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가 뜨고 앉고 하는 비행장은 넓으나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트엔진을 장착한 비행기라면 이륙과 착륙에 소요되는 활주로 길이만도 최소한 9천 피이트 약 3km가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각종 부대(附帶) 시설에 계류장까지 있어야 하니 그 면적은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내가 젊은 시절에 군복무를 하던 1960년대 초, 대구 동촌비행장 K2 공군기지 역시 제1훈련비행단에, 항공수리창과 수송비행단까지 합하여 비행장으로서는 아주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저 입석 검사동 일대의 너른 평야지대를 두루 수용하고 있었으므로 비행장 경내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활주로나 시설물이 들어선 자리 이외의 비행장 경내는 말하자면 천혜의 초원지대가 되는 것이다. 근무가 없는 한가한 시간에 그 넓은 초원지대를 거니노라면 문득 광야의 보헤미안이 된 듯 자유스럽고, 그런 분위기는 수많은 상념을 부채질하곤 하던 것이었다.
봄이면 눈이 모자라도록 넓은 초원 위로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풀 속에 둥지를 튼 무수한 종달새가 지지배배 뱃종뱃종하고 창공을 날아 올라 비행기의 소음 속에 또 다른 새로운 생명감을 감돌게 하는 곳.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는 풀밭엔 무진장의 메뚜기 가족이 서식해 개구리의 먹이사슬을 이룬다. 메뚜기를 잡아먹고 세력을 불리어 나가는 개구리의 열병식. 그리하여 초원은 한순간 생명체의 일대 파노라마를 펼치고 있는데 이런 적자생존 약육강식하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항공기의 비행을 위협하는 황새가 끼어들고, 무료해진 시간에 개구리의 뒷다리만을 찢어발겨 전기 곤로에 구워 먹는 몬도가네 같은 공군 병사들도 있었다. 그 개구리의 뒷다리 맛이 어찌 그리 참새고기 맛과 같았는지. 그것이 그 시절 동촌비행장 초원의 한 풍경이었다.
이 곳이 농토였을 때 봇물을 끌어들여 농사짓던 도랑에는 또다른 물속 세계가 있다. 비행장의 오염된 기름 섞인 물을 들이키면서 살 수밖에 없게 된 붕어며 미꾸라지며 가물치 등속의 물고기들. 가물치는 그 나름대로 적응력이 강해서 기름으로 오염된 봇도랑에서도 잘 자라고 있었지만 미꾸라지와 붕어 족속들은 망가뜨려지고 있었다. 특히 붕어는 갖가지 기형의 붕어로 변신하여 마치 어항 속 여러 변이종의 금붕어를 보는 듯하여 환경 공해를 실감하기도 했다. 우린 그런 물고기의 사냥에 신바람을 내곤 했는데 종아리 만큼이나 큰 가물치는 단연 그런 물속 세계의 왕자여서 버둥대는 가물치를 손아귀가 벌게 움켜쥐며 환성을 지르곤 했다.
제트엔진 정비실이나 시운전실에서 무정물의 기계를 상대로 하여 정확성과 엄밀성을 생명으로 밤낮없이 나사를 풀고 죄고 부속품을 교환하는 정비사 생활이다 보면 기계가 아닌 생명체에 접하는 신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과 기계와 그리고 다른 생명체, 이 삼자는 철학적 생명관적 측면에서는 구별될 수 있어도 기계관적 측면에서는 동일시 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 기계를 만지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제트엔진 정비를 하는 우리들에게 엔진 기관은 한 생명체로 보여진다. 따지고 보면 실제로도 그렇다. 사람이 아파 병원에 가면 체온이나 혈압을 재어 병을 진단하듯이 엔진이 고장 나면 제일 먼저 E.G.T라는 계기에 나타나는 테일 파이프(Tail pipe) 온도를 점검한다. 사람의 정상치 체온은 섭씨 36도로 가늠하지만 제트엔진의 정상 온도는 섭씨 690 도이어야 한다. 690 도에 못미치거나 690 도를 웃도는 온도이면 어디가 고장이라도 고장이 나 있는 것이다. 연료 압력 오일 압력도 사람의 맥박이나 혈압과 마찬가지다.
소리에 있어서도 어떤 생명체의 소리와 제트엔진 소리 사이에 상관성이 있다. 제트엔진 정비기수 자격으로 제트엔진 시운전실 직감(直監)으로 근무하면서 나는 한가지 특이한 자연 현상을 접했다.
제트엔진 시운전실은 엔진 샵에서 정비를 마친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비행기 동체에 장착하기 전에 지상에서 엔진을 작동시켜 시험 점검하는 곳인데 노출된 엔진을 엔진 장착대에 고정시켜 최대 R.P.M까지 작동시켜야 했으니 제트엔진을 탑재한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내는 소리보다 몇 배나 더 큰 굉음을 내는 곳인 것이다. 터보 제트엔진의 가스 터빈이 1분에 7,950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라는 게 얼마나 큰 소음인지 일반인들은 상상하기가 힘들 것이다. 과학적으로 밀폐된 귀마개를 쓰고도 고음의 진동으로 인해 창자까지 흔들리는 소리를 내는 곳이 제트엔진 시운전실이다.
그런데 그 제트엔진 소리라는 것이 음색에 특이한 데가 있었다. 비교하자면 여름철 가장 더운 한나절에 미루나무에서 '찌이-' 하고 우는 왕매미 소리와 같은 것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왕매미가 울어대는 여름철에 제트엔진을 돌려 운전할 때면 비행장 부근 사과밭에 있는 왕매미가 떼로 몰려 와 엔진소리가 나는 시운전실로 날아들어 엔진에 달라 붙는 것이다. 그 당시 동촌 비행장 주변에는 사과밭이 많았고 사과밭에는 사과나무 수액을 빨아먹고 사는 왕매미가 많기도 했다. 그 왕매미가 하필이면 제트엔진을 돌려 댈때마다 엔진으로 몰려드는 것은 아무리 봐도 제트엔진 소리를 자기네 동류의 소리로 착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는 현상이다.
음색이나 파장은 같을지 몰라도 왕매미 소리의 수백 수천만 배의 소리가 분명한 제트엔진 소리를 그들 동류의 소리로 착각하는 왕매미. 그 왕매미의 착각을 두고 보면 곤충의 본능적 감각은 역시 곤충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연 현상이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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