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 꽃의전설

갈대/서향/오렌지/데이지

如岡園 2009. 10. 19. 12:38

          # 갈대

 왕의 머리를 깎으러 불려 들어간 이발사는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왕의 부름을 받고 궁으로 들어가는 이발사는 그 날이 생애 마지막 날이 된다는 걸 믿어 의심하지 않았고 그것은  또 한 번도 배신당하지 않았다.

 왕의 머리를 깎으러 들어간 이발사가 살아오지 못한다는 소문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발사들은 혹시 이번에는 하는 공포 때문에 밥맛이 없을 정도였다. 왕의 머리를 깎으러 들어갔다가 살아 나오지 못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단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빵값을 벌기 위해 궁성에 들어가려 간청했다. 그는 왜 지금까지 이발사가 무수히 죽어갔나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약간의 용기와 또 그만큼의 충성심도 갖고 있었다.

 자청해서 들어간 이발사는 임금의 머리를 깎으려고 수건을 벗겼을 때 비로소 지금까지 죽어간 이발사들의 죽음의 이유를 알았다.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였던 것이다.

 대담하고 기지있는 그 이발사는 속으로 무척 놀라고 우스웠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임금의 머리를 깎았다. 기특히 여긴 임금은 절대 비밀을 약속받고 그를 궁에서 내보냈다. 최초의 살아 돌아온 이발사가 된 것이다.

 충성스런 이발사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에게도 임금의 귀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 비밀은 뱃속에서 병이 되어 점점 커갔다. 이발사는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자 벌판 모래밭으로 나가 구덩이를 파고 거기 대고 소리를 질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마이다스왕의 귀는 당나귀 귀. 하하하하."

 이발사의 병은 거뜬히 나았다.

 얼마 후 소리를 지른 구덩이에서 갈대가 자라고 갈대는 바람에게 왕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일렀다. 소문에 민감하고 떠들기 좋아하는 바람은 좋아라고 비밀을 퍼뜨렸다. 불쌍한 이발사가 목베어져 죽었음은 물론이다.

 어린이들의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며, 꽃말은 불근신(不謹愼)이다.

 

          # 서향(瑞香)

 중국 노산의 길고 험한 산골짜기 암자에 오래 수도한 비구니가 있었다. 어느 날 골짜기 개울 주변을 거닐다 비구니는 잠깐 바위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꿈속에 처음 맡는 황홀한 향기가 온 몸을 둘러싸고 풍겼다. 그 향기는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데도 극락세계에서 나는 것이라고 저절로 알아졌다.

 비구니는 향내를 따라 어딘가로 자꾸만 걸어갔다. 마침내 극락세계라는 곳에 다다랐다. 향내는 한 구석에 피어 있는 흰 꽃에서 풍겨나오는 것이었다. 여승은 꽃에 코를 틀어박고 한참 숨을 들이마시다 잠에서 깼다. 이상하게 잠에서 깬 뒤에도 그 향기가 풍겨왔다. 비구니는 꿈속에서처럼 향내를 따라가서 꿈속에 본 나무를 찾았다.

 나무를 뽑아들고 절로 내려온 여승은 만나는 사람마다 꽃의 이름을 물었지만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자면서 얻었다 해서 수향(睡香)이라 이름 지었다가 상서로운 꽃이라고 후에 서향(瑞香)으로 고쳐 불렀다.

 서향의 옆에서는 어느 꽃도 그 향기를 잃는다. 서향의 향기가 다 휘감아 버리고 혼자 독특한 향내를 풍기기 때문이다.

 화적(花賊)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여진 서향의 다른 이름이다. 서향은 꽃은 신통찮고 신통찮은 꽃 대신 훌륭한 향기를 가졌다. 꽃잎이 없이 꽃받침이 닥지닥지 붙어 한 송이 꽃을 이루는데 잎이 두텁고 매끄러운 윤기를 내서 품 없는 서향에 조금쯤은 보탬이 돼 준다 모양이 구질어서 특별한 사랑을 받기는커녕 거들떠 보지도 않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옛날 가문좋은 양반집에선 화단 한구석에 서향을 심어 그 향기를 음미하는 점잖은 풍류도 있었단다.

 우리나라에 서향이 들어온 것은 고려 충숙왕 때란다. 꽃말은 꿈 속의 사랑.

