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하늘보다 높구나 추상파의 데크레이션 / 새 멋에 미끄러진 현대 문명의 사생아 / 골목마다 뿌려놓은 / 다방 다방 다방 // 회향병(懷鄕病)에 주접 든 열대 식물들이 / 노상 갈마드는 나그네의 눈초리에 시달려... / 일광을 온통 몰아 내쫓고 / 인조 조명으로 미소를 흘리고 / 자연(紫燃)이 산소보다 풍부한 사나토리엄이여 // 뇌장(腦漿)에 갈증이 들고 / 주머니에서 먼지가 나고 / 일보다 시간이 너무 벅차 / 지나친 무료에 식상이 되고 / 룸펜 룸펜 룸펜 // 커피 한 잔, 엽차 석 잔에 온 하루 세 얻어도 좋은 거리의 응접실 / 어느 손님이나 거부할 줄 모르는 / 인심이 한없이 너그러운 지대 // 밀수품의 처분도 여기에서 / 건곤일척(乾坤一擲)! / 정상배의 거래도 여기에서 / 탈세의 빠게인도 여기에서 / 가다가는 애정의 선을 디디고 넘어 / 일생의 운명을 흥정하는 자유 시장 // 나체보다 투명한 매끄러운 각선 / 하이힐에 얹혀 맴도는 레지들 / 찻잔도 지탱하기 어려운 위태로운 지점 / 돌아간다 / 온 종일 돌아만 간다 // 성층권을 넘지 못하는 듯 다실 안에서만 / 물매미 마냥 돌아간다 / 어제도 오늘도 돌아만 간다 /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곁눈질해 가며 / 내일도 모레도 돌아만 가리 / 너의 이상은 기껏해야 미래를 도살하고 / 현대란 외줄만을 타는 / 부채 없는 광대라 할까."
50년 전쯤의 다방 풍경을 그린 이희승의 <茶房>이란 글이다.
해방 후 현대화하는 한국 사회의 풍토 속에서 현대 문화의 사생아로 등장한 다방의 공간적 분위기와 그 속을 드나드는 손님과 손님을 맞이하는 종업원의 풍정은 물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여실히 그려내고 있다.
다방이라고 하면 차 종류를 조리하여 팔거나 청량 음료 및 우유 따위를 파는 영업으로 차를 매개로 하는 담화 담소 담론의 공간이다.
우리 나라에서 다방이라면 본래 궁정에 공급하는 차를 담당하던 관사(官司)였다. 물론 다방이 그 자체의 성질상 차 이외에 주과 같은 것도 맡아 궁중에 큰 연회가 있을 때 다주(茶酒)와 다과(茶菓)를 차려 놓는 것도 이 다방의 한 임무였다.
근대화가 되면서 사랑방 이외의 담론 휴식의 공간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영업으로 그러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차를 중심으로 한 간편한 음식물을 제공하게 된 것이 현대식 다방의 출발점이 아닌가 한다.
적어도 5,60년대의 다방은 어느 유행가 가사에 그려져 있듯이,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색소폰 소리를 들어가며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룸펜의 놀이터이기도 하고, 할 일 없는 사람이 커피 한 잔에 엽차 석 잔으로 온 하루를 응접실로 세를 얻은 듯 눙치고 앉아 세월을 축내어도 용납이 되는 인심이 너그러운 지대이기도 했다.
이렇게 다방이라고 하면 응당 향긋한 커피의 향기가 있고, 마담 레지가 시중을 들며,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잔잔한 휴식의 공간이요, 때로는 운명을 넘어선 사랑이 흥정되고 정치 경제 사회 현실의 암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장터였다. 그야말로 염량 세태를 한눈으로 저울질할 수도 있었던 곳이다.
인정 세태가 바뀌다 보니 다방의 풍속도도 바뀌게 되었다. 이름부터가 다방에서 찻집으로 커피숍으로 변해 가더니 다방을 드나드는 사람의 계층도 목적도 엄청 큰 변화를 일으켰다. 세포 분열이 아니라 핵폭발이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다고나 할까. 커피를 마시기 위한 것이라면 자판기를 찾으면 되었고, 밀담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무 열린 공간으로 되어버렸으니 변신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옛날식 다방을 이용하게 되는 우리쯤 되는 세대는 몸 둘 곳이 없게 된 것이 탈이다. 옛날식 다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커피숍에는 신세대의 젊은 사람들이 판을 쳐 새로운 풍속도를 그려 가고 있으니 분위기를 깨게 마련이고, '테이크 아웃(take out)' 같은 데서 셀프로 서서 마시거나 코딱지 같은 의자에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 홀짝거리는 것도 같잖다. '스타 벅스'니 '커피 빈'이니 하면서 대형 브랜드로 산업화하여 카페모카 카페라떼 카라멜마끼아또 같은 요상한 이름의 4,5천 원짜리 커피를 마셔야 되는 상황도 어이없는 일이다.
다행하게도 전통 찻집이라는 게 있어 그만그만한 집을 찾게 마련인데 그것도 분위기 나름이어서 역겹기는 마찬가지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구닥다리 생활 도구를 잔뜩 전시하여 골동품상을 연상케 하는가 하면, 시인이며 문인이며 서예가며 동양화가며 하는 사람들의 잡다한 작품을 늘어놓아 억지 춘향 격으로 예술품을 감상해야 하는 고역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다향(茶香)에 취하고 향수에 젖고 정담에 빠져들 수 있는 쉼터를 찾기란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으니 우리 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뒤처진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저 세상을 외면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세월을 축내거나, 아니면 등산 낚시라도 하여 건강이나 챙기고 사념(思念)을 살찌우면 그 아니 좋으랴. 하지만 사람살이가 어찌 그렇기만 한가.
