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에 관한 민간신앙
예로부터 결혼은 자식을 얻기 위해서 행해진 것이다. 곧 출산의 전제가 결혼이라는 인식이었다. 그러므로 결혼을 하면 곧 새 생명을 포태(胞胎)하는 임신의 현상이 나타난다. 임신에서 출산까지의 사이에 그 어머니는 태아를 위하여 몸가짐을 조심한다. 불결한 것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더러운 곳에 앉지도 않는다. 이것을 태교(胎敎)라 한다. 새로 태어날 생명은 이렇게 고귀하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이 잉태의 현상을 남녀의 성교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것은 하늘이 지시한 운명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임신에 관한 민간신앙도 많았다. 그 중에서 태몽(胎夢)과 태점(胎占)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것은 오늘에도 일부사회에서는 신앙처럼 믿어지고 있고 믿지는 않아도 여러 모로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꿈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늘 따라다니는 신비일 것이다. 과학자도 이 꿈의 신비에는 종종 굴복하고 만다. 인간이 창조되는 엄숙한 순간에 어찌 꿈의 예시가 없겠는가? 옛날의 성현들도 모두 이 꿈의 신비를 믿었기 때문에 이른바 설몽(說夢) 해몽(解夢)이란 것이 성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석가모니도 공자도 이런 꿈의 일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용꿈을 꾸면 과거에 급제하고, 돼지꿈을 꾸면 돈을 벌고, 꿈에 물을 보면 술이 생기고, 불을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은 거의 상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부녀자들의 태몽이나 혹은 아버지의 태몽은 신비할 정도로 잘 맞는다 하여 정녕 이것은 오늘까지도 신앙처럼 믿어지고 있다. 모시(毛詩)에, "곰과 큰 곰은 남자의 조짐이요, 작은 뱀과 이무기는 여자의 조짐이다." 라고 있는데, 이것은 꿈에 곰을 보면 사내아이를 낳고(熊비入夢), 꿈에 뱀을 보면 딸을 낳는다(훼蛇入夢)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웅이나 성현이 탄생할 때에는 그 어머니의 꿈에 대개 태양이나 별이 입 속으로 들어가서 아기를 배었다는 전설이 많다. 우리 고소설의 남녀 주인공은 모두 이런 신비스러운 태몽을 거쳐서 탄생하였던 것이다. <고려사>나 <연려실기술>에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태몽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어머니가 난초분을 안고 있는 꿈을 꾸고 낳은 아이가 정몽주였다. 그래서 그 이름을 몽란(夢蘭)이라고 했다. 그 어린이 어깨에 북두칠성 모양의 검은 점이 있어서 비범한 어린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몽주 나이 아홉에 어머니는 흑룡(黑龍)이 정원에 있는 배나무에 올라가는 꿈을 꾸고 깜짝 놀라 깨어서 밖에 나가보니 몽주가 배나무에 올라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몽룡(夢龍)이라고 했다가, 관례 후에 몽주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은 태몽이 아들의 성장에까지 연장된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속에서 태몽에 관한 일반적인 공식은, 달이 품에 안기면 귀한 자식을 낳고, 해와 달이 방에 들어오든가, 해와 달이 합치는 꿈을 꾸면 아들이다. 호랑이가 사람을 물면 남자를 낳고, 학이 품에 안기면 귀한 아들을 낳는다. 보리를 얻으면 여자, 조를 얻으면 아들, 앵도나 연꽃을 얻으면 여자를 낳는다. 아내가 비단옷을 입는 꿈을 남편이 꾸었을 때는 남자, 비녀를 얻으면 여자, 가락지를 얻으면 딸을 낳는다고 한다. 이런 것은 모두 오랜 체험에서 터득한 해몽인 것이다.
주사야몽(晝思夜夢)이란 말이 있다. 낮에 생각한 것이 밤에 꿈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탕자(蕩子)는 꿈에도 버드나무 그늘과 꽃밭에서 놀고, 농사군은 밭이랑을 떠나지 않는다 한다. 그러나 몽비망(夢非妄)이라고, 꿈은 절대로 망령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또 무엇인가를 상징하고 있다.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어찌 예시가 없겠는가? 꿈 중에서도 태몽은 역시 신비할 뿐이다.
임신을 하고, 아들일가 딸일가 하는 것이 예나 이제나 가장 궁금한 사실일 것이다. 옛날에는 태점(胎占)으로 이것을 알아보았다.
