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월 대보름
정월 15일(2008년은 2월 21일)을 상원(上元) 또는 대보름이라 한다. 새해 들어 처음 맞는 만월(滿月)이자 세수(歲首) 명절이 끝나는 날이다. 따라서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설날 못지 않게 중요시된 날이다. 설날부터 계속되었던 근신과 휴식은 이 날을 마지막으로 끝이 나고, 다음날부터는 농사일에 접어들게 된다.
오곡밥을 지어 이웃집과 나누어 먹는가 하면, 하루 아홉 번을 먹어야 좋다고 하여 틈틈이 여러 번 먹기도 하는 날이다.
우리 선인들이 가졌던 삶의 주된 관심은 무병(無病)과 풍농(豊農)이다. 가족 구성원이 무병 건강한 일년을 보내고 농사가 잘 되어 풍년만 든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따라서 농사의 시작을 눈앞에 둔 대보름은 무병식재(無病息災)와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의 주술적 행위들이 절정을 이루는 날이기도 하다.
# 부럼
보름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밤 호두 잣 은행 등을 깨무니 이를 '부럼'이라 한다. 부럼깨기는 나이 수대로 깨물기도 하나 노인들은 이가 단단치 못하여 몇 개만 깨문다. 여러 번 깨물지 않고 단번에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하며, 부럼 깨문 과실은 껍질을 벗겨 먹거나 첫째 것은 마당에 버리기도 한다. 깨물 때에, '일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을 한다. 부럼을 깨면 일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가 단단해진다고 한다.
보름날의 부럼을 위해서 14일 밤에는 땅 속에 묻었던 밤을 파내서 깨끗이 씻어두며 미리 과실을 준비해 둔다.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14일 저녁에 부럼을 위한 과실이 점두에 많이 진열되며, 주부들은 식구 수를 감안해서 과실을 사갔다.
# 귀밝이술
보름날 이른 아침에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해서 모두 술을 한 잔씩 마시니 이것을 이명주(耳鳴酒), 즉 '귀밝이술'이다. 귀밝이술은 뜨겁게 하지 않고 냉주로 마시며, 일설에는 귀가 밝아질 뿐 아니라 1년 동안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도 전한다. 귀밝이술은 부녀자나 아이들도 마셨다.
# 약밥
보름날은 약밥을 먹어야 좋다고 전한다. 보름날 약밥을 먹는 유래는 신라 소지왕 때에 내전의 승(僧)과 궁주(宮主)가 잠통(潛通)하는 것을 까마귀가 알려주었다는 고사에 의한 것이다.
약밥은 14일 밤이나 15일 아침에 만들거니와 찹쌀 대추 밤 꿀 잣을 섞어 쪄서 만드니, 검붉은 빛이 나고 감미가 있으며 오래 두고 먹어도 좋다. 약밥은 여러가지 재료를 섞어서 만든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잔치상에는 으례 오르고 있다.
# 오곡밥
보름날은 다섯가지 이상의 곡식을 섞어 밥을 지어 먹으니, '오곡밥'이다. 쌀 보리 콩 팥 조 같은 잡곡을 섞어서 짓는다. 이렇듯 보름날은 한꺼번에 5종의 곡식을 섞어 밥을 지어먹어야 좋다고 한다. 또 이날은 타성(他姓)의 세 집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해서 여러 집의 오곡밥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평상시에는 하루 세 번 먹는 밥을 이 날은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해서 틈틈이 여러번 먹는다.
또한 보름날에는 제 철에 말려 두었던 무우 가지 시래기 버섯 고사리 등 각종 채소류를 나물로 무쳐 먹는데 이를 진채식(陳菜食)이라 한다. 이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속신이 있다. 한편 밥을 김이나 취에 싸서 먹으니 '복(福)쌈'이라고 부른다. 이날 국수를 먹으면 수명이 길다고 하고, 엿을 먹으면 버짐이 피지 않는다고도 한다.
# 더위 팔기
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더위를 판다. 될 수 있으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이웃 친구를 찾아가 이름을 부른다. 부름을 받은 친구가 대답을 하면, "내 더위 네 더위 먼데 더위 다 사가라" 하고 말하면 더위를 판 것이 되고, 더위를 판 사람은 1년 동안에 더위를 먹지 않으나 그 대신에 멋모르고 대답을 했다가 더위를 산 사람은 판 사람의 더위까지 두 사람 몫의 더위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보름날 아침에 친구가 이름을 불러도 냉큼 대답을 하지 않으며, 때로는 미리 알아차려서 이름을 부르면 대답 대신, "맞더위!" 하거나, "내 더위 사가라' 하고 응수하면 더위를 팔려고 했던 사람이 오히려 더위를 먹게 된다고 한다.
