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 꽃의전설

코스모스/달맞이꽃/맨드라미/국화

如岡園 2009. 9. 13. 21:01

          # 코스모스

 다른 초목들이 모두 시들어가고 누렇게 변색되어질 때 혼자 황량한 가을 들판을 어지럽히며 피는 코스모스의 정취는 가슴이 아리도록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꽃피는 밤에 더욱 좋다.

 멀쑥하니 키만 멋없이 커가지고 줏대없이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고......

그래도 가련한 꽃모양이 애잔해서 소녀들의 가슴에 센티멘탈한 슬픔을 가지게 한다.

 마치 여인의 타고난 숙명처럼 여리고 고운 모습.

 그래서 코스모스가 만발한 언덕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헤어지고, 코스모스가 비바람에 꺾어지던 날 병든 소녀가 죽어가고, 소복한 여인의 치마자락에 감기는 꽃이 코스모스고......

 코스모스는 슬픈 꽃이다.

 그리스에 한 가녀린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한 청년을 사랑하다 그만 죽어버려서 꽃이 되었다는 식의 서글픈 사랑 이야기라도 있을 법한데, 어쩐 셈인지 코스모스에는 그런 전설이 없다.

 단지 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만든 꽃이 코스모스라는 '맨 첫번'이라는 영광을 갖고 있을 뿐이다.

 맨 처음 만든 꽃이 너무 가냘프기만 해서 흡족할 수 없었던 신은 이렇게도 만들어 보고 저렇게도 만들어 보았다. 덕택에 코스모스의 종류가 다양다채롭다. 그러나 가장 분명한 것은 갖은 재주를 다 피웠어도 코스모스만은 신의 입장으로서는 실패작에 속했으리라.

 변변찮아서 신이 팽개친 코스모스는 오히려 인간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지각색이 한데 엉켜서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도 좋고 기차나 버스로 긴 여행을 할 때 길가에 먼지 뒤집어 쓴 코스모스 행렬도 썩 좋다.

 코스모스가 가냘프고 차고 맑은 것은 원래 고산에서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원산은 멕시코, 콜럼부스 덕택으로 유럽에 건너왔다.

 기온이 내려가 섭씨 15도 내지 17도가 되면 피기 시작하는데 요즈음엔 여름부터 피는 개량종도 있다. 이름하여 센세이션 코스모스.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정. 그리고 의리이다.

 

          # 달맞이꽃

 한 호수가에 별을 사랑하는 님프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밤바다 별이 잠기는 호수를 들여다 보며 별자리 전설을 얘기하는 것에 더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은하수 한가운데 백조가 날개를 폈지요.그 왼쪽의 큰 별이 직녀성이고 그 오른쪽이 견우성이래요. 그렇게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일년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니 어쩜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님프들의 얘기는 밤이면 언제나 되풀이되고 그럴 때마다 님프들은 안타까와했다. 그러나 그 님프들 중의 한 님프는 그럴수록 더 우울해졌다. 그는 유독 달을 사랑하여, 불행히도 별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달이 없는 밤이면 미칠듯이 외로왔다. 달님을 두고 별 따위를 사랑하는 님프들이 미워졌다.

 "별따위는 없는 것이 좋아요. 달님만이 있다면 이 호수가 얼마나 아름다울까."

 달을 사랑하는 님프가 몰래 혼자 지껄이는 이 소리를 다른 님프들이 듣고 그들은 참을 수 없는 홧김에 그만 제우스 신에게 일러바쳐다.

 제우스 신은 그 님프를 당장 죽일듯이 노했다. 달만을 사랑하는 님프는 제우스의 명령대로 달도 별도 없는 황량한 호숫가로 쫓겨갔다.

 달의 신 아테미스가 이 사실을 알았다. 아테미스는 자기를 사랑하는 그 님프를 그렇게 고생시킬 수가 없었다. 제우스 신 몰래 아테미스는 그 님프를 찾아 벌판을 헤매었다.

 제우스가 이것을 알고 아테미스가 헤매는 곳을 따라 구름으로 태양을 가리고 비를 퍼부어 아테미스를 방해했다. 그동안 그 님프는 달이 없는 호숫가에서 아테미스를 기다리다 지치고 자꾸만 여위어갔다.

 아테미스가 그 황량한 호수에 다달았을 땐 빼빼 말라 쓰러진 채 님프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아테미스는 님프를 안고 서럽게 울다가 눈물이 말라 더 울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님프를 언덕 위에 묻었다. 님프의 무덤에서 피어난 달맞이꽃은 지금도 해가 지면 박꽃처럼 달을 닮아 노란 빛깔로 핀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말없는 사랑, 소원, 기다림이다.

