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산의 풍속
부녀자의 최고 최대의 임무와 사명은 출산이다. 해산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고귀한 창조이다. 이 창조의 영광은 부녀자들 만이 누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만큼 고된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여자는 하나의 어린애를 낳은 후부터 어머니가 되고 또 하늘이 맡긴 사명을 다한 만족감에 흐뭇해 하는 것이다.
우리 풍속에서는 출산의 책임을 전적으로 여자에게 일임하여 왔다. 자식을 못 낳아도 그 책임은 여자에게 있어서 칠거(七去)의 조건에 걸려 추방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딸만 자꾸 낳아도 아내의 허물로 돌려버린다. 인간창조의 거창한 과업을 여자 홀로 맡는다는 영광은 좋으나 무자(無子) 생녀(生女)의 책임까지 떠맡아야 한다는 재래의 민속은 비극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아기를 낳지 못하면 산천이나 명승지 또는 절에 가서 자식을 낳게 해 달라고 지성을 드렸다. 이것은 기자(祈子)의 민간신앙이 되어 많은 전설을 남겨 놓았다. 고구려의 산상왕도 산천에 기도하여 왕자를 얻었고, 고려 명종 때에도 태자에 자식이 없어 백마산에 봉기사절(奉祈使節)을 보내어 자식을 얻고자 산제를 지낸 일도 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아이는 어머니 뱃속에서 출산달을 기다리다가 시간이 차면 탄생하게 된다.
산모에 산기가 있으면 우선 밥 세 그릇과 국 세 그릇을 따로 퍼서 상에 받쳐 놓는다. 이것은 '삼신'에게 제사하는 것이다. 이윽고 산모가 해산하면 국을 끓여서 산모를 대접한다. 이 산탄속(産誕俗)에서 흥미있는 것은 궁중의 풍속이다.
궁중의 비(妃)나 빈(嬪)에게 산후(産候)가 있으면 태의원(太醫院)의 제조(提調)는 맡은 바 벼슬아치들을 거느리고 산전(産殿)에 들어가서 우선 그 달에 길한 방향에 짚, 백교석(白絞席), 양털담요, 두꺼운 기름종이, 백마가죽, 가는 돗자리 등을 순서로 겹겹이 놓아 산좌(産座)를 마련한다.
다음에는 방 사방에 순산을 비는 부적을 붙이고 백마가죽 밑에는 아들을 낳기 바란다는 뜻으로 다람쥐의 가죽과 물삼(麻)으로 꼰 실을 넣고 말고삐를 벽에 걸어둔다. 이 고삐는 해산할 때에 그것을 잡고 힘을 쓸 수 있게 하는 실리적 이용물이지만 또 아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청에는 구리방울을 매달아두는데, 이것은 유사시 의원을 부를 때에 쓰지만 이것 역시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민속도 곁들여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산실을 정돈한 다음에 또 길한 방향을 살펴서 짚을 걸어둘 문(懸草門)을 정한다. 현초란 산후 즉시 짚자리를 걸어두는 것을 뜻하는데, 문설주에 못을 박고 붉은 끈을 늘여두었다가 아기를 낳으면 밖에서 의관이 짚자리를 내어달라고 하여 그것을 받아서 붉은 끈으로 대문에 매다는 것이다. 산후 7일이 되는 날에 이것을 걸어서 대청 위에 두었다가 자식이 많고 아무 탈이 없는 유복한 조신(朝臣)을 선택하여 권초관(捲草官)을 삼는다. 이 '자리걸이벼슬아치'는 짚자리 앞에 은(銀), 쌀, 명주, 실 등을 진열하고 향을 피워 제사한 다음에 그 짚자리를 옻칠한 궤 속에 넣고 분홍보로 싸서 생아(生兒)가 아들이면 내자시(內資寺), 딸이면 내담시(內膽寺) 창고에 넣어둔다. 이 절차를 권초례(捲草禮)라고 한다. 요컨대 궁중의 해산을 통칭 권초례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짚자리는 곧 산부가 아기를 낳을 때에 직접 쓴 것으로 비(妃) 빈(嬪)의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여기서 낳은 아기가 장차 국왕이 되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 민간의 출산은 이렇게 어마어마하지는 못해도 대개 그 절차는 비슷하다. 옛날에는 직업적인 산파가 없었으나 오랜 체험에서 얻은 할머니들이 직접 아기를 받는 일을 맡아서 한다. 대개 산실에 짚을 준비해 두는 것은 궁중의 짚자리와 같은 구실을 한다.
