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찔레꽃
봄의 산야를 하얗게 덮는 찔레는 잔꽃송이가 무리지어 피어서 향내를 풍기다 진다. 꽃이 진 자리엔 콩알만큼한 빨간 열매가 달린다. 손 보는 이 없어도 꾸준히 피고 지는 찔레꽃에는 우리 민족의 비애를 대표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고려시대 우리나라에선 북방의 몽고족에게 해마다 여자를 바치는 관례가 있었다. 조공녀(朝貢女)라는 이름을 붙이고 한 번 북쪽으로 끌려가면 다시는 그리운 고향도 부모형제도 볼 수 없었다.
소녀 찔레도 공녀의 하나였다.
주인이 의외로 후덕했고 지위가 높은 집안이어서 찔레의 생활은 비록 공녀의 처지였지만 사치롭고 한가했다.
아무도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고 부자유스러운 것도 없었지만 언제나 찔레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이었다.
가난했어도 얼마나 그리운 고향인가. 늙어서 꼬부라졌어도 얼마나 깊은 사랑으로 키워준 부모님인가. 나이 어려 말썽만 부리던 개구장이이지만 얼마나 다정한 동생인가. 찔레의 향수는 어느 것으로도 달랠 수가 없었다.
고향에의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울면서 십 년을 보낸 어느 무렵에, 찔레를 가엾이 여긴 주인이 찔레의 동생을 데려오라고 고려로 종을 보냈다. 십 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에 가려 찔레의 가족은 어디로 흩어졌는지 찾아지지 않았다.
종이 털레털레 혼자 돌아오자 낙담한 찔레는 혼자 길을 떠났다.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산으로 산으로 헤매었다. 옷자락이 찢어지고 발바닥이 터지고 나무가지에 얼굴이 긁혀도 단념하지 않았다. 동생은 끝내 찾을 수 없었고, 오랑캐나라로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던 찔레는 산 속에서 죽었다.
그 마음이 흰꽃이 되고 흘린 눈물은 빨간 열매가 되고 동생을 부르던 그 아름다운 목소리는 향기가 되었다. 늦은 봄이자 초여름 햇빛 속에 엉켜 피는 찔레는 곧 소녀 찔레의 집념이리라.
찔레꽃의 꽃말은 '양심의 가책' 이다.
# 수선화
그리스에 나르키소스라는 아름다운 소년이 있었다. 그는 양떼를 몰고 햇살이 따뜻한 곳으로만 골라 다니는 한유한 목동이었다. 뛰어나게 잘생긴 나르키소스는 여러 님프들에게서 번갈아 사랑의 애소를 받았다.
무심한 나르키소스는 님프들의 애달픈 구애에 아랑곳없이 양떼를 모는 일에만 열심이었다. 님프들 중의 어느 누구도 나르키소스를 독차지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못견디게 화가 난 님프 하나가 복수의 여신에게 빌었다.
"교만한 나르키소스가 언젠가 참사랑에 눈뜨게 하시옵고, 그 사랑이 깨어지게 해 주옵소서".
나르키소스를 저주한 님프의 기원은 얼마 안가서 이루어졌다.
역시 그 날도 양떼를 몰고 나온 나르키소스는 문득 목이 말라 맑은 물이 찰랑대는 호수를 찾았다. 엎드려 물을 마시려던 그는 호수 속에 있는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님프가 있다니, 아마 호수의 님프인 모양이다.)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호수의 님프인 줄 알고 잡으려 물 속에 팔을 넣었다. 물 표면이 흔들리면 없어지고 잔잔하면 다시 나타나는 알 수 없는 그 모습은 나르키소스가 웃으니까 따라 웃었다.
그는 호숫가를 떠날 수가 없었다.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해가 뜨는 것도 모르고 마냥 호수만 들여다 보면서 붙잡을 수 없는 물 속의 자기를 애타게 사모했다.
양떼는 뿔뿔이 흩어지고 물 속만 들여다 보던 나르키소스는 그 자리에서 말라 죽어버렸다. 숲의 님프들이 모여들었고 그녀들은 나르키소스의 시체를 화장하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 후에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 가련하고 청초하면서도 품위 높은 꽃 한송이가 피어났다. 이름하여 수선화, 또는 나르키소스.
물 속의 자기를 사랑하다 죽어간 나르키소스 미소년의 넋은 물가에서만 꽃을 피우고 있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사랑', '몰념(沒念)', '짝사랑' 이다.
# 철쭉
진달래가 자취를 감추려 할 무렵에 산야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철쭉.
참꽃이라고도 불리는 진달래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꽃이지만, 자칫하면 진달래로 오인하기 쉽게 진달래를 많이 닮은 철쭉은 꽃잎의 점액에 독이 있어 먹지 못하는 꽃.
'붉디 붉은 바위 끝에
잡고 온 암소를 놓아두고
나를 부끄러워 아니 한다면
저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강릉태수로 부임해가는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절벽 끝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고 '누가 바위 끝의 꽃을 꺾어 오지 않겠는가'고 했을 때, 암소를 몰고 지나가던 노인이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부른 노래 <헌화가>의 그 꽃이 철쭉꽃이다.
철쭉꽃의 꽃말은 ' 사랑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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