고구려 10대 산상왕은 일찌기 아들이 없어서 주통촌(酒桶村)에 사는 미녀를 소후(小后)로 삼았다. 이 소후에게서 과연 아들을 얻어서 왕위를 잇게 했는데, 이 이가 11대 동천왕(東川王)이다. 그런데 산상왕의 소후는 본래 주통촌의 서민이었다. 이 소후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무당이 그 태아를 점치고 하는 말이, "반드시 왕후를 낳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낳으니 딸이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왕후' 의 '후'를 따서 후녀(后女)라 하였다 한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태점은 멀리 삼국시대 초기부터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산상왕의 기록은 무당이 점을 쳤다는 것 뿐이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점을 쳤는가에 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대개 태점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경험에 의해서 태아의 성별을 알아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양법(陰陽法)에 의하여 점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임부의 배가 높고 임신 중에 고통이 심하면 반드시 계집애를 낳고, 배가 그리 높지 않고 고통이 없으면 반드시 사내아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딸이란 밸 때부터 어머니를 괴롭힌다는 민속적 신앙이 곁들여 있지만 역시 오랜 체험에서 얻어지는 통계적 결론이라고 생각된다.
음양법에 의한 태점은 너무나 수학적이다. 즉 49를 기본 수로 하고 여기에 포태한 달의 수를 더하고, 이 숫자에 임신부의 연령과 천의1, 지의 2, 인의 3을 더한 위에 사시의 4, 오행의 5, 육률의 6, 칠성의 7, 팔풍의 8을 합한 수를 감한다. 이렇게 하여 남는 수가 홀수이면 아들, 짝수이면 딸이라 한다.
언뜻 보기엔 복잡한 수학 같으나 실은 황당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다만 기본 수의 49는 불교에서 존중하는 걸 보면 불교적, 칠성(七星)은 도교적, 그리고 천지인과 4시 5행은 음양오행설이고 보면 모두 종교성을 띤 다양한 숫자놀음이라고 할만 하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전체 우주의 원리에 의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성별도 이런 우주학적(?)인 계산에 의해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인 것 같다. 생명의 존귀함을 인정한 것은 좋으나 그 숫자에 의해서 성별을 판단하는 것은 황당하다. 그러나 홀수와 짝수로 남녀를 구분한다는 것은 확률로 보아 적중 가능성이 높다.
태점은 이렇게 황당한 것이지만 옛날 우리 민속에서는 꽤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태점보다는 태교가 태아나 임산부를 위해서 더 훌륭한 수양이요 교육이라는 점에서 태교의 유습만은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태교(胎敎)
임신 중에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임부가 지켜야 할 규제 즉 태중교육을 태교라 한다. 보다 좋은 후손을 번식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은 임신 및 출산을 인간사 이상의 신령스런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신령스런 힘을 빌고자 하는 원시심성은 태몽이나 산육민속(産育民俗)을 발전시켰다.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난 태교는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의 규각총서(閨閣叢書), 사주당 (師朱堂) 이씨(李氏)의 태교신기(胎敎新記) 등이 있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집약된다. 즉, 임부에 대한 편한 환경 및 여건 조성, 임부에 대한 정신적 신체적 안정감 부여와 위로 격려, 안식 ,의식주 생활의 안정확보, 금기, 언행의 신중과 삼가, 생물을 죽이거나 잡는 것을 보지 말것, 거짓말 도둑행위 금지, 음탕한 언행의 금지, 항상 바르고 맑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실천할 것, 평소 부덕을 쌓기에 힘쓰고 산후의 준비를 완비할 것,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힘겨운 일을 하지 말 것, 산기가 가까우면 외출 여행 등을 금할 것, 적당한 운동과 휴식을 취하고 태아에 유익한 음식을 먹을 것, 초상집이나 병자가 있는 집에 드나들지 말 것, 타인과 다투거나 남에게 욕설 악담을 하지 말고 이로운 일을 할 것, 항상 배를 따뜻하게 하고 찬 것 뜨거운 것 맵고 짠 음식을 조심할 것 등 위생관리, 생활의 절제와 안정, 정신적인 교양, 정서의 순화, 육아법, 언행의 단정에 관한 교육 사항이 대부분이다.
다른 한편, 임신부에게 주는 태교의 한 방법으로 속신어(俗信語)가 많은데, 예를 들면 토끼고기를 먹으면 토끼의 입과 코 사이가 찢어져 있으므로 언챙이 아기를 낳는다. 오리고기는 발가락 사이가 붙어 있으므로 아기의 손가락 발가락이 붙어 나올 수 있어 안된다. 참새와 꿩고기를 먹으면 아기가 단명하다. 오징어나 문어는 뼈가 없어서 뼈없는 아기를 낳는다. 상가나 부정한 곳에 가면 아기의 사주가 거세어지고, 이빠진 그릇으로 음식을 먹으면 아기가 성장해 출세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남의 결혼식을 구경하면 미숙아를 낳고, 재래식 아궁이에 발로 땔감을 밀어 넣으면 잘 놀래고 울기 잘하는 아기를 낳는다고 한다. 개고기를 먹으면 음탕해지고, 오리고기 닭고기는 아기 피부나 손발이 동물을 닮는다고 했는데, 모두 과학적인 근거는 없고 형태나 성질이나 인상의 유사성에서 비롯되는 비과학적 발상이라 믿을 것이 못된다. 음식의 금기사항이 많은 것은 임부가 음식을 조심해서 먹으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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