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인생이 하루하루 소모되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비록 어떤 사람의 수명이 연장된다 하더라도 그가 과연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물을 올바로 이해하고 신과 인간에 관한 지식을 추구하는 힘을 유지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람은 노망을 부리기 시작하더라도 호흡, 소화, 사고, 충동,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모든 기능을 잃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잘 지키고 의무를 명확하게 분별하고 현실을 분석하고 지금이 인생을 하직할 때가 아닌가 하는 판단과 그밖에 잘 훈련된 추리력을 필요로 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능력이 제일 먼저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둘러야 한다. 그것은 다만 시시각각으로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죽기 전에 이미 사물에 대한 통찰력이나 주의력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자연에 순응하여 만들어진 사물에 수반되는 현상에도 아취와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빵은 구울 때 군데군데 갈라진다. 이렇게 갈라진 부분은 빵을 굽는 사람의 의도와는 어긋나는 것이지만, 일종의 아취가 있어 자못 식욕을 돋구어 준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열매도 완전히 여물면 입을 벌린다. 금세 열매가 떨어지려고 하는 감람나무는 열매가 한창 무르익었기 때문에 오히려 각별한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고개 숙인 곡식 이삭이나 사자의 눈썹, 멧돼지 입에서 흘러 내리는 거품이나 그 밖의 많은 것들이 하나하나 따로 떼어서 보면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연에 의해서 생긴 결과이기 때문에 사물은 미화되고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감수성과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는 사나운 짐승이 입을 딱 벌린 것을 보아도 화가나 조각가가 이것을 소재로 하여 표현한 작품을 바라보는 것 못지않은 쾌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려 깊은 눈으로 늙은 남자나 여자에게서도 힘찬 성숙미를 발견할 것이며, 어린이들에게서는 사랑스러운 매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많지만 그것이 만인의 마음을 끄는 성질의 것은 아니고 참으로 자연과 그 조화에 친밀감을 갖는 자에게만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공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남의 일 때문에 당신의 여생을 소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다른 일을 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즉 누구누구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을 하려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이런 잡념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속에 있는 자제력에서 벗어나 혼미한 길로 접어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부질없고 헛된 것은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괜한 호기심이나 심술궂은 것은 피해야 한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갑자기 "지금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하고 물어도 즉시 정직하게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내용만을 생각하도록 습관을 붙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 그 답변을 들으면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단순하고 선량하며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어울리고, 당신이 쾌락에 무관심하고 모든 향락적인 생각이나 적대감 혹은 질투나 의혹, 그 밖에 당신이 자기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에 얼굴을 붉힐 일은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 곧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실로 이런 인간은, 즉 지금부터라도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야말로 일종의 사제(司祭)나 신들의 종복(從僕)이며 또한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신성(神性)에 봉사하는 자인 것이다. 그 마음속의 신성은 인간이 쾌락에 물들지 않고 어떤 고통에도 손상되지 않으며, 어떤 위해의 손길도 미치지 못하고 어떤 악에도 무감각할 수 있도록 지켜주며, 그를 최대의 경기(競技)- 즉 어떤 격정에도 압도되지 않는 것을 다루는 경기 -의 선수로 만들며, 그의 마음이 정의감에 가득 차 있게 하여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자기에게 운명으로 주어진 일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인간이 되게 하고, 특히 필요할 경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행하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와 관계되는 일만 염두에 두고 우주 가운데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숙고하여 자기의 임무를 훌륭히 마칠 수 있도록 힘쓰며,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은 훌륭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은 우주의 질서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운명 속에는 우주의 질서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성을 가진 사람은 모두가 한 동포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을 돌보는 일은 인간의 본성에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우리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 아니라 다만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사람의 의견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집에서나 집 밖에서 또는 밤이나 낮에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사람과 상종하고 있는가를 눈여겨 본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의 칭찬 따위는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지 마지못해 해서는 안되며 또 이기적인 동기에서 해서도 안된다. 그리고 무분별하게 마음에도 없는 일은 하지 말라. 당신의 생각을 미사여구로 꾸미지 말라.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신성(神性)을 삶의 수호자로 삼고 남자다운 인간, 성숙한 인간이 되어 정치에 관여하며 로마인으로서 또는 지배자로서 자기의 직분을 수행할 때 언제나 생명을 던질 각오를 가진 인간답게 자기 위치를 지키는 '자가자신의' 지배자가 되라. 어떤 선서도, 어떤 증인도 필요 없이 담담하게 행동해야 한다. 마음을 맑게 하라. 남의 도움을 구하지 말며 남이 주는 평안을 바라지 말라. 남이 자기를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똑바로 서야 한다.
