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눈물/林語堂

如岡園 2009. 11. 19. 22:51

     눈 물

 

 내가 가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흐느끼거나 또는 그가 극장을 나올 때 얼굴에 눈물자국이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 한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이 말해 영화를 보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 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설명을 해보자

 "당신 우셨군요?" 우리가 남경극장에서 '레 미제라블'을 보고 나올 때 아내가 물은 말이다.

 "물론이지, 이런 위대한 작품에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완전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사실상 내 감정은 온통 격동되어 그날 밤 나는 머리가 아파 편안하게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포커를 했지만 아무 재미도 없었고 결과적으로 4원 25전만 잃고 말았다.

 사람이 책이나 영화에서 하나의 훌륭한 얘기를 보고 눈물을 흘려서 안될 일이 무엇인가?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사마천의 말에 근거를 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비극의 진정한 효능은 사람의 감정을 발산시키는 데 있다고 했다. 중국의 위대한 역사가이며 수필가인 사마천은 '사람의 혈액을 시원하게 흐르게 한다'고 했다. 만일 위대한 작가가 걸작을 쓰고 그것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상연을 할 때 관중이 울지 않는다면 그것은 배우들에게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관중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운다는 것이 체면에 관계된다거나 아니면 남자답지 못한 것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는 그런대로 상당한 이유가 있다. 만약 한 사람이 함부로 웃거나 운다면 당신은 그를 감정에 치우친 사람 혹은 무식하고 유치한 백치라고 말할 것이다. 이 말이 옳기는 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그 어느 때 한 번도 감격해서 눈물방울을 흘리지 않은 적이 있겠는가? 영화에서는 비교적 인생을 진지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쉽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만약 비극이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릴 수 없게 했다면 무슨 감정의 발산작용을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사도라 덩컨은 일찌기 여인은 악기와 같다는 말을 했다. 동시에 애인을 하나만 가진 여인은 한 음악가에 의해서만 연주된 악기와 같은 것이라는 비유까지 들었다. 각기 다른 연인들이 같은 한 여자를 다른 모양의 정부(情婦)로 변모시킬 수 있는 것은 각기 다른 음악가들이 똑같은 악기를 가지고 다른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모든 예술품은 미술가와 원품(原品)을 반영한 것이요, 어떤 때는 또 예술가와 관중을 반영한 것이다. 같은 한 폭의 그림을 앞에 놓고 어떤 사람은 무한한 감동을 느낄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아무런 관심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보는 사람의 감각이 예민하면 예민할수록 한 예술품에 대한 반영은 더욱 절묘해지는 것이다. 해가 서산으로 지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릴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은 해가 지고 있을 뿐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해가 지는 것이 무엇이 신기하냐고 큰소리를 치는 상인도 울 때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증권이 하루 사이에 배나 뛰어올라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은행에서 갑자기 그의 대출장부를 결산하자고 덤빌 때 그는 기가 죽어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우는 것이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우는 것이 남자답지 않다고 하겠는가?

 사실 어떤 사람의 감각이 다른 사람에 비해 예민한 경우가 있다. 이것은 바로 어떤 바이얼린이 다른 바이얼린에 비해 더욱 좋다는 얘기와 같은 것이다. 하나의 위대한 예술품은 훌륭한 감상자에 의해 감상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 필의 좋은 말은 잘 탈 줄 아는 사람에게 타도록 해야 하는 것과 같다. 하나의 훌륭한 악보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음악가로 하여금 연주토록 해야 한다. 책과 작가도 마찬가지다. 한 작가에 대한 각자의 감상도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어떤 사람은 어느 한 마디 말을 감상하고 다른 사람은 다른 한 마디를 감상한다. 작가와 완전히 동감하는 독자는 매우 적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은 눈물이 있다. 문제는 당신이 무엇을 울음의 대상으로 하느냐에 달렸다. 즐거운 눈물, 슬픈 눈물에서부터 사랑하는 눈물, 용서하는 눈물이 있고 모자가 이별하는 눈물과 다시 만나는 눈물이 있다. 어떤 사람은 다정다감한 소설을 읽고 눈물 흘리며 어떤 사람은 그 밖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만약 어느 한 사람이 울고 싶다고 느낄 때는 그를 울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지(理智)가 있기 전에 우리는 감정의 동물이다. 한방울의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것이 양해이든 아니면 동정이든 아니면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즐거움에서이든 물을 것 없이 그것은 그에 대해 허다한 이익이 있을 것이다.   (임어당 수상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