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설화의 하위 개념으로서의 전설은 주로 자연을 증시물(證示物)로 내세워 자연과 인간 행위를 밝힌 이야기로, 인간이 꿈을 따라 사는 비극성과 희망 의지 나아가서는 국가와 마을과 씨족이 존속하는 생명력을 고양하면서 존속한 전래의 원시적 서사문학 중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전설은 사람들의 나긋한 정화와 처절한 슬픔과 열띤 의지를 흐름에 싣고 흘러흘러 오랜 세월을 헤아리게 되었고, 그 전하는 이야기가 강산 산하에 쌓여 주렁주렁 산과(山果)인 양 역사의 흐름 속에 열려 있다.
굴곡진 산맥, 구릉을 따라 골짜기가 드리우고 기암괴석이 널브러진 산등성이 밑으로 맑은 물이 여울살 지으며 흐르는 계곡엔 담(潭)과 소(沼)가 자리하여 전설을 낳고 꿈을 키우며 정서를 살찌운다.
내가 자란 함양군 안의면의 용추계곡에는 잊지 못할 전설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가 '삼형제 바위'인데 증시물이 분명하고 일정한 지방에서 민간에 의하여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설화이며, 자연물을 증거물로 하여 인간과 그 행위를 주제로 한 이야기여서 전설의 전형적인 모델이 될 법하여 대학 강단에서 설화 문학을 강론하면서 곧잘 예를 들어 활용하곤 했던 것이다.
"유독 우애가 돈독한 삼형제가 살았더란다. 어느 해 장마철에 이 삼형제가 함께 물 건너 마을에 있는 외가로 나들이를 하게 되었는데, 마침 장맛비에 계곡물이 불어 물을 건너기가 어렵게 되어 그래도 덩치가 크고 힘깨나 쓰는 맏형이 어린 동생을 건너다 놓고 그 다음으로 바로 밑의 동생을 업어 건네려고 물을 건너는데, 그 때 마침 이 삼형제의 돈독한 우애를 시샘한 마고할미가 조화를 부려 삼형제를 모두 바위로 만들어 그 자리에서 돌이 되게 하였으니, 계곡물에 있는 저 세 덩어리의 바위가 바로 그 삼형제 바위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곳에는 공교롭게도 덩치가 차례차례로 큰 바위 세 덩이가 있는데, 형이 업어 물을 건네 주었다는 제일 작은 바위는 계곡 저 쪽 물가에 자리하고 있고, 그 다음 조금 큰 바위덩이는 이 쪽 물가에서 형이 업어 건네 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제일 큰 맏형 바위는 물을 건너다가 물 가운데서 그대로 돌이 된 사람의 형상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저 흔해빠진 바위덩이가 아닌 기암(奇巖)인데다 신선들이나 살 법한 풍광이 수려한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고, 그러한 어슷비슷한 기암괴석이 하나만 아니라 나란히 세 개씩이나 자리하고 있으니 인간의 행위에 빗대어 그런 전설이 생겨난 것이다.
자연물을 교과서로 삼아 우애를 교훈하고 미덕을 쌓도록 한 지혜야말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아닐까.
또 하나 '매바위의 매산나'에 관한 것은 꼭히 전설이라기보다는 담소(潭沼)의 물과 너럭바위와 산 위의 매를 닮은 바위와의 상관관계에서 비롯되고 자연 현상에서 연유된 산메아리에 관한 것인데, 예로부터 이 곳을 지나는 사람마다가 매 모양의 바위가 있는 건너편 너럭바위를 향하여 '매산나!' 라고 외치면 '매삿다!'하고 분명한 소리가 반향되어 그 신기한 현상에 매료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두다 그 유래를 매처럼 생긴 바위에 초점을 맞추어 견강부회하고 있다는 데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매산나!' 하고 부르는 것은 '매야 너 살았느냐'이고 그 반향으로 들려오는 '매삿다'는 '매가 살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하여 안내 현판까지 제작하여 행정 관서에서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그것이 매와 관련된 전설이 아니라 메아리와 상관관계가 있다 싶어 국어사전을 들쳐보았더니 '메아리'의 방언이 다름 아닌 '매사니'였다. 그러고 보면 '매산나'는 '매야 너 살았나' 하고 안부를 물은 것이 아니고 '매사니아!(-매산아!)' 하고 메아리를 부른 것이고 그 반향이 '매삿다'였던 것이다.
