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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蝶之夢/南柯之夢/한鄲之夢/春夢을何可盡信고

如岡園 2009. 10. 7. 22:19

          # 호접지몽(胡蝶之夢)

 장자(莊子)가 자기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비유한 바, 나비가 된 꿈을 일컬음이니, 꿈과 현실에 대한 구분은 한낱 인간의 잔재주나 어리석음에 불과함을 말한 것이다.

 장자는 고금 독보의 철인이었다. 그의 고매하고 오묘한 철학을 그는 여러가지 우언(寓言)을 빌어 표현했거니와 그 중의 하나에 나비가 된 꿈 얘기가 있다.

 - 언제였던가 나는 이몽가몽 조는 사이에 나비가 되었다. 하늘하늘 날갯짓하며 대기에 떠오르는 즐거움. 나는 내가 나(장자)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 즐거움에 팔려 있었다. 이윽고 문득 눈을 떴다. 나는 역시 나였다. 그러나 - 현존하는 내가 꿈 속에서 그 나비가 된 셈일까? 그 하늘하늘 즐겁게 날아다니던 나비가 꿈 속에서 나라는 인간이 된 셈일까?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였는지?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우리의 인간적인 분별에 의하면 장자와 나비와는 엄격히 구분된다. 현실과 꿈은 판이하다. 나비가 곧 장자일 수는 없으며 현실은 역시 현실일 뿐 꿈이 현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구별이란 사람의 잔재주나 혹은 어리석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재(實在)의 세계에 있어서는 장자도 또한 나비요, 나비도 또한 장자라는 것이다. 현실도 또한 꿈이며 꿈도 또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절대자유의 정신세계 - 다시 말하자면 도(道)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가치관념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몸은 혼탁한 세속에 있을망정 그 정신에 있어서 생사, 시비, 선악, 진위, 미추, 빈부, 귀천, 물아(物我) 등...... 대립과 차별을 온통 벗어나야지만 비로소 영롱한 도(道)의 세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깨어나면 장자로서 살며 꿈꾸면 나비로서 날고 주어진 현재의 모습 그대로 현재를 즐기는 것, 그것이 참된 자유라고 장자는 생각하였다.

 

          # 남가지몽(南柯之夢)

 꿈 혹은 꿈같은 세상을 말한다. 흔히 '南柯一夢'이란 4자성어로 알려져 있다.

 중국 당나라 덕종(780~804)때 광릉이라는 곳에 순우 분(淳于분)이란 사내가 있었다. 집의 남쪽에 커다란 느티나무(槐) 고목이 있었는데 어느날 취해서 그 나무 밑에서 자고 있노라니 보라색 옷을 입은 사내 둘이 나타났다.

 "괴안국(槐安國) 임금님의 분부로 모시러 왔습니다."

 분이 그들을 따라 느티나무의 구멍 속으로 들어갔더니 커다란 성문 앞에 이르렀다. 대괴안국(大槐安國)이라고 황금으로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왕은 분을 보자 매우 기뻐하여 사위로 삼았다.

 하루는 왕이 분에게, "남가군(南柯郡)의 정치가 어지러우니 자네가 그 곳의 태수(太守)가 돼 주게나."

 분은 친구인 주변(周弁)과 전자화(田子華)를 부하로 삼아 남가군으로 부임하였다. 그로부터 20년간 분은 두 친구의 도움으로 어진 정치를 펴니 왕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단라국(檀羅國)이 남가군을 침노하니 분은 주변을 장수로 하여 방어케 했으나 변이 적을 넘본 탓으로 패배하였다. 적은 분양품(分讓品)을 가지고 물러갔으나 변은 이윽고 등창이 생겨 세상을 떠났다. 분의 아내도 병으로 숨졌다.

 분은 태수를 그만 두고 서울로 돌아오니 그의 명성은 대단하고 권세는 날로 불어나 왕도 내심 불안해졌다. 마침 그 무렵 서울을 옮겨야 할 이상한 징후가 있다고 상주문(上奏文)을 올린 자가 있어 항간에서는 그것이 분의 세력이 강해진 탓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왕은 그를 사저에다 연금했으나 그 억울함을 인정하고 고향으로 보내주었다.

 - 깨닫고 보니 분은 예전대로 느티나무 밑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상히 여겨 느티나무 뿌리를 살폈더니 구멍이 있어 그 구멍을 파본즉 침대 하나가 들어갈만한 공간에 개미떼가 무리져 있는 것이다. 그 곳이 괴안국의 서울이요, 한 쌍의 큰 개미가 곧 국왕 내외였다. 남쪽가지(南柯)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개미떼가 있는 편편한 곳이 있는데 거기가 남가군이었다.

 분은 예전대로 구멍을 메워 두었는데 그날 밤에 큰 비가 와서 개미떼가 온데간데 없어졌다. 나라에 변고가 있어 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나라 이공좌(李公佐)의 <南柯記>에 있는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南柯一夢이다.

