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B(논문·편글)

虛山齋의 메일

如岡園 2008. 4. 16. 11:03

(허산재의 메일을 받고 가슴뭉클한 무엇이 있어 여기에 그대로 옮겨 본다)

 

이사 하느라 고생했네.

나 그럭저럭 지내고 있네.

어디를 가나 시골 풍경이면 고향 같지. 설명 들으니 살기 좋은 곳인가 보이.

그러나 여기 떨어진 난 마치 혼자 낙오한 것 같은 고독감으로 세월 보내고 있네.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가까이 있다는 것과 멀리 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네.

의교가 갔을 때도 이렇게까지 허전하지는 않았네. 아마 그 때만 해도 몇 사람이 남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일세.

우리의 인연은 따지고 보면 보통 인연이 아니었는데...

이삿짐 싸던 날 잠간 들렀다가 혼자 바닷가로 갔었지. 내 딴에는 허전한 마음 달래느라고.

서생 배꽃을 보며 바다 갈매기의 여유로운 날갯짓도 보았지만 그래도 빈 가슴은 채울 길 없었지.

내 블로그에 올려진 시 '배꽃'은 그날 쓴 것일세.

 

<배꽃>

 

봄바람은 이삿짐 싸고

바다는 해풍에 울어

울산 서생 산자락에 기어올라

소복 입은 여인의 눈물로 핀다

황천 가는 가마 뒤에

수많은 만장으로 핀다

밤이면 여기 두견의 울음이 또

축축한 발자국으로 지나갈 터

이화에 월백은 아니더라도

거름 냄새 향기로 맡더라도

배밭 가에 앉아

소주 한 잔 먹고 싶다

낙화유수 노래라도 부를 때

노고지리처럼

혀 좀 꼬부러지면 어떠리

 

그 전에 또 이런 시도 하나 썼네.

 

<떠나는 바람>

 

계절이 한때 내 주위를 서성대다가 떠나듯

바람은 한때 나를 맴돌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를 떠난다

바람은 내 술잔 속에 고독 한 줌 집어넣고 떠난다

나는 그 술잔을 들이키며 고독에 운다

때론 강 건너로 떠나는 바람도 있고

때론 산등성이를 넘는 바람도 있지만

모두가 세월 때문에 가는 바람일레라

떠나는 바람이야 뒤도 돌아보지 않지마는

바람이 남기고 간 자국들은 늘 슬픔이다

바람은 떠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떠난 자리에 오는 바람은 그때 그 바람이 아니다

바람이 떠난 뒤에 나는 가슴으로 울어

내 가슴은 자꾸만 여위어 간다

언젠가 나도 누구의 바람이 되어 떠나게 되리라

 

이것은 여강이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언젠가 쓴 것일세.

남은 세월을 가름할 수는 없지만 어디를 가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겠나.

요즘 흔히 쓰는 말로 9988234라는 말이 있더군. 부디 그렇게 되길 바라고 부산 오면 꼭 연락 주게.

사모님께 안부 전하고 건강하게.

 

                                   석양에 서 있는 잡목  虛山齋

 

(그러고 보니 이제 꼭 2 년의 세월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