그 골짜기에서 유독 넓고 깊은 담소(潭沼)인데다가 수면에 접하여 그만큼이나 넓은 내리반석이 수직으로 높고 넓게 펼쳐졌으니 소리의 반향이 제격이었고, 그런 조건 속에서 울려퍼지는 소리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이 '매사나!' 하고 메아리를 불러댔던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 내리반석 위쪽에 누가 보아도 매가 분명한 매를 닮은 큼직한 바위가 하나 있었으니, 그 매를 보고 너 살았느냐 하고 물었다는 것이고 그 반향이 '매삿다'인 것은 매 나 살았다는 뜻이라고 해석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증 없는 견강부회나 발상의 비약은 금물이 아닐까 한다. 국가나 지역의 역사를 전설류에 의존하여 애국심 애향심을 발휘함에는 보다 확실한 고증이 따라야 신뢰가 확보되는 것이다.
용추계곡 매바우 너럭바위 밑의 소(沼)는 이름마저 '매산나 소'인데 이 매산나 소 위의 매바위에 관한 전설은 따로 있다.
이 매를 닮은 바위는 산허리에 돌출한 자연석의 바위로 그 형상이 날개를 오므리고 부리를 쳐들어 쉬고 있는 매의 형상 그대로여서 설명을 들을 것도 없이 누구든 이 길을 올라가면 이 바위가 눈에 뜨이고 저것이 매바위구나 할 정도로 그 형상이 인공의 조각처럼 뚜렷하다.
전설에 의하면 정도전의 계략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 무학대사가 피신하여 각처를 헤매다가 이 고장 안의(安義,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까지 오게 되었단다. 경치가 아름다운 심진동계곡(일명 용추계곡)을 따라가니 매산나 소(沼) 위편에 매의 형상을 한 바위가 보였다. 날개를 접은 채 부리를 계곡 쪽을 향해 잔뜩 웅크리고 있는 매였으니, 매가 이렇게 지키는 걸로 봐서 이 골짜기 어디엔가 반드시 꿩설에 해당하는 길지(吉地)가 있음을 직감하고 골짜기를 누벼 다니다가 알을 품은 꿩 모습을 하고 있는 길지를 찾아내어 이 곳에다 암자를 지었으니 이 암자가 곧 은신암(隱身庵)이다. 꿩이 날아가고 싶어도 그 아래쪽 매산나 소 위의 매가 웅크리고 있어 날 수 없는 명당, 무학대사는 이 곳에서 수행을 하다가 열반하였다고 하는데 무학대사가 몸을 숨겼던 곳이라 하여 은신암이라 이름 붙여진 명당이다.
이렇게 이 매바위는 은신암의 연기 전설과 관련된 것인데, 엉뚱하게도 그 매를 닮은 바위 아래쪽의 너럭바위와 매산나 소의 산울림 현상과 혼동을 하고 '매사니'가 '메아리'의 방언이라는 사실을 모른채 매를 닮은 바위가 그 위에 있으니, '매삿나! 매삿다!' 가 '매야 살았느냐? 매 나 살았다'로 억지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 어처구니 없는 요즈음 사람들의 생뚱맞은 고증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국가나 지역의 역사를 전설류에 의존하여 애국심을 배양하고 애향심을 고취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세월이 흘러가도 변하지 않는 자연물, 그것에 인간 행위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곁들여 전설이 잉태되고 인간의 꿈을 살찌우며 자긍심을 키운다. 전설의 주제와 내용은 바로 사상과 감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니 부귀를 추구하는 행복관, 충 효 열이나 우애를 강조한 윤리관, 죽음 이후로 이어지는 사생관(死生觀), 현실에서 좌절하면서도 여전히 꿈을 따라 사는 비극성과 희망 의지가 전설을 통해 비춰진다.
그리하여 향토의 산하에 널브러진 전설, 그것은 그 향토민의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매김되어 자부심을 살린다.
옛것이 모두 그야말로 전설 속으로 파묻혀져 가는 오늘의 현실일수록 소중한 유산을 보다 잘 알고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如 岡 金 在 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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