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이 땅에는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기하여 국경일에 국기를 내어다 걸 듯 가슴에 꽃을 다는 풍습이 정착되었고, 그것이 효심의 발현이나 사은의 표징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용의 전개는 형식이라는 절차를 밟게 마련이니 효심이나 사은의 표현으로 꽃을 달아주는 것도 아름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형식만 살아나고 내용이 약화된다면 그 형식이란 도대체 무슨 도깨비장난이냐 싶어 형식에 대한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전통적으로 효를 백행(百行)의 본(本)이라 하여 가장 중한 인간의 행실로 간주해 왔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존경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아 그것을 몸으로 실천해 온 것이 우리 민족이다. 군사부(君師父) 일체의 도덕관과 충 효 열(忠孝烈)을 지상(至上)의 덕목으로 하여 살아온 민족이 어버이 날을 정하여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고양시켜 보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1년 365일 모두가 어버이 날이요 스승의 날이라 해도 조금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사친(事親)의 길에 충실했고 사은(謝恩)에 눈물겨워했다.
어버이 날이나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을 달아 주고 효도 관광으로 법석을 떠는 것이 나쁘달 것은 없지만, 평소에 불효했던 자가 모처럼 날을 받아 억지 생색을 내는 일이 있다면 역겨움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형식에 복종하지 않는 것도 교만이지만 내용이 없는 형식은 사기요 기만이다.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달아드리는 것을 계기로 하여 모시되 공경하며, 봉양함에 있어 즐겁도록 해드리고, 근심하는 낯빛으로 병구완에 임하는 지극히 평범한 효도의 지혜를 평소에 실천궁행(實踐窮行)하는 아들 딸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큰 다행일까.
핵가족 시대를 표방하여 응당 부모와는 분리되어 있고, 스승은 지천으로 깔려 있으나 스승다운 스승은 없다는 오만이 팽배하는 오늘이다. 어버이는 우릴 낳아 길러 주셨고, 스승은 촛불같아 밝은 길을 열어 주셨으니, 이 세상의 은혜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을까 하는 진부한 논리를 새삼스레 강조하고 싶어진다.
꽃을 달아주고 칭송의 노래를 불러주는, 눈에 보이는 효도나 사은의 표징(表懲)에 걸맞게, 하늘같은 어버이의 은혜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의 권위를 마음 속에서부터 살려 나갔으면 좋겠다. (1986. 5. 15. ㅂ일보 살롱)
如 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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