 

          # 맨드라미

 로마에 천명의 힘을 합친 만큼 용감한 장군이 있었다. 베르로라는 그 장군은 타고난 성품이 충직하여 바른 소리 잘하고 불의를 보면 참질 못했다. 그러니 자연 다른 간신들의 미움을 받게 되고 그들의 계략으로 고향에서 편안하게 있을 사이 없이 늘 싸움터로만 돌아다녔다.

 베르로장군은 불만없이 싸움을 도맡아 하면서 임금님에게 고귀한 충성을 바쳤다. 그가 지휘하는 전쟁은 언제나 승리였고 그것은 임금을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싸움터에서 싸움터로 전전하기 십여년만에 베르로장군은 왕의 부름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목마르게 그리워하던 고국에 돌아와 보니 멀리서 그리던 고국이 실제의 고국보다 훨씬 좋았다.

 간신들은 서로 헐뜯고, 귀족들은 재산을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늙은 왕은 훌륭한 신하를 갖지 못해 함께 어리석어지고 있었다. 베르로장군은 차라리 삭막한 전쟁터에서 사내답게 싸우다 죽는 것이 훨씬 깨끗하리라 생각했다. 치사하고 비열한 무리 틈에서 분통을 키우느니 다시 칼을 들고 싸움터로 나가고 싶었다.

 베르로는 왕께 말했다.

 "각하, 소신에게 다시 칼을 쥐어 주십시오. 못다 무찌른 적과 생명 있는 한 싸우렵니다."

 어리석은 왕은 간신들 등쌀에 충신을 몰라보았다. 베르로가 자기의 왕위를 탐낸다는 이야기를 믿고 싸움터에 가기 전에 한가지 결투를 명령했다. 좁은 방 안에서 베르로는 몸을 도사릴 여유도 없이 삼십여명의 무사에게 둘러싸였다. 베르로는 계획적인 모살에 휩쓸려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베르로가 쓰러지자 간신들은 왕에게 달려들었다. 모반이었다. 간신히 베르로가 일어나서 문을 막아섰다. 그리고 차례로 간신들의 목을 잘라버리고 왕의 무사함을 확인한 뒤에 아주 쓰러져 죽었다. 왕은 늦게서야 베르로장군의 충성을 알았고, 방패처럼 생긴 맨드라미는 베르로장군의 충성어린 영혼으로 피어났다.

 맨드라미의 꽃말은 고결, 고상, 실연이다.

 

          # 국화

 신이 제일 나중에 만든 꽃이 국화란다. 그런 때문인지 식물 중에 가장 진보된 것이 국화다. 꽃모양이 우아하면서도 화려하고 추위에 강인해서 곧잘 지조 굳은 충신이나 절개가 확고한 여인에 비유되는 국화는 동양에서 사군자의 하나로 꼽힌다.

 중국의 학자 도연명의 국화예찬은 유명한 것이고, 국화를 장수(長壽)에 결부시킨 이야기도 많이 있다.

 중국 남양(南陽)의 여현(麗縣)에 감곡(甘谷)이라는 강이 흘렀다. 강의 상류에 국화가 많이 자랐는데 국화에서 떨어지는 이슬방울이 강물을 타고 하류로 흘러 그 물을 마시고 사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장수했다는 얘기. 장수한 것으로 이름난 선인(仙人) 팽조(彭祖)역시 국화 연못가에 살며 국화이슬을 받아마셨다 한다.

 역시 중국에 있었던 얘기.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선인이 제자 항경(恒景)에게 말했다.

 "이해 9월 9일에 이 집에 큰 재앙이 내릴 것이다. 곧 집을 떠나거라."

 항경의 식구들은 집을 떠났다. 비장방이 시키는대로 수유나무 열매를 넣은 주머니를 하나씩 어깨에 메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국화주를 마셨다.

 그날을 산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 보니 닭, 개, 소 등 집안 가축이 모두 죽어 넘어져 있었다. 그때부터 중국에 국화주를 마시고 재앙을 떨쳐버리는 9월 9일 중양절(重陽節) 풍습이 시작되었단다.

 국화는 용도가 다양한 꽃이다. 봄에는 어린 싹을 나물로 먹고, 여름엔 잎을 기름에 튀겨 먹고, 가을엔 꽃으로 화전(花煎)을 만들고, 겨울엔 흰꽃으로 술을 빚어 불로장생주라 한다.

 꽃을 즐기고, 먹는 것을 즐기고, 향기를 즐기고... 국화처럼 알뜰하게 쓰여지는 꽃도 없으리라.

 어느 도도한 여자처럼 싸늘하게 도사린 국화는 무엇보다도 마음 속까지 젖어드는 꽃내음으로 한 몫을 보는 꽃이다. 

 국화의 꽃말은 고결, 고상, 실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