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B(논문·편글)

書評(2) <한국의 딱지본>

如岡園 2008. 1. 9. 09:53

 언패(諺稗), 언서고담(諺書古談), 이야기책 등으로 불리어 왔던 우리의 국문소설은 적어도 현대문명이 자리잡기 이전까지 재미와 도덕적 교훈을 주고 교양을 높여 주는 유일한 교양 습득의 창구로 사랑받아 왔다.

 빨래터 우물가 사랑방에서 주고 받던 이야기가 어느 재담가에 의해서 한 편의 줄거리 있는 이야기로 형성되어 소설로 정착되기도 하고 몰락 양반이나 중인층의 지적 카타르시스가 소설의 세계로 정립된 이야기책은 가장 대중적인 오락물이기도 했다.

 윤리 도덕의 선양을 위한 가정소설이나 다양한 인생 역정을 그린 영웅군담소설 등 여러 유형의 국문소설들은 교훈성과 오락성을 갖추고 있었기에 남자들이 모이는 사랑방이나 부녀자들의 규방을 중심으로 오락적 분위기 속에서 유통되고 활성화 되었다.

 소설은 설화와는 달리 완결된 서사구조를 갖추고 창작 기록되는 것이므로 문자를 아는 작가와 그것을 독해하는 독자가 전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서책에 의하여 유통되는 성격의 것이다.

 소설의 발생기로부터 15,6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작품이 필사(筆寫)에 의해 유통되었고 18,9세기에 들어와서도 필사에 의한 유동은 계속되다가, 국문소설 독자층의 대중화 현상에 따라 방각본(坊刻本)이 보급되자 이 때부터 인쇄의 방법에 의한 유통이 시작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방각본에 의한 유통은 가변성을 띠고 전사(轉寫)되었던 소설 작품 내용을 고정시켜 주는 데는 한 몫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목판에 판각을 해야 한다는 제한성 때문에 내용을 축약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다종 다양한 소설을 모두 방각본으로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소설의 유통에 획기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이 1910년대의 활자본 간행이다.

 독자들의 수요를 무제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이 매체가 등장하면서 이전까지 일부 독서층을 중심으로 완만한 영향을 끼쳐 왔던 이야기책이 양적, 질적으로 충격적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소재영 민병삼 김호근이 엮은 <한국의 딱지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서책을 통한 이야기책의 유통 면모를 한 눈으로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집이다.

 신소설이 등장하면서 우리의 이야기책은 고대소설로 이름이 고정화되고 신소설과 더불어 활자본으로 유통의 폭을 넓혀 갔다.

 그 당시 활자본의 체제는 4.6판으로, 표지에 작품의 내용 가운데서 흥미로운 장면을 채색 그림으로 그려 독자의 시선을 끌도록 하였고, 내용은 구활자체의 내리받이 조판이다.

 이 활자본의 이야기책을 두고 딱지본 혹은 육전소설(六錢小說)이라고 했는데 딱지본이란, 출판사에서 진체구좌(振替口座)를 표시한 딱지를 붙인 데서 연유된 이름이고(이후 딱지 대신 스탬프로 대신하기도 했다), 육전소설이란 그 당시 국수 한그릇 값인 6전의 염가로 판매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범우사 간 <한국의 딱지본>은 소재영 교수가 머릿글에서 이야기책의 유형과 출판 현황을 상세하고도 간략하게 밝히고 이야기책의 사회적 효용 가치에 대하여 설명하였는데 특히 구활자본이 이른바 육전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급속히 독자층을 넓혀간 사실에 주목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이야기책의 읽기와 이를 통한 대중문화의 형성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1911년 박문서관 발행 <모란병>에서부터 1972년 향민사에서 발간한 <회심곡>에 이르기까지 총 187책의 국문소설 표지를 시대순으로 배열, 천연색으로 영인 수록하여 해설을 가하였고 필사본, 방각본, 딱지본 소설의 백과사전적 구실을 하고 있음은 물론, 서지학적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책은 1921년 당시의 서적조합 가입 서점명, 육전소설 광고문, 판권지 등 딱지본 소설 후면에 수록된 각종 광고 지면을 영인 수록하여 딱지본 소설이 유통되던 당시의 사정을 선연히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작품의 내용 가운데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을 채색 그림으로 처리한 표지는 그 하나만으로도 소설의 내용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춘향전> <심청전> <숙영낭자전> <유충렬전> <배비잔전> 등 200편에 가까운 딱지본 국문소설 원색 표지를 사진판으로 처리한 범우사 발행 <한국의 딱지본>은 현대 이전의 한국적 삶의 숨결을 생생하게 전해 주는 한 권의 풍속화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소재영 민영삼 김호근 편 <한국의 딱지본>을 펴들었을 때, 갑자기 타임 머신을 타고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랑방에서 규방에서 낭낭한 목소리로 <춘향전>을 낭송하며 밤을 지새우던 아낙네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 동보서적 책소식)

                                                                            김    재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