다음과 같은 일을 당신에게 강요할 때 그것을 당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알고 소중히 여겨서는 안된다. 즉 신의를 어기고, 절도를 지키지 않고, 남을 미워하고, 의심하고, 저주하고, 위선을 위한 벽과 커튼이 필요한 일을 하도록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이성과 다이몬(內心의 소리)과 그 덕을 숭상하는 길을 택한 자는 비극을 연출하지 않고 탄식하지 않으며, 고독하지도 않고 많은 사람과의 교제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죽음을 추구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살아갈 것이다. 자기의 영혼이 육체에 구속되어 있는 기간이 길든 짧든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품위와 절도를 잃지 않고 다른 일을 처리할 때처럼 담담한 마음으로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일생을 통하여 그의 유일한 소원은 오직 자기 마음가짐이 언제나 이성적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합당치 않은 일이 없어야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정진(精進)과 정화(淨化)에 힘쓴 사람의 정신 속에는 부패한 것이나 부정한 것 그리고 겉은 깨끗하나 속이 곪아 있는 상처 같은 것은 전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일생은 마치 비극 배우가 자기 역을 마치지 않고 극이 끝나기 전에 무대를 떠날 때처럼 미완성 상태로 끝나버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에게는 노예근성이나 허세를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남을 의지하거나 남에게 등을 돌리는 일도 없고 문책을 당할 일도 없으며 쥐구멍을 찾을 일도 없다.
다른 것은 모두 버리고 이 몇 가지만 지키도록 하라. 그리고 누구나 오직 현재 즉 한순간에 불과한 현재만을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밖의 것은 이미 지나버린 것이거나 아직 미지의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생은 짧고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지구상의 한 모통이에 지나지 않는 다. 사후의 명성도 잠시 뿐, 이 명성은 미구에 죽어 갈 소인들에 의해 전승될 뿐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터에 이미 옛날에 죽은 자의 일을 알 리가 없다.
육체, 영혼, 이성 - 육체에는 감각이 속해 있고 영혼에는 욕구가 속해 있으며 이성에는 신념이 속해 있다. 감각을 통하여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가축에게서도 볼 수 있다. 충동의 밧줄에 조종되는 것은 들짐승이나 여자와 같은 남자나 팔라리스(B.C 6세기 경 시실리아의 폭군) 또는 네로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사물을 올바로 판별하는 이성은 신들을 부정하는 자나 조국을 팔아넘기는 자 또는 문을 닫아 걸고 갖은 불결한 짓을 행하는 자들도 갖고 있다.
그밖의 모든 일도 위에서 내가 말한 바와 같다면, 선한 인간의 특성으로 남는 것은 자기에게 닥친 여러가지 일이나 자기를 위해 운명의 손길이 제공한 것을 모두 사랑하고 환영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기의 가슴속에 깃들여 있는 다이몬을 더럽히거나 무수한 상념으로 산란하게 만들지 않고 이것을 깨끗이 보존하고 신에게 공손히 순종하며, 진실에 어긋나는 말을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고 정의에 위배되는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기가 성실하고 겸손하며 선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더라도 아무에게도 화를 내지 않고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인도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그 목적을 향하여 순결하고 조용하게 아무 집착없이 스스로 자기 운명에 보조를 맞춰 나가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후기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명상록 또는 自省錄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手記의 原題는 <자기 자신에게(ta eis eauton)>인데 때로는 국경에서, 때로는 멀리 북방 변경의 陣中에서 기록되었으며 남에게 읽히기 위해서 썼다기보다는 그야말로 자기 성찰의 기록이다. 고대정신의 가장 고귀한 윤리적 산물로서 고금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여기 '운명에 대하여'라 제목한 것은 명상록 극히 일부분의 글에 그 내용을 좇아 편의상의 제목을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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