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포모(包茅)

如岡園 2009. 1. 24. 10:15

 제사를 모실 때, 모사(茅砂,茅沙)그릇의 모래 위에 술을 거르도록 묶어 꽂아놓은 띠(茅草)를 포모(包茅)라 한다.

 하필이면 모사(茅沙)에 술을 부어 강신(降神)하던 일이 별스럽다 싶어 전적(典籍)을 상고하였더니 띠를 엮어 술을 거르면 생초(生초)나 견직물(絹織物)의 견대에 넣어 거른 것보다도 술이 더 맑기 때문에 포모(包茅)를 쓴다는 것이었다. 

 제사에 모신 선조에게 맑은 술을 드리고 싶었던 정성이고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문화란 하루아침에 우연히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또 쉬이 던져버릴 수도 없는 정신적인 그 무엇이다.

 가정의례가 간소화하였기 때문에 어떻게 제사를 모시건 상관이 없지만 막상 기제사(忌祭祀)나 절사(節祀)의 제주(祭主)가 되어 제사를 주관하다 보면 모르는 것이 많아 번번이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출어정(禮出於情)이라 하였으니 고인을 추모하고 공경하는 마음만을 가지면 된다지만 의례라는 게 어찌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 것인가.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이나 생활 이상을 실현하려는 활동의 과정과 생활 양식이 문화라고 할 때 그것은 돌발적인 장식물이나 편의에서 받아들인 편법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에 대중 속에 침투하여 사회적으로 서서히 형성되어 이어져 온 내적 정신 활동의 소산이다.

 촛불을 들고 길거리를 나돌아다니는 촛불시위를 두고 촛불문화집회라고 호도하며 문화라는 말을 교묘하게 팔아먹는 현실에서 제사문화를 왈가왈부해 봤자 케케묵은 보수의 쓰잘데 없는 잔소리가 되고 말겠지만, 제사라는 것도 문화의 한 단면이고 보면 그것이 하루 아침에 없앨 수도 없는 것이니 관례에 따라 행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제삿상 앞에 무릎을 꿇고 향불을 피우면 거무스레 변색된 향로에선 푸른 연기가 피어 오르고 펀펀하게 둥근 제기 접시에는 통째로 얹힌 생선이 비린내를 풍기고 있는 풍경이 제사의 분위기다.

 의례를 아무리 간소화 한다고 해도 제사를 모시는 이상, 종족 보존의 상징적 차원에서 연유된 밤, 대추, 배, 감(棗栗梨枾)을 빠뜨릴 수는 없고 헌작(獻爵)을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씨 없는 과일을 써서 자손이 끊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데다가, 일배주(一杯酒)를 결(缺)하여, 보본(報本)으로 강림한 조상의 영혼을 섭섭하게 돌려 보내지 않으려는 인정의 발로임에야 어찌 부질없는 일이라 탓할 수 있겠는가.

 

 모르고 행하지 않는 것은 탈이 없지만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결례라는 생각이다.

 형식이 내용을 앞질러 번거로운 겉치레만을 살려 나가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편의를 앞세워 의례에 담긴 의미마저 무시해 버린다는 것은 문화의 파괴를 초래하는 것 같아 새삼스레 묵은 것을 챙겨보게 된다.

                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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