 

          # 한단지몽(한鄲之夢)

 인생의 영고성쇠(榮枯盛衰)는 한마당의 꿈과 같음을 말한다. 남가일몽과도 일맥상통한 말이다.

 여옹(呂翁)이라는 도사가 한단(하북성)의 객주집에서 쉬고 있노라니까 남루한 옷을 입은 젊은이가 오더니 여몽에게 말을 걸어 고생스럽게 사는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젊은이의 이름은 노생(盧生)인 바 그는 여옹에게서 도자기 베개를 빌어 가지고 낮잠을 잤다. 그 베개 양쪽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자는 사이에 구멍이 차츰 커져 노생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훌륭한 집이 있어 노생은 그 집에서 명문가인 최씨네 규수를 아내로 삼고 진사 시험에 합격을 하여 관리가 되자 오래잖아서 경조윤(京兆尹. 首部 長官)이 되고 또한 오랑캐를 무찔러 더욱 영전하였다. 그러자 재상이 시기하는 바 되어 자사(刺史. 州長官)로 좌천, 3년 후에는 다시 중용되어 마침내 재상이 되니 그로부터 10년간 어진 정치를 펴서 우럴음을 받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역적 모의를 한다는 모함으로 포박을 지니 처형 당할 것이 뻔했다. 그는 아내더러, "나의 산동(山東)집에는 적으나마 좋은 녹이 있었오. 농사나 짓고 있었던들 그것으로 추위와 굶주림은 면했으련만 어쩌자고 벼슬을 살았기에 이 지경이 됐구려. 남루를 걸치고 한단의 길을 가던 생각이 나오. 그 시절이 그립건만 이젠 어째볼 수도 없어......"

 노생은 칼을 뽑아 자살하려 했으나 아내의 제지를 받았고, 다른 이들은 처형을 당했으나 그는 환관(宦官)의 진력으로 귀양을 가는 데 그쳤다. 몇 해 후에는 천자가 그의 원죄(寃罪)를 깨닫고 다시 불러 연국(燕國)의 군주로 삼았다. 아들 다섯이 저마다 고관이 되어 천하의 명문가와 통혼하여 10여 명의 손주를 얻어 매우 행복한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 꿈 속의 이야기다.

 노생은 잠에서 깨어 하품을 하고 눈을 떠보니 한단의 객주집에서 그냥 누워 있었다. 한바탕 꿈이었다. 곁에는 여옹이 앉아 있다. 그가 잠들기 전에 객주집 주인은 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여태 조밥이 익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아, 꿈이었구나!".

 "세상 만사가 그런 거라네" 하며 여옹은 빙그레 웃었다. 노생은 어리둥절하고 앉아 있더니 여옹에게 감사하였다.

 "영욕(榮辱)도 빈부(貧富)도 죽음도 다 겪었습니다. 필시 도사께서 나의 욕망을 막아주신 것일테죠. 잘 알겠습니다".

 여옹에게 공손히 절하고 노생은 한단의 길로 사라졌다.  <枕中記>에 있는 이야기이다.

 

          # 춘몽(春夢)을 하가진신(何可盡信)고?

 조선 중종 때 사류(士類)를 많이 모함하여 죽임으로써 소인의 대표처럼 된 인물에 남곤(南袞), 심정(沈貞)의 두 사람이 있다. '곤쟁이 젓'(곤쟁이로 담근 젓, 곤쟁이는 새우의 일종인데 보리새우와 비슷하나 더 작고 부드러움. 푹 삭힌 곤쟁이 젓을 감동젓이라 함)은 이 두 사람의 이름을 합쳐서 지었다고 하는 것이다.

 심정이 그래도 그 아우 심의와는 우정이 각별하였다. 하루는 둘이 한 방에서 자다가 아우가 갑자기 일어나 방성통곡을 한다.

 "꿈에 아버지를 뵈었는데, 재산도 넉넉히 나눠 주지 못해 아무데 논과 종 아무개는 널 주려던 것인데 이루지 못하고 죽어 한이 된다고 하시기에 서로 붙잡고 울다가 깨어 말씀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하는 것이다.

 형도 서글퍼져서 그 얘기대로 베어 주고 나서 생각하니 확실히 속았다.

 나쁜 짓을 해서라도 그만치 사니, 좀 주었기로 어떠랴만 그러기에 소인이다. 그래 하루는 또 같이 자다가 이번에는 형이 일어나 운다.

 "꿈에 아버지가 오셔서 너는 큰집으로서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에 씀씀이도 센데, 아무데 논을 아우를 주었다니 그게 웬말이냐고 하시더라".

 아우는 빙그레 웃으면서, "형님, 봄 꿈을 어찌 다 믿겠소?(春夢을 何可盡信고)".

 그래 그만 서로 쳐다보고 웃어버렸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