일 년 중 절반을 미국에 절반을 서울에 걸쳐 살아야 하는 고추친구가 하나 있어, 한국에 있는 동안은 무시로 만나 어울려야 했으니 옛날식 다방 같은 공간이 필요할 때가 많다. 그런 사정에서 이런저런 연유로 발견 아닌 발굴을 하게 된 찻집이 '전통 찻집 茶廊'이다.
우선 다랑(茶廊)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랑(廊)이라는 글자의 뜻이 행랑 혹은 곁채를 일컬음이니,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던 곳이 사랑(舍廊)이며, 그림을 전시해 놓은 방이 화랑(畵廊)이다. 그러하니 다랑(茶廊)이라면 차를 파는 사랑방이 된다. 다방(茶房)이면 이미 커피를 파는 곳으로 개념 지워졌으니, 커피 아닌 전통의 차를 파는 곳으로 다랑(茶廊)이면 제격의 이름이다. 종로구청 민원실 맞은편이니 한양의 4대문 안 그 중에서도 중심이 아닌가. '茶禪一味'라는 간판 격 족자 하나에 남농의 그림 한 폭, '獨向雪中開'를 제자(題字)로 한 석정 스님의 매화 그림 한 폭이 분위기를 잡는다. 그 밖의 데커레이션(decoration)은 해석 나름이고, 주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번잡하지 않아서 좋다.
전통차로 한정된 메뉴 탓인가 아니면 불교적 분위기 탓인가 아무튼 차 한 잔 달여 내놓고 참선삼매(參禪三昧)에 빠져도 좋도록 되어 있다.
<남다병서>에서는 선사(禪師)의 옛 정업(淨業)은 좋은 차 달여 놓고 참선에 드는 일이요 남는 일이란 한묵(翰墨)으로 고요히 즐기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경지에 빠져들 만한 차의 애호가도 아니요, 불교적 참선이나 서예에 빠져들 위인들도 못된다. 그냥 사랑방처럼 조용한 공간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머리 맞대고, 자라면서 공유했던 추억을 반추하고 정담을 나누고 싶어 이 다랑을 찾아든 것인데, 그러다 보니 차를 생각하게 된 것이고 그림을 보게 되고 다구(茶具)를 논하게 된 것이다.
중국 선(禪)의 비조(鼻祖) 달마가 정진을 하기 위해 눈시울을 베어버렸는데 거기서 차나무가 탄생했다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설일 것이고, 아무튼 차는 명상을 지속하게 하여 정념(情念)을 극복하고 평온함을 찾게 한다는 상징성을 띠는 마실거리임은 분명하다.
전다(奠茶)라 하여 죽어간 선인이 모두 신이 되기를 기원하며 차로 제사를 지낸 것과, 멀리 있는 친척이 죽었을 때 제사에 참석할 수 없으면 차를 대신하여 보낸 일이나, 남녀의 혼사에도 차를 올리고 혼례를 다례(茶禮)라고 했던 것을 보면 차는 의식(儀式)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불교에서 차는 깨달음의 본질을 암시하는 초월적 경지를 나타낸다고 한다. 언어적 표현을 초월한 경지와 그 이후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진실한 삶의 방법을 차와 함께 이야기한다는 발상일 것이다.
중국을 자주 드나드는 과정에서 다구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의, 자사호(紫沙壺)에 관한 이야기는 전통 찻집 '茶廊'에서이기에 더욱 어울린다.
중국은 차(茶) 문화의 발상지이며 다구(茶具)는 차 문화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인데, 그 중에서 강소성(江蘇省) 의흥(義興) 정촉진(丁蜀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용 흙인 자사(紫沙)로 만든 자사호(紫沙壺)가 유명하단다. 자사라는 붉은 모래흙으로 만들어져 있어 통기성과 차즙을 흡착시키는 작용이 뛰어난 고가의 자사호야말로 자사 흙이 낳은 황금알이요, 양호(養壺)로 품격을 높여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세전가보(世傳家寶)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저널에 몇 차례 연속으로 글로 써서 남긴 자사호에 대한 기록을 음미하며, 중국 여행 때 공항에서 사왔다는 유사품 자사호에 보이차를 달여 서빙하는 다모(茶母)에게 농을 거는 여유로움도 누릴 수 있는 전통 찻집 '茶廊'이, 아무래도 우리들에게는 걸맞은 다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마에 붉은 머리띠 두르고 쟁취해서 밥값을 2천 원으로 묵어둔 대학 구내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스타벅스 커피빈 같은 데서 5천 원짜리 카라멜마끼아또 커피 한 잔을 쏘는 젊은이에게는 할 말이 없지만, 노변의 향수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한 우리같은 세대에게 있어 다방은, 다정한 사람이 만나 교감을 이룰 수 있고 사념 사색을 펼치며 고독을 달랠 수 있는 자리이기에, 다방이 늘상 그러한 공간으로 남아 있기를 기대하고 싶은 심정이다. ( 동인지 <길> 8호. 2007. 11. 30 )
如 岡 金 在 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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