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 꽃의전설

코스모스/ 글라디올러스/ 보리수/ 물망초

如岡園 2010. 8. 26. 23:44

           # 코스모스

 스산한 가을 들판, 이름 모를 간이역의 철길을 수놓은 코스모스의 정취는 가련한 꽃모양이 애잔해서 우리들의 가슴에 센티멘탈한 슬픔을 가지게 한다. 여인의 타고난 숙명처럼 여리고 고운 모습. 그래서 코스모스가 만발한 언덕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헤어지고, 코스모스가 비바람에 꺾어지던 날 병든 소녀가 죽어가고, 소복한 여인의 치마자락에 감기는 꽃이 코스모스라는 발상이 싹튼다.

 코스모스는 가냘프고 슬픈 꽃이다. 서글픈 사랑의 이야기라도 있을 법한데 그러나 코스모스에는 슬픈 사랑의 전설은 없다. 단지 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만든 꽃이 코스모스라는 영광을 갖고 있을 뿐이다.

 맨 처음 만든 꽃이 너무 가냘프기만 해서 흡족할 수가 없었던 신은 이렇게도 만들어 보고 저렇게도 만들어 보았다. 덕택에 코스모스의 종류가 다양다채롭다나. 그러나 가장 분명한 것은, 갖은 재주를 다 피웠어도 코스모스만은 신의 입장으로서는 실패작에 속했으리라.

 변변찮아서 신이 팽개친 코스모스는 오히려 변변찮아서 인간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지각색이 한데 엉켜서 흐드러지게 핀 정원의 코스모스도 좋고 기차나 버스로 긴 여행을 할 때 길가에 먼지를 뒤집어 쓴 코스모스 행렬도 좋다. 그만큼 친숙하고 사랑받을만한 가을꽃임에는 틀림없다.

 코스모스는 그리스 어로 '조화', '장식', '아름다움'이란 의미로 꽃이 아름답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산지는 멕시코. 컬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으로 유럽에 건너갔지만, 원래는 멕시코에서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거쳐 1799년 영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한다. 코스모스라는 이름도 이 마드리드의 식물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정', '의리'이다. 

  

 

           # 글라디올러스

 향기도 없고 화려한 꽃모양이 아닌데도 글라디올러스가 만인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 세련됨 때문이리라.

 성격이 포악한 왕에게 마음 착한 딸이 하나 있었다. 몸이 약해서 늘 누워 보내던 공주는 자기가 죽음에 가까와진 것을 알고 아버지에게 향수병 둘을 맡겼다.

 죽은 후에 무덤 옆에 묻어 주되 절대로 열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한 얼마 뒤에 공주는 자는 것처럼 숨졌다.

 왕은 딸이 부탁한대로 소중히 맡아 두었던 향수를 시녀에게 주었다.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는 왕의 명령을 받았지만, 호기심 많은 시녀는 누가 보랴 싶어서 향수병 하나를 열어 보았다. 뚜껑을 열자 금방 향수가 다 날아가 버렸다. 놀란 시녀는 그제야 허둥지둥 병 둘을 나란히 무덤 옆에 묻었다.

 이듬해 봄.

 공주의 무덤 옆에서 두 포기 풀이 돋아났다. 딸을 본 듯 기쁜 왕은 풀이 얼른 자라서 꽃 피기를 기다렸다. 풀은 싱그럽게 자라고 어느 아침에 왕이 기다리던 꽃이 피었다. 한 포기의 꽃은 향내를 풍겼고 다른 한 포기의 꽃에선 아무 향기가 없었다.

 시녀가 향수병을 열어본 때문이란 걸 안 왕은 당장에 그 시녀의 목을 잘랐다. 시녀가 죽자마자 향기없던 꽃이 붉은 빛깔로 변하고 잎이 칼처럼 변했다. 향내나는 꽃은 백합이고 영원히 향기를 잃은 붉은 꽃은 글라디올러스다.

 글라디올러스는 아래부터 피어 올라간다. 아래는 새침하게 봉오리를 다물고 중간은 반쯤 벌리고 끝은 활짝 웃는데 그 단계있는 모습이 처녀들의 마음과 흡사하다고들 한다.

 원산지는 열대 아프리카.

 로마 그리스시대부터 장식용으로 쓰여 왔다. 보통 봄에 심어 여름에 피지만, 가을에 심어 이른 봄에 귀한 꽃을 볼 수 있는 종류도 있다.

 꽃말은 '주의', '경고'이다.

 

          # 보리수

 쥬피터와 그의 아들 머큐리가 남루한 나그네 차림으로 마을에 들어와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하루밤 묵어갈 것을 간청했다. 늦은 밤, 아무도 피곤한 두 행인을 반겨주지 않았다.

