐을 정리하여 공항으로 가는 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참관했다. 상해시 馬當路 306弄 4호,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라고는 했지만 연립주택같은 집의 단 한칸 아래 위층의 좁은 공간이었다. 그래도 이 곳이야말로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가다듬고 나라를 찾으려는 의지를 불살랐던 현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관리실에 모셔져 있는 김구 주석의 흉상이 중국땅 상해를 방문하는 관관객을 지켜 보고 있어 더욱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93. 7)

          여강 김재환의 산문집 <如岡散藁>           

 

                                                 如   岡       金   在   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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