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종우(太宗雨)
음력으로 5월 10일에는 꼭 비가 오게 마련이요 그것을 태종우(太宗雨)라고 부른다.
실질상으로 조선왕조를 창업하다시피 한 태종이 병석에 있으면서도 날이 가무는 것을 끔찍이도 걱정하더니, 결국 임종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자 유언처럼 말하였다.
"내 죽거든 상제(上帝)에게 가 이 백성을 위하여 비를 내려 주십사 하겠노라"
운명하자 구름이 모여 들며 표연히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며칠을 계속하니 백성들은 모두 그의 주심이라 하였다 한다.
그 뒤로 매년 매년 이 날이면 틀림없이 비가 왔는데, 몇 해를 계속해 안 오더니 임진왜란이 일어났더라고 선왕의 영험을 말하는 이도 있다.
그래 농삿군들은 가무는 중에 헌릉(獻陵) 국기(國忌)날만 기다리는 풍습까지 있었다.
한시의 마지막 대가인 최영년은 이렇게 읊었다.
王言去作人間雨 왕의 말씀 인간의 비를 주마시더니
白日千峰忽送雷 밝은 메뿌리 우뢰소리 울려 온다
萬民咸喜先王賜 백성들은 모두다 선왕의 주심을 기뻐하고
五百年中年年來 오백년 뒤 지금까지 해마다 오네
# 한 다리가 짧은 게 아니라 길어
조선 중기에 상진(尙震)이라는 정승이 있었다. 밭 가운데 소 두 마리를 걸려서 밭 가는 사람이 있기에, 어느 소가 잘 가느냐고 물었더니 일을 멈추고 나와 귀에다 대고 일러 준다. 왜 그냥 말하지 이랬느냐니까, "아무리 짐승이라도 칭찬받는 소는 좋겠지만 못하다는 소릴 들으면 마음이 좋겠느냐" 고 하는 말을 들은 뒤로 평생에 남의 단점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분이다.
한 번은 절름발이가 지나는 것을 보고 모두들 한 다리가 짧다고들 한다. 그는 "왜 하필 짧다고 하여야 맛인가? 한 다리가 긴 것이지" 하였다고도 하는데 이건 좀 지나친 이야기 같다.
오상(吳祥)이란 이가
羲皇樂俗今如掃 - 희황적 좋은 풍속이 깡그리 없어져
只在春風盃酒間 - 오직 훈훈한 술자리에 있을 뿐이라
고 읊었더니 왜 그리 박하게 말하느냐면서
羲皇樂俗今猶在 - 희황적 좋은 풍속이 아직도 있어
看取春風盃酒間 - 춘풍 이는 술자리에서 볼 수 있도다
하고 글자 넉자를 고쳐 이렇게 부드러운 글을 만드는 솜씨였다.
당시의 명복(名卜)인 홍계관(洪繼寬)에게 물어, 자기 죽을 날짜를 짚어서 종신할 준비를 하였는데 끄떡도 없다. 홍계관 말이 무언가 남 모르게 적적하신 일이 있기에 그러리라고 하더니 십오년을 더 살아 영의정까지 지내고 세상을 떠났다.
# 화랑(花郞) 오계(五戒)의 근원
화랑의 오계는 삼국유사의 이런 기록이 근원이 된다.
귀산(貴山)과 취항(취項)은 한 동리에서 천하게 사는 사이였는데 매우 수양에 힘쓰는 사람이었다. 그 때 원광법사가 수나라에 들어가 공부하고 돌아온 것을 듣고 둘이 찾아갔다.
"저희들은 어리석어 아는 바 없으니 바라건대 한 마디로 종신의 교훈이 될만한 것을 일러 주십시오".
"불교에는 보살계(菩薩戒)가 있어 그 종류가 열 가지나 되지만 그대들은 남의 신하가 되어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事君以忠 - 임금을 섬기매 충심으로 써 하며
事親以孝 - 어버이를 섬기매 효도로 써 하며
交友以信 - 벗과 사괴매 신의로 써 하며
臨戰無退 - 싸홈에 임하여는 물러남이 없으며
殺生有擇 - 생물을 죽이더라도 가려서 하며
이 다섯가지를 행하여 소홀히 하지 말라."
"다른 것은 알겠으나, 죽이되 가려 하라는 말씀은 잘 모르겠습니다."
"육재(六齋)날과 봄 여름에는 죽이지 말 것이니 이것은 때를 가리는 것이요, 부리는 짐승을 죽이지 말지니 이는 말 소 닭 개를 말함이라. 또 가냘픈 것을 죽이지 않는 것이니 고기가 한꼬지도 안되는 것을 말함이라. 이것은 물건을 가리는 것인데 이 역시도 그 소용되는 데에 그칠 것이요 많이 죽여서는 안된다. 이것이 세속의 좋은 가르침(善戒)인 것이다."
그 뒤 귀산 등은 힘써 수양을 쌓아 군사로 나아가서는 나라에 공을 세웠다.
# 박태보가 살았을라구
뜨거운 것을 못 만지는 사람보고 흔히 하는 소리다.
박태보(朴泰輔)는 조선조 19대 숙종 때 사람으로 왕이 장희빈을 불러들여 왕비를 삼고 인현왕후 민씨를 폐출할 때 정면으로 간(諫)하다가 잡혀 참혹한 형벌을 받고 죽은 분이다.
전하는 말에는, 종묘 제향에 향로를 받드는 봉로관이 되었을 때 으례 물수건으로 싸서 드는 법이건만 나랏일에 약간 뜨겁다고 싸서 들다니 말이 되느냐고 맨 손으로 들었다고 한다. 누릿한 냄새가 나기에 왕이 돌아다 보니 박태보의 향로 든 손 끝이 타서 노란 연기가 오르는데 눈썹 하나 까딱 않더라는 그런 분이다.
그래 중전을 폐위하는 것을 간했을 때도 친국(親鞫)하는 자리에서, "너는 요즘 뜨거운 것 잘 참더구나!" 하고 인두를 달궈 단근(斷筋)질을 해서 역사상에 드문 참혹한 형벌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어 금천(衿川, 지금의 시흥)으로 귀양을 매었으나 간신히 노량진까지 이르자 형벌 여독으로 운명하였는데 그 때의 그의 나이 서른 여섯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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