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취미와 소질의 발견

如岡園 2009. 8. 30. 12:13

 신상명세서를 요구받는 경우에 적어 넣기가 참으로 애매한 항목이 있었다면 아마 취미란(趣味欄)이었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반드시 하나 적어 넣어야 했으니까 독서다, 음악감상이다, 영화관람이다, 등산이다, 바둑이다, 낚시다 하고 적어 넣지만 뒷맛이 개운치 만은 아니한 것은 아무래도 취미라는 것을 그렇게 단적으로 꼬집어 말하기가 어렵고 델리킷한 무엇이 있기로 해서이다. 좋아한다는 것도 인간의 소양과 품위와 관련이 있어 솔직히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각양각색으로 다변화되어 있어 한마디로 표현되지 않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취미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전문이나 본업이 아니면서 재미로 좋아하는 일, 또는 마음에 느껴 일어나는 어떤 멋이나 정취를 떠올린다. 이렇게 보면 아무래도 취미는 흥미와 낙을 본질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인간의 행동은 도덕적인 관점보다도 흥미적인 관점에 더 많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취미가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할 것이다.

 취미가 사람살이에서 크게 부상하고 있는 것도 아무래도 그것이 낙이나 흥미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라고 하겠는데 따지고 보면 인생고해에서 일말의 낙이 없다면 당장 질식이라도 하고 말 일이 아니겠는가.

 취미는 영혼의 미소이자 사상의 매력이며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것에 엮어진 정감의 매력이다. 취미는 영혼의 문학적 양심이며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예술도 또한 취미의 발현이다.

 즐거움을 본질로 한다는 뜻에서 취미는 오락 및 흥미와 관련되며, 본업과는 달리 부차적인 것으로 심신의 위안이나 생활의 오락을 위한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여가와 관련된다.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무엇이 즐거움인가를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는 취미의 객관적인 법칙은 없다. 왜냐 하면 취미를 판단하는 기준은 모두 객관적인 것이고, 그 근거는 주관의 결정이지 객체의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업이 아닌 취미활동은 여가를 빌려서 하는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여가를 즐기려면 본업의 실무라는 튼튼한 뿌리를 가져야 한다. 실무라는 튼튼한 뿌리 위에 오락으로서의 취미라는 꽃을 피워야 그 꽃이 아름답다.

 이렇게 보면 여가는 룸펜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의 것이다. 일을 하면 일하는 만큼 더 일을 하게 되고, 바쁘면 바쁜 만큼 틈이 생기듯이 여가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여가가 있게 마련이다. 일하는 사람이 룸펜과 달리 여가를 가지고 싶은 것은 그 여가를 활용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보다 많이 하고 싶기 때문이다. 룸펜은 여가를 쓸데없이 써버리기 때문에 비참하지만 여가를 이용해서 행복하게 되려고 생각하면 여가는 쓸데없는 시간이 아니라 보배로운 것이다.

 휴식은 수면과도 같은 것이지만 여가는 휴식이 아니라 우리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자유로운 틈새 시간이다. 취미는 여가를 활용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심신활동이다.

 인간은 아무리 슬픔에 차 있어도 어떤 심심풀이에 마음이 끌리면 그 동안만은 행복하다. 반대로 아무리 행복스럽다 하더라도, 권태가 마음 속에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한 어떤 정욕이나 오락에 의해 심심풀이를 하든가 하지 않는다면 얼마 안 가서 우울해지고 불행하게 될 것이다.

 흥미에 있어서도 흥미의 세계가 넓으면 넓을수록 행복의 기회가 많은 것이요 운명의 지배를 덜 당하게 된다. 하나를 잃으면 딴 것으로 물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젊을 때는 흥미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잊기 쉽고 늙어지면 흥미가 결핍돼 있기 때문에 잊기 쉽다.

 아무튼 사람이 흥미를 가지고 어떤 일에 몰두하는 생활 습관은 어떤 일의 성취 동인(動因)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이다. 취미가 본업과는 달리 심신의 위안이나 생활의 오락을 위한 것일지라도 취미 생활에서 유발된 생활의 탄력성은 다른 일의 활동 능률에도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건전한 취미생활을 확정하여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그만큼 중요한 일이 된다.

 그러나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이 취미의 한 속성이라 하여 쾌락에 집착하다가 보면 즐거움도 즐거움 나름이어서 취미의 본도(本道)를 그르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무릇 인생행락(人生行樂)에는 잡기(雜技)와 유희(遊戱), 스포츠로 대표되는 오락(娛樂)이 있고, 주색(酒色)이 따르게 마련인 향락(享樂)이 있으며, 이러한 오락이나 향락보다는 품격이 높고 아취(雅趣)를 풍기는 도락(道樂)이 있다.

