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리 밖에 돈뭉치나 금덩어리가 데굴데굴 굴러 있다고 한다면, 누구나 머리를 싸매고 뛰어 갈 것이다. 십 리 아니라 백 리 길이라도 부지런히 서로 앞을 다투며 갈 것은 틀림 없다.
이 점으로 본다면, 본래 게으른 사람이란 없다고 할 수 있다. 일정한 시간을 걸어 가면 돈 뭉치나 금덩어리를 확실히 얻을 수 있다는 목표 앞에서는 아무도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물건이 어느마한 거리에 있는지 모르는 데서 스스로 주저하여, 게으름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손꼽는 사업가쳐 놓고 청년 시대부터 자기가 백 퍼센트 사업에 성공하리라는 자신을 가지고 출발한 사람은 없다.
유명한 학자, 예술가쳐 놓고 처음부터 그가 학자로서 대성할 것을 보장 받은 일은 없는 것이다. 물론 학자가 되겠다, 혹은 예술가가 되겠다는 포부는 지녔을 것이지만 그가 대성하기까지에는 불안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부문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쉬지 않고 부지런히 그 뜻하는 방향을 향하여 걸었던 것이다.
성공이 클수록 그 뒤에는 그만큼 큰 노력이 숨어 있다. 결국 사람은 그가 노력한 만큼, 부지런한 만큼 성공한다는 공약수(公約數)가 나온다.
헛수고할가 봐서 걱정하지 말고, 먼저 부지런히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라. 노력한 만큼 반드시 보상이 올 것이다. <로런스 굴드>
사람들이 자기의 결점을 조금도 감추려고 하지 않고 공개하는 것은 '게으르다' 는 점이다.
재주가 없다고는 생각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게을러서 못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남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게으르다는 것이 가장 큰 악덕 중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치 못하고 있다. 불결한 곳에 병균이 부착하듯이 게으른 마음에 죄악이 스며드는 것이다. <라 로시푸코>
어느 방면에 대해서는 게으른 것이 좋다. 즉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게으름을 피울수록 좋다. 이것은 말하자면 총명한 태만이라고 할 수 있다.
불필요한 노력을 절약함으로써 그만큼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경제는 도리어 하나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는 간단하다. 불필요한 일에는 게으름뱅이가 되고, 유용한 일에는 부지런하라. <로런스 굴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써 얻으려고 하지 않고 가상의 세계를 빌려 몽상 속에서 실현해 보는 수가 있다. 몽상의 날개를 빌리면, 어려운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가장 위대한 실업가가 될 수 있고, 가장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있고, 또 세상을 놀랠 만한 예술가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몽상의 막이 걷히면 현실은 모래알을 씹듯이 삭막해지고 만다. 이러한 가상적인 만족을 구하는 것은 정신을 마비시키기 쉽다. 그것이 심하면 사람은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몽상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예술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그의 꿈을 표현한 것이다. 또 모든 발명은 역시 그 발명자의 꿈의 실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몽상은 행동이 따르고 창조적인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창조와 결부된 몽상은 인류의 문명을 발전케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당신이 만약 자동차 운전수라면 엄동 설한 추운 아침에도 엔진이 얼지 않고 손쉽게 자동차를 발동시킬 수 있는 꿈을 가질 것이며, 만약 당신이 구두장수라면 어떡하면 새 신발이 발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인가의 그런 꿈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꿈은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당신에게 활동력을 북돋아 주는 힘이 될 것이다. <로런스 굴드>
사람은 그 양심을 향하여 발달하는 것이다. 그가 어느 정도의 양심 또는 어떠한 종류의 양심을 터득했느냐가 그 사람의 행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은 날 적부터 양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곰의 젖을 빨고 자란 아이는 곰의 습성을 배울망정 인간의 양심은 갖지 못할 것이다. 선악을 구별하는 힘은 후천적으로 얻는 것이다.
만약 자라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인도하지 않고 제 멋대로 내버려 둔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내가 아는 어느집 다섯 살 나는 귀엽게 생긴 계집아이는 자기 앞에 가로막은 세 살 나는 그 동생을 방해가 된다고 층계에서 떠다민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계집아이는 조금도 이상적인 아이는 아니었고, 성장한 뒤에는 대단히 친절하고 얌전한 처녀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알고 있는 극히 초보적인 도덕 의식을 알기에도 수년을 걸려야 한다.
양심은 인간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 증거로는 - 과거의 역사를 들추어 보면, 어떤 미개지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고, 근친이 관계를 해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양심은 문명의 소산인 것이다. 자라는 어린이나 성숙치 못한 소년들에게는 양심을 가르쳐야 한다. 죄를 예사로 범하는 소년들은 양심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어린이들의 양심을 어떻게 키워주느냐에 있다. 또 어른들 자신도 그 양심을 키워나가지 않고서는, 안정된 마음과 행복된 생활을 얻지 못할 것이다. <로런스 굴드>
어릴 적에 아무 데나 똥을 싸다가 부모에게 몹시 야단을 맞는 일이 있다. 똥을 눈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눌 장소에서 누지 않았기 때문에 야단을 맞는다는 점을 분명히 어린 아이에게 의식시키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똥을 눌 때마다 부모에게 야단 맞을가 봐 겁을 집어먹게 된다. 변비의 원인이 뜻밖에도 이런 데서 오는 수가 많다. 변비는 하나의 노이로제에서 오는 것이라는 견해는 많은 의사들이 찬동하는 바가 되어 있다.
어릴 적에 부모에게 엄하게 야단 맞은 일은 이 다음에 커서도 좀처럼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야단칠 적에는 무엇 때문에 야단친다는 것을 어린아이가 납득하도록 분명한 양심에 비춘 것을 제시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 아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위축되고 말 것이다. <로런스 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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