아기를 낳기 전에 국 세 그릇, 밥 세 그릇을 삼신에게 바치는데, 이것을 통칭 산탄(産誕) 삼신(三神)이라고 해서 세 신에게 한 그릇씩 바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삼신의 삼은 '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삼(胎)'을 뜻하는 것이다. '삼 가르다' '삼중' 등의 '삼'은 태(胎)의 우리말이다. 그러니 삼신은 곧 태신(胎神)이라는 것이다. 포태(胞胎)를 관장하는 호산(護産), 산탄(産誕)의 신이 곧 삼신인 것이다.
평소에 별로 신을 모시지 않는 가정에서도 출산 후에는 산실 안에 삼신제를 바치는 젯상을 마련해 놓는다. 따로 삼신의 신위(神位)나 신체(神體)가 없이 막연한 삼신을 위하는 풍속이었다고 생각된다. '삼신할머니'는 삼신의 호칭이다. 그 제물은 보통 흰밥과 미역국이 주가 되고, 산모의 건강과 영아의 장수를 비는데, 이것을 '비손'한다고 한다. '비손'은 손으로 빌면서 축문을 진술한다는 뜻이다.
민가에서 해산하면 대문에 '인줄'을 쳐서 남 녀의 표시를 하고 외인의 출입을 막는다. 이 인줄이 궁중에서의 현초(懸草)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삼일(三日)
아기가 탄생한 지 사흘되는 날의 행사를 '삼일'이라 한다. 이날 아침 일찌기 산모는 쑥물로 몸을 씻고 어린애는 따스한 물로써 때를 씻긴다. 이 목욕은 일찌기, 또 바르게 할수록 어린애의 발육이 잘 된다는 것이다. 또 사흘되는 이날부터 매일 아기를 씻기는데 첫날은 위로부터 아래로, 다음날은 아래로부터 위로 씻기면 영아의 발육이 평균하다고 한다. 한편 영아의 머리맡에는 삼신할머니를 섬기는 미역국과 흰밥이 놓여 있다. 이것은 산신(産神)이 발육의 기능까지를 맡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탄생 삼일의 행사는 중국에도 있다. <禮記>에는 탄생 삼일이면 비로소 아기를 업는다고 했고, <北史> <唐書>에는 아기 낳은 지 사흘만에 탕병회(湯餠會)를 열고 친척들이 모여서 서로 경하하는 인사를 나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후 삼일은 산모에게 있어서도 회복기이며, 영아도 바깥 세계에 적응되는 시기이므로 인생 출발의 싯점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이레(七日)
생 후 칠일째를 첫이레 혹은 한이레라고 한다. 이날 영아의 '쌀깃(襁褓)'을 벗기고 깃없는 옷을 입히고, 지금까지 동여맸던 팔 하나를 풀어준다. 그리고 두이레(14일)되는 날에는 깃 있는 옷에 두렁이(치마같은 것)를 입히고 나머지 한편 팔을 마저 풀어주어서 활개짓을 하게 한다. 세이레(21일)되는 날에 비로소 아래 위의 옷을 갖춰 입히고 몸을 자유롭게 하게 한다. 이날부터 산실(産室)의 모든 금기(禁忌)는 철폐되고 산부의 음식이나 활동이 평상시로 돌아간다. 한편 이날은 모든 친척들이 모여와서 어린이에게 선물도 주고 또 산후 처음으로 개방된 축하의 인사가 행해지는 것이다.
궁중 혹은 부잣집에서는 이레되는 날마다 수수떡을 많이 만들어서 앞 뒷문 앞에 놓고 길가는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며, '인부심한다'라는 민속도 있었다고 한다.
