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빌론의 공중정원
신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BC 562)가 그의 비(妃) 세미라수미를 위해 만들었다는 정원. 고대 희랍인은 세계 7대불가사의의 하나로 이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들고 있다. 물론 글자 그대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 정원이 아니며 높다란 곳에 마련되어 있어 공중정원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건물 맨 꼭대기의 발코니에 만든 일종의 옥상정원이었다.
나무 숲이 드문 지방인데 높다란 건물 위에 울창한 수목의 정원을 만들었으니 당시의 사람들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 공중정원의 수목에 물을 주기 위해서 특별히 우물을 파기도 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시리아와 이집트를 격파하고 유다 왕국을 멸하여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의 강력한 왕조를 이룩했었다.
# 솔로몬의 영화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 이스라엘 왕국의 제3대 왕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탁월한 지혜와 교묘한 정치 수완을 발휘, 민심을 얻는 한편 주위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여 이스라엘은 유례없는 국력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솔로몬은 즉위 4년만에 부왕의 유지를 받들어 대사업에 착수했는데 곧 신전의 건조였다. 건축에 동원된 인원이 3만, 자재 운반에 7만, 석공 8만, 공사 감독의 관리 3천 3백이었으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 건축은 7년 걸려 완성했으며 내부는 순금으로 장식했다. 신전의 준공에 이어 제사를 지냈는데 이 때 하나님에게 바친 소가 2만 2천 두, 양 12만 마리, 다시 14일 동안의 잔치를 베풀었다.
신전에 이어 이번에는 자신의 궁전을 건조했는데 이 역시 호화를 극한 것으로 옥좌는 전부 상아로 만들었으며 계단은 여섯 개로 나누어 각 계단마다 한 쌍의 황금사자를 비치하고 황금의 방패 5백 개로 궁전을 장식했다. 심지어 식기에 이르기까지 은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금으로 만든 것만 썼다.
차츰 오만해진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이방인의 여자를 처첩으로 삼았는데 그의 비(妃)는 총 7백 명, 첩은 3백 명이었다. 이방인의 여인이 왕을 에워싸고 궁전을 차지하자 이로 말미암아 국론이 분열되고 각지에 반란이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 이 세상에서 더할 수 없는 영화를 누린 솔로몬 왕은 재위 40년만에 세상을 하직했다.
# 소돔과 고모라
팔레스타인의 시딤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던 두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10 명의 의인(義人)조차 찾아볼 수 없으리만치 사악과 음란으로 가득 차 있어, 마침내 하나님이 내린 불과 유황의 세례를 받아 모두 불타고 말았다. 이들 도시는 현재 사해(死海) 남쪽 바다 속에 잠겨 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벌을 받은 본보기로 성서에 곧잘 등장한다.
훗날 '소돔'의 죄, 즉 '소도미'는 자연에 반하는 사음(邪淫) 즉 계간(鷄姦), 수간(獸姦), 남색(男色), 동성연애 등 성적 도착(性的倒錯)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 마라톤
기원전 490년 페르샤 군은 알타페르네스와 다티스를 지휘관으로 하여 희랍을 침공, 에에게 해를 건너 아테네 시 북방 42km인 마라톤 평야에 상륙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구원을 청했으나 거절 당하여 독력으로 10 배가 넘는 페르샤의 대군과 싸워야만 했다. 그러나 밀티아테스의 교묘한 지휘로 아테네 군은 대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 마라톤 전쟁의 승리를 아테네 시민에게 알리고자, 한 용사가 40km의 거리를 단숨에 달린 끝에 승리를 알림과 함께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마라톤 경주'의 시작이라 하며, 현재 올림픽에서 거행되는 마라톤의 거리도 아테네~마라톤 간의 거리와 같은 40km(정확히는 42.195km)이다.
다만 그때의 용감한 병사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 폼페이 최후의 날
기원후 79년 7월 말 이태리의 나폴리 만 부근에 있는 베스비우스 화산이 대분화를 일으켜 그 기슭에 있던 로마인의 별장지 폼페이, 헬라클레네움, 스타비아에 등의 도시가 화산재에 덮인 채 멸망하고 말았다.
이것은 전설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였으나 1748년 봄,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이 도시의 유적을 파냄으로써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발굴이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은 거리의 대부분이 드러나서 이태리 유수의 관광지로 되어 있다.
폼페이가 멸망한 것은 로마의 전성기였으므로 발굴의 결과 귀족들의 호화로운 생활상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특히 주민의 일부분까지도 화석화하여 남아 있어 폼페이의 폐허가 지니는 의의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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