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養名言

불안감과 고민에 대하여

如岡園 2010. 8. 14. 21:45

 사람이 늘 불안을 느끼고 사는 것은 어떤 부도덕한 일에 대한 가책에서 오는 수도 있다. 도덕 그 자체는 우리가 행복하게 되는 길을 직접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도덕은 행복으로 통하는 입구이며 행복을 받을 만한 토대를 제공하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남에게 친절히 하고 올바른 행동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안정감에 기초를 주는 것이다. 대체 불안이란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고 중심이 흔들리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로런스 굴드>

 

 너무 한가했던 것이 아닌가! 사람은 세수를 하고 나올 때와 안하고 나왔을 때와 기분이 확 다르다. 신체적인 조건이 감정에 미치는 힘은 상상 이상으로 큰 것이다.

 당신이 우울증에 걸렸거든, 그것을 이 신체상의 어떤 고장으로 생각하고 몸을 다스려 보라! 커다랗게 성격이니 운명이니 하고 이치를 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한 사람이 하루만 굶어 보라! 누구든지 슬픈 마음이 들게 된다. 육체의 움직임이 감정을 키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다소 기분 나쁜 감정이 발생 했더라도 그 순간 힘찬 육체적인 운동, 가령 하나 둘 하고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어 체조를 해 본다면, 그까짓 감정 쯤은 대번에 달아난다.    <데까르뜨>

 

 나는 무슨 일이고 간에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이고 머리에 담아 두지를 않는다. 내 천성이 무엇을 꼼꼼히 생각하는 데 적당치 않은 점도 있지만, 의식적으로 한가지 일에 골몰하는 습관을 갖지 않고 있다.

 취미고 오락이고 어느 정도를 지키지, 그 이상 깊이 들어가기가 싫다. 기쁜 일이라고 그리 좋아하지도 않으며, 괴로운 일이라고 그리 미워하지 않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누긋한 성미는 아니다. 오히려 남보다 느끼는 짓이 예민하고 마음이 약한 편이다. 감각은 예민하지만 한군데 젖어 있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괴로운 일을 감득하는 것이 남보다 빠른 한 편, 또 그 옆을 대번에 지나가버릴 뿐이다.

 내 마음은 한군데에 모여들지를 않으므로, 나는 감정을 억누르고 문제나 사건 속으로 뛰어들지 않도록 노력한다.

 나는 다만 내 자신의 일에 전심할 뿐이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밖에서 인상이 오고 자극이 오는데 나는 그것에 끌려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의 수많은 자극에 대해서 비교적 무감각한 상태를 유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대체로 나는 늘 마음이 평안하다. 이것은 플라톤이 말한 '고통을 너무 미워 말고 쾌락을 너무 사랑하지 말며 그 중간에 몸을 가누라'는, 즉 중간을 통하는 생활에 해당한다.

 내가 전력을 다해서 싸우는 것은 내 마음을 헤뜨리는 감정에 대해서 뿐이다. 나는 결국 내 자신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사람은 그 감정에 흔들리어 자기 자신을 소모하고 낭비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보면 나는 내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써 오히려 내 자신을 남에게 빌려 준다.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사로써 빌려 주는 것이다.    <몽떼뉴>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날도 홀연 변해서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요란할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바람이 불고 억수같이 비가 내리던 날씨도 홀연 변해서 밝은 달이 비치며 개인 하늘이 된다. 천지의 움직임은 이와같이 일정하지 않고 늘 변화가 무상하다.

 사람의 마음도, 금시 유쾌하다가 홀연 노여움과 원망으로 변하는 수가 있다. 또 노여움과 슬픔에 부닥쳤다가도 홀연 평화한 기분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비바람이 불고 천둥 소리가 진동하다가도 맑게 개이는 대자연의 모양과 같이 사람도 노여움이 불길 같다가도 그 뒤가 싹 걷히는 맛이 있어야 한다.    <채근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