 쥬피터와 머큐리는 마지막으로 가난한 초가집 앞에 섰다. 작은 초가집에서 나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둘러 두 행인을 맞아들여 정성어린 저녁을 대접하고 잠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피레모, 할머니는 보키스. 늙은 양주는 서로를 의지해서 가난하지만 평온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쥬피터와 머큐리는 노인들의 친절에 감사하면서 자기들의 신분을 밝혔다.

 "이렇게 인정이 메마른 마을은 아주 없애버리겠다. 그대들은 우리를 따라와 난을 면하라".

 늙은 부부는 허둥지둥 신들을 따랐다. 그들이 트리지아언덕에 다달아 뒤를 돌아보니 방금 자기네들이 떠나온 마을에 푸른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자기들이 살던 초가집은 대리석 신전이 되어 있었다.

 원하는 것을 말하라는 신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의논 끝에 대답했다.

 "저 신전의 문지기를 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둘이 죽는 시간을 똑 같게 해 주십시오."

 쥬피터는 약속했다.

 피레모와 보키스는 신전 문지기로 오래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언덕에 앉아서 얘기하다 나무로 변했다.

 피레모는 보리수가 되고 보키스는 참나무가 되어 지금도 희랍의 트리지아언덕에 마주 서 있다.

 석가여래가 49일 동안 이 나무 밑에서 고행하고 대오각성했다고 해서 불교국에선 성수(聖樹)로 알려져 있다.

 석가가 앉아서 고행한 보리수가 사교를 믿는 왕에 의해서 석가 사망 후 200년 지나서 베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다시 보리수 잎이 돋아 무성하게 자랐다.

 다시 베고, 그래도 안돼서 뿌리를 뽑아버렸지만 보리수는 여전히 새로 돋아나곤 했단다.

 보리수의 꽃말은 '해탈', '결혼'이다.

 

          # 물망초(勿忘草)

 물망초가 등장하는 많은 시와 노래를 보면 모두 애달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볼품없는 꽃모양에 향기도 없는 초라한 들꽃이지만 그 이름이 인상적이라 어느 것보다도 많이 알려진 꽃이다.

 그러나 영어명으로 'Forget me not(나를 잊지 마셔요)'라고 할만큼 그 사랑의 이야기는 차원이 드높은 것 같다.

 루돌프와 펠타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행복한 연인들. 얼마 남지 않은 결혼날을 앞두고 강변을 산책한 것이 전설의 시작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두 연인의 가슴에서 사랑의 믿음이 조금 더 굳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얼마 후면 너무 행복해서 말을 잊어버릴 거야. 왜냐하면 사랑하는 두 연인이 함께 일생을 살게 될 약속을 할테니까. (그후에도 그후에도 우리는 사뭇 행복할거야)

 강가에 앉은 루돌프와 펠타는 손을 잡고 노을을 바라보며 정답게 소근거렸다. 

 "루돌프! 저 강 둑의 꽃 보여요? 곱고 사랑스러워요. 나도 언제까지나 저렇게 곱게, 그리고 사랑을 받고 싶어요".

 펠타가 가리키는 손끝을 바라보고 루돌프가 벌떡 일어났다.

 "좋아 펠타! 내가 여원히 당신을 사랑한다는 표시로 저 꽃을 따다 줄께".

 위험하다고 말리는 펠타를 뿌리치고 강둑에 핀 하늘빛 꽃을 따러 내려갔다.  한 송이 꺾어들고 막 몸을 일으키려던 루돌프는 발이 미끄러져 강물 속으로 빠져버렸다.

 "루돌프! 루돌프!".

 둑 위에서 애타게 울부짖는 펠타를 바라보며 거센 물살에 휘말려 떠내려가던 루돌프는 전신의 힘을 모아서 꺾어 가졌던 파란 꽃을 펠타 쪽으로 던졌다. 그리고 소리쳤다. 

 "펠타! 나를 잊지 말아 줘!"

 떠내려가는 루돌프의 모습은 물에 잠겨 보이지 않고 강둑 위에 파란 꽃 한 송이를 안고 흐느끼는 펠타만 남아 있었다. 강물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도도하게 흐르는데...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셔요'.   

 

'꽃말 꽃의전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계수/동백/시클라멘  (0) 2010.12.27
풍경초(캄파뉼라)/ 옥잠화/ 포도  (0) 2010.10.27
백합/ 목단/ 클로우버  (0) 2010.07.16
찔레꽃/ 수선화/ 철쭉  (0) 2010.05.22
난초/ 민들레/ 할미꽃  (0) 201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