무릇 삼칠일의 행사는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에는 이미 산모의 건강도 안심할 정도이고 아기도 커서 모든 것이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에서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며 삼칠일을 금기하도록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 백일(百日)
삼칠일까지가 어린이보다 산모의 건강회복을 본위로 한 것이라면, 백일은 순전히 어린이 본위의 경축일이 되는 것이다. 대체로 삼, 칠 등의 홀수가 산속(産俗)에서 중요시되다가 문득 백일을 하나의 계기로 삼은 것은 아마도 백이란 수는 완전수, 성숙한 수라는 관념에서 이 완성된 단계를 어린이가 무사히 넘겼다는 것을 경하하는 뜻이리라. 유아의 발육상태도 젖살이 올라 가장 보기 좋은 모습으로 자란 상태라 백일기념 사진을 찍어두기도 한다.
백일 잔치는 비교적 대규모로 벌어진다. 원근에서 친척 하객이 주로 어린이가 필요한 선물을 가지고 어린이 주위에서 어린이의 건강을 축복해 주는 것이다. 축복의 내용은 과거의 백일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와 앞으로 더욱더 건강하게 자라라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영아의 사망률이 높았던 옛날에는 백일 이내에 사망률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데에서 응당 축하할 만한 의의를 찾는 것이다. 오랜 육아의 경험에서 온 백일잔치인 것이다. 중국에는 백일잔치의 예가 없는 것 같지만 일본엔 있었다. 요컨대 인생은 이 백날을 고비로 하여 점점 성장의 길로 매진하는 것이다.
# 첫돌과 생일날
탄생한 지 1주년이 첫돌이다. 이날은 돌잔치의 주인공인 어린이로서도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지만, 그 집안의 큰 경사이다. 이날 주인공의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흥미있는 행사가 벌어진다. 원근 친척과 인근 친지들이 모여서 큰 연회를 연다. 돌상에 쌀, 국수, 떡, 과일, 돈, 실, 활과 살, 책, 종이, 붓, 먹(주인공이 딸일 경우에는 활 대신에 가위, 자, 바늘) 등을 수북이 담아놓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포목필로 쌓은 자리에 앉히고 돌상에서 아무것이나 임의로 집게 한다. 만좌의 하객은 둘러서서 흥미와 기대를 걸고 이 광경을 지켜본다. 어린이가 돌상에 가서 돈이나 곡식을 가져오면 부자가 될 것이고, 국수나 실을 잡으면 장수하고, 활을 잡으면 장군이 될 것이고 붓을 잡으면 문명을 날릴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통칭 '돌잡힌다'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의 여흥과 같은 잔치이지만 어린이의 부모들은 이 '돌잡이'를 계기로 하여 은근히 자식의 장래를 기대하기도 한다.
어린이의 탄생 일주년을 '쉬'라고 하고 이날 진설한 상을 쉬반(쉬盤)이라고 한다. 쉬반이 된 돌상에 온갖 것을 차려놓고 어린이로 하여금 마음대로 가지게 하여 그 성격을 시험하는데 이것을 시아(試兒), 시쉬(試쉬)라 하고 돌잡히기를 시주(試周)라고 한다.
생일이란 해마다 돌아오는 탄생일이다. 생일을 거듭할수록 어린이는 성장한다. 생일은 대개 손아래 사람에 일컫고 손위의 어른은 생신(生辰)이라 하고 성현군주에게는 탄신(誕辰)이라고 통칭하지만 이는 어떤 존비(尊卑)의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습에서 온 속칭이라고 생각된다.
첫돌에는 대규모의 잔치를 베풀었으나 해마다 오는 생일에는 그날을 기억해 두는 정도로 집안식구끼리 국과 밥을, 혹은 떡을 나누어 먹는다. 지방에 따라서 다르지만, 살계백반(殺鷄白飯)이라 하여 닭잡고 흰밥이면 서민들에겐 최고의 생일음식이었다. 이렇게 생일이 겹치면서 나이가 열 대여섯이 되면 비로소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비약하는 관례(冠禮)가 행해지고, 관례 다음에 결혼이 닥쳐오게 마련이다. 결혼하여 또 자식을 낳고 늙어가다가 육순이 되면 환갑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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