 

          # 오렌지

 중국에 마음 착한 동생과 착하지 않은 언니 자매가 살았다. 언니는 부자집에 시집가고 동생은 가난한 산지기에게 시집갔다. 언니가 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고 맛있는 고기를 먹을 때, 동생은 누더기 옷을 입고 간신히 죽을 먹었다.

 날마다 산에 올라가 손등을 긁히면서 나무를 잘라다 팔아 먹고 사는 동생은 그나마 나무가 잘 팔리면 좋았는데 팔리는 날도 있고 안 팔리는 날도 있었다. 팔리지 않은 나무를 이고 집으로 되돌아 올 때는 목이 몸 속으로 들어갈 듯이 고단했다.

 머리를 내리누르는 나무의 무게는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누구를 원망할 줄도 모르는 착한 여자는 다만 피나는 고생이 서러워 울며 울며 고개를 넘곤 했다. 나무가 팔리지 않는 날은 자꾸 많아졌다. 동생은 돌아오는 길에 몇번이나 나뭇단을 바다 속에 던져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팔리지 않은 나무를 바다에 넣으려고 바닷가에 우두커니 섰는데 물 속에서 용녀가 나왔다.

 "용왕님의 분부로 부인을 모시러 왔읍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용녀는 친절하게 용궁길을 안내하며 살며시 일러 주었다.

 "용왕님이 무슨 선물을 원하느냐 물으시면 검정고양이를 달라고 하세요."

 착한 동생은 용녀가 일러주는대로 검정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용왕의 말대로 매일 팥 다섯 홉을 먹였다. 고양이는 꼭 다섯 홉씩 똥을 누었는데 그 똥이 모두 누런 황금덩이였다.

 동생은 금방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 소문을 듣고 달려온 언니가 검정고양이를 달랬다. 거절할 줄 모르는 동생은 검정고양이를 언니에게 주었다. 언니는 검정고양이에게 하루 한 되씩 팥을 먹였다. 하루 한 되씩 황금을 놓아주길 바라고였지만 고양이는 한 되씩 팥을 먹고 말라가다 죽었다.

 동생이 죽은 고양이를 찾아다 묻었는데 그 무덤에 오렌지 나무가 돋았다.

 오렌지의 꽃말은 '관대(寬大)함'이다.

 

          # 데이지

 이 꽃의 학명은 베리스 베렌니스. 베리스는 님프 베리디스에서 따온 이름이다.

 과수원의 신 베루다므나스는 숲속의 님프 베리디스의 춤에 반했다. 그녀의 춤은 베루다므나스만이 반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반할만큼 우아했다. 베리디스의 춤에 반한 과수원 신은 결국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베리디스가 호숫가에서 세수를 하는 아침부터 해가 저무는 저녁까지 베루다므나스는 한시도 그녀 곁을 떠나지 않고 더할 수 없을 정도의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베리데스한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 베루다므나스의 사랑은 갈수록 절절해지고 그것이 진정이란 걸 알게 된 베리디스도 이 때부터는 말할 수 없는 고민에 빠졌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럴 수도 없는 베리디스는 이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꽃으로라도 변해버릴 수 있다면, 이토록 가슴 쓰린 괴로움은 잊으련만......'

 베리디스는 산다는 것이 지겨웠다. 그때마다 그녀는 차라리, 하고 생각하곤 했다. 그녀는 어느 누구도 버릴 수가 없고 그렇다고 어느 누구를 선택할 수도 없었다.

 베루다므나스나 약혼자나 둘 다 젊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베리디스는 자기를 원망했다. 그녀의 소원은 하루 저녁무렵 조용히 이루어졌다. 그녀가 꽃으로 변한 것이다.

 이튿날 아침 베루다므나스는 사랑하는 그녀를 만난다는 부푼 가슴으로 호숫가를 찾았다.

 거기엔 당연히 있어야 할 베리디스가 보이지 않았다. 여늬 때라면 그녀가 수정처럼 맑은 물로 세수를 하고 있을텐데 없다. 아무 데도 없었다. 베루다므나스는 불안한 가슴을 누르고 항상 그녀가 앉았던 그 자리로 가 보았다.

 호수의 물이 찰랑거리는 물가 양지에는 사랑의 고통을 안고 생각에 잠긴듯한 데이지 한 그루가 있을 따름이었다.

 데이지의 꽃말은 '청결', '소녀의 순진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