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초(蘭草)
천박하지 않은 향기로 사랑을 받는 난초는 토질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아예 자라려고도 하지 않는 귀족 계급의 꽃이다.
난초 이야기의 무대는 인도.
인도의 신(神) 부라마에게 비시누라는 아들이 있었다. 부라마 신은 비시누에게 땅에 내려가서 착한 일을 하라고 명령했다.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땅에 내려온 비시누는 늙은 모습으로 변해서 인도 구석구석을 뒤지며 자기가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노인은 간디스강 주변의 좁은 거리로 들어섰다가 길가의 수수밭 속에 슬픈 얼굴로 앉아 있는 소녀를 보았다. 잔뜩 시름에 겨운 소녀는 이슬에 젖은 꽃잎처럼 예뻤다.
"나는 늙은 나그네요. 내 이름은 그리시나외다. 아가씨가 슬퍼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아, 고마운 할아버지. 저는 나쟈나공주입니다. 아버님께서 신분이 다르다고 성의 문지기인 그이와의 결혼을 승낙하시지 않습니다."
"공주님, 동정합니다. 크게 동정합니다."
노인은 곧 젊은 문지기를 찾아갔다.
"강을 건너 저 산 속에 제일 큰 느티나무가 있을 것이오. 그 아래 피어 있는 꽃을 따다 임금님께 바치시오."
젊은 문지기는 그 꽃을 따러 멀고 험한 길을 떠났다. 그가 목숨을 걸고 꽃을 찾는 동안 나쟈나공주는 이유없이 무서운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됐다.
나라 안이 발칵 뒤집혀서 명의란 명의는 모조리 동원되었지만 나쟈나공주의 병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될 뿐이었다. 임금이 사랑하는 딸의 목숨은 경각을 다투었다. 그리하여 임금은 공주의 병을 고쳐주는 자에겐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햇빛이 찬란한 어느 아침, 젊은 문지기가 한 송이 꽃을 들고 나타나 오랫동안 잠겨져 있던 공주의 눈을 뜨게 했다.
젊은이의 소원은 나쟈나공주, 임금은 약속을 지켰다. 그 꽃이 파리오페디룸 베니스툼, 즉 난초다.
난초의 꽃말은 '애인'이다.
# 민들레
노아의 대홍수 때다.
도망칠 수 있는 생물들은 모두 홍수를 피해 도망쳤지만 앉은뱅이꽃 민들레족들은 도망을 칠 수가 없었다. 발바닥이 땅에 눌어붙어 아무리 발버둥쳐도 떨어지지 않았다.
꼼짝없이 도망도 못쳐보고 앉아서 죽게 된 민들레들은 무섭게 밀려오는 물살이 너무 무서워서 금방 머리털이 하얗게 세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민들레는 소리 합쳐 하나님께 구원을 빌었다. 그 불쌍한 기도소리를 들은 하나님이 바람에 민들레씨를 실어서 물이 미치지 못하는 언덕에 옮겨 주었다. 너무 고마와서 그 후의 민들레는 모조리 얼굴을 반짝 치켜 하늘을 보며 노랗게 웃었다.
민들레는 또 다른 전설을 갖고 있다. 딱 한 번 밖에 명령할 수 없으며, 그 딱 한 번의 명령은 어떤 명령이든 반드시 성공한다는 운명의 별을 타고난 한 제왕이 있었다.
제왕은 딱 한 번이라는 인색한 기회가 불만스러워 항상 침울하고 따분한 얼굴로 싸돌아 다니며 궁리했다. 하늘을 우러러 보면 무수히 빛나는 별들. 하필이면 자기에게 인색하기 짝이 없는 별의 운명을 붙여 줬을까.
그의 불만은 별을 향해 끈기있게 커갔다. 그는 사뭇 골돌히 궁리했다. 한 번! 단 한 번의 기회를 얼마나 최대한으로 적절히 이용하는가를.
그가 생각하는 적절한 이용이란 자기 불만을 가장 시원하게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정확하게 찾아내서 유감없이 써버리는 것이다.
그는 결국 그것을 찾았다. 하늘의 모든 별에게 복수할 수 있는 썩 훌륭한 명령을 생각해 냈다.
"자, 하늘의 못생긴 별들아! 모조리 떨어져 한 떨기 보잘 것 없는 꽃이나 되어라. 나는 너를 짓밟겠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명령은 곧 성공했다. 별들은 떨어져 노란 민들레가 되고 왕은 그것을 밟고 다니는 목동이 되어버렸다.
목동이 된 왕은 한 점의 후회 없이 평생 민들레를 밟으며 유쾌했을까.
민들레의 꽃말은 '분산'. '무분별', '나쁜 점'이다.
# 할미꽃
온 몸을 솜털로 감싸고 수줍은 듯, 추운 듯 머리 숙이고 피어나는 할미꽃에는 불쌍하게 죽어간 할머니의 넋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산골에 가난한 할머니가 두 손녀만 데리고 외롭게 살았다. 큰손녀는 얼굴이 예뻤지만 심술이 많았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작은손녀는 얼굴은 미웠지만 마음씨가 무척 고왔다.
할머니는 두 손녀를 똑 같은 만큼의 사랑으로 키워서 시집 보냈다. 예쁜 큰손녀는 동네 가까운 부자집 며느리가 되었고, 미운 작은손녀는 산 너머 먼 데 사는 산지기 아내가 되었다.
시집가면서 작은손녀가 할머니를 모셔가겠다고 했었다. 언니가 말했다.
"넌 걱정 말고 가거라. 동네 체면도 있는데 할머니를 가난한 너에게 맡길 수 있겠니?".
눈이 샐쭉해져서 쏘아붙이는 언니 때문에 작은손녀는 울면서 그냥 산을 넘어 시집을 갔다.
할머니는 외톨이가 돼서 하루하루 늙어만 갔다.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할머니는 쌀 한 톨 남지 않은 오막사리 집을 나서서 시집 간 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큰손녀네 집으로 갔다.
"그런 거지차림으로 찾아 오면 어떡해요 남부끄럽게."
고약한 큰손녀는 문앞에서 할머니를 쫓아버렸다. 할머니는 아무 말없이 그대로 발길을 돌려 작은손녀를 찾아 먼 길을 나서걸었다. 주름이 가득 잡힌 얼굴 위로 눈물이 자꾸 흐르고 몰아치는 세찬 겨울 북풍은 기진한 할머니를 쓰러뜨릴듯 사납게 불어댔다.
지팡이에 의지해서 쓰러질듯 쓰러질듯 산을 넘은 할머니는 저만큼 작은손녀의 집이 보이는 곳에서 쓰러져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손녀는 가슴이 터지게 울며울며 할머니를 뒷산 양지쪽에 묻었다.
할머니를 넘어뜨린 매서운 추위가 가고 온 누리에 가득히 봄빛이 넘실거릴 때, 할머니의 무덤 위에 하얀 솜털을 뒤집어 쓴 허리 굽은 꽃이 피었다. 할미꽃이다.
할미꽃의 꽃말은 '충성' 그리고 '슬픈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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