 취미는 '낙(樂)'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킨 활동이라는 점에서 오락이나 향락에 가깝다기보다 도락(道樂)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취미는 인간의 진실한 마음의 반영에서 우러나와야 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미소이어야 하며 정감의 매력에서 싹터야 한다.

 잡다한 인간이 잡다한 취미를 가졌으나 나의 진실한 취미는 나의 성벽에 따라 나의 영혼이 인도되는 곳에 있으니 각자의 독창에 따라서 자신의 취미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취미다운 취미를 가지지 못하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요소요소에서 당신의 취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접했을 때마다 분명한 대답을 못하고 멈칫거렸던 것도 취미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취미로 내세우는 낚시에도 당구에도 등산에도 철저하지 못하고, 새 기르기, 개 기르기, 분재 수석에도 어둡다. 하물며 도락의 범주로까지 격상된 바둑이나 장기 같은 박혁(博奕)에도 문외한이며, 수집벽(蒐集癖)은 좀 있어 용돈깨나 축을 내었지만 어느 한 분야의 수집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인생을 거의 다 살아온 지금에 와서 내 취미의 범주를 한 번 생각해 본다면, 넓게 잡아, 영화, 음악, 사진, 회화, 조각 같은 예술 감상, 소질과도 관련된 화초 가꾸기, 기계조립, 공작물 만들기, 돈이 드는 일이라 실현은 못했지만 문화의 때가 묻은 골동품 수집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취미는 선천적 소질에 의하여 제약되는 면도 크고 생육환경이나 소속된 사회적 계층이나 성별, 유행의 여하 등에 크게 좌우되기도 한다.

 취미와 관련하여 소질이란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취미를 형성하는 데는 소질의 영향이 크다.

 소질이란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사람이 날때부터 지니고 있는 성격이나 능력 등의 타고난 바탕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질의 발견에는 일차적으로 혈족의 가족 간에서 찾으면 될 것이다.

 각자는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제 나름대로 느끼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능력과 소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힘껏 발휘함으로써 일을 성취시키고 사는 보람을 느끼게 된다.

 많은 육체적 소질들은 정신을 세련시키고 또 어떤 소질들은 정신을 둔화시키는 것도 있기 때문에 영혼이 어떠한 육체에 깃들어 있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나면서부터 타고난 소질 또는 재능은 끝까지 변할 수가 없고, 마치 자연의 나무와도 같아서 그것을 학문에 의해서 전정(剪定)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소질이나 재능을 잘못 알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 실패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극작가 쌍 마르크 지라르당에게 비극(悲劇)의 각본을 들고 나타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자기가 쓴 각본이 훌륭한 것으로 자인하고 있었으나 지라르당은 그 청년과 잠시 이야기해 보고는 그가 문학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성질의 소유자임을 발견하고, "대단히 안됐지만 자네는 문학보다 의학(醫學) 방면으로 나가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하였다. 그 청년은 낙심을 했지만 생각 끝에 극작가로서의 길을 단념하고 의학의 길로 나가, 간장에서 글리코겐을 발견하여 생리학 의학사상 불후의 공적을 이루었다. 충고를 받아들여 자기의 소질과 적성을 빨리 찾아내어 성공을 한 실례이다.

 남이 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쉽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소질이요 재능이다. 타고난 소질을 근거로 한 하나의 재능을 갖고, 하나의 재능을 위해서 태어난 자는 그 속에 그의 가장 아름다운 생존을 발견해 내게 마련이다. 그러한 능력과 욕망이 평형을 이룰 때 인간은 행복하다. 

 말은 그렇지만 소질의 발견도 취미의 확정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소질에 맞게 취미활동은 할 수 있지만 소질에 맞추어 살아갈 사회적 환경도 못되는 경우가 많다.

 끝맺음 삼아 파스칼의 <팡세>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정념(情念)도 없이, 전심(專心)할 만한 경영(經營)도 없이, 그야말로 하는 일 없는 완전한 휴식 속에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 있어 참을 수 없는 것은 없다. 그는 그 때에 자기의 허무, 자기의 유기(遺棄), 자기의 불만, 자기의 의존(依存), 자기의 무력(無力), 자기의 공허를 느낀다. 이 때에 그의 혼의 깊은 속으로부터 권태, 우울, 비애, 고뇌, 회한, 절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代案)은 아마도 오랜 세월에 걸쳐 자기 자신이 구축하고 확정한 취미생활일 것이다.  (2009.7.15. 동인지 '길 10호' )

                                                                                 如岡   金  在  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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