# 대보름 달맞이
대보름날 저녁, 달이 동쪽에서 솟아오를 때면 사람들은 달맞이하기 위하여 뒷동산에 올라간다. 아직도 겨울이라 춥지마는 될 수 있는 대로 먼저 달을 보기 위해서 산에 오르는 것이다.
동쪽 하늘이 붉어지고 큰 대보름 달이 솟을 때에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제각기 소원을 빈다. 농부는 풍년들기를 빌고, 도령은 과거에 급제할 것을 빌고, 총각은 장가들기를, 처녀는 시집가기를 기원한다. 그러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믿어지고 있다. 대보름날 달은 될 수 있는 대로 남보다 먼저 보는 것이 길하다 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산에 올라간다.
대보름 달을 보고 1년 농사를 미리 점치기도 하는 바, 달빛이 희면 우량이 많고, 붉으면 가문다 하며, 달이 진하면 풍년이 들고, 달빛이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 달이 남으로 치우치면 해변이 풍년들 징조이고, 북으로 치우치면 산촌이 풍년든다고 한다.
# 달집태우기
제액초복(除厄招福)과 관련된 대보름 풍속의 절정은 '달집태우기'이다. 마을 청소년을 중심으로 하여 대보름 1,2일 전부터 달집을 만들기 시작한다. 달집은 장대같이 길다란 소나무 세 그루를 베어다가 삼발이로 묶어세운 다음, 그 주위를 대 솔 볏집 등을 쌓아 막는데 달이 뜨는 동쪽은 틔워 달문을 만든다. 달집이 크고 훨훨 잘 타서 연기가 많이 나야 그 해 풍년이 들고 마을이 태평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액운이 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마을마다 경쟁적으로 달집을 우람하게 만들었다. 달이 뜰 때를 기다렸다가 달집에 불을 지르고 부락민들은 그 주위에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농악을 치며 한바탕 즐겁게 뛰어논다.
달집을 지어 태우는 데는 소멸과 밝음이라는 두 가지 상징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 달집을 태우는 행위는 마을의 질병 불행 고통 등 재앙을 제거한다는 것이며 달집을 태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밝은 빛은 떠오르는 달과 더불어 밝음 곧 희망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청솔가지를 덮씨워 많은 연기를 하늘로 올려 보내기도 했는데 이것은 구름을 연상시켜 비를 내려달라는 기원을 담기도 했다.
# 다리밟기(踏橋)
정월 보름날 저녁에 여러 곳의 다리를 밟으면 그 해 다리가 튼튼해지고 다리병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교(橋)와 각(脚)의 우리말이 동일한 데서 비롯된 습속일 것이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울에서는 정월 보름날 밤에 많은 사람들이 종각에 몰려나와 보신각의 종소리를 들은 다음 각각 흩어져 주로 가까운 광통교(廣通橋)와 수표교(水標橋)로 나가 다리 위를 내왕하는데 이것을 답교(踏橋, 다리밟기)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1년 동안 다리(脚)에 병이 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행렬은 밤이 새도록 끊이지 않았으며 군중들은 북을 치고 퉁수를 불기도 하여 매우 소란했다 한다
<열양세시기>의 기록에도, 이 날 열두 다리를 건너면 일년 열두달 동안의 액을 막는다고 하여 재상귀인(宰相貴人)으로부터 미천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다리밟기를 한다고 했다.
# 지신(地神) 밟기
정월 대보름날 영남지방에서는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란 지신(地神)을 위로하는 민속놀이이다. 마을의 청장년들이 모여 사대부 팔대부 포수로 꾸며, 포수는 짐승털로 만든 모자를 쓰고 총을 메어 등 뒤에 멘 망태기에는 꿩을 잡아넣고는 총쏘는 시늉을 하고, 사대부와 팔대부는 관을 쓰고 위용을 보이며 점잖게 행렬의 앞에 간다. 농악대는 징 꽹과리 장구 북을 치고, 그 뒤에는 동민들이 열을 지어 마을에서 넉넉하게 사는 집을 차례로 찾아가 지신을 밟아준다.
대문 앞에 가서, "주인 주인 문 여소, 나그네 손님 들어가오." 하고 말하고는 일행이 문안으로 들어가 농악을 치면서 마당 뒤뜰 부엌 광 등을 돌아다니며 춤추고 논다. 집주인은 지신밟기 일행이 찾아오면 급히 상을 차려 떡과 과일과 술상을 내오고 일행을 대접하며, 때로는 지신을 밟아 주어서 고맙다고 곡물이나 돈을 주어 답례한다. 이렇게 지신을 밟으면 1년 동안 지신의 덕을 받아 복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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