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종(初終)
임종(臨終)
사람이 운명 직전에 이르면, 정침(正寢)이나 대청으로 병자를 옮기고 안팎을 조용하게 한다. 한편 자손들이 모두 모여 손, 발을 잡고 숨이 끊어지는 것을 지켜보는데, 이것을 임종이라 한다. 부모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지키는 것은 자손의 도리로서 민속에서는 이것을 '임종한다'고 하며, 임종을 못하면 큰 불효로 생각해왔다. <四禮便覽> 등 <예서>에는 임종시에 남자는 남자의 손에, 여자는 여자의 손에서 명이 끊어져야 된다고 되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는 며느리나 딸의 무릎을 벤다든지 손을 잡지 않으며, 어머니도 역시 아들의 품이나 손을 잡고 숨을 거두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에는 그러한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이것은 옛날 남녀의 내외하는 관습과 관련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고복(皐復)
고복을 민간에서는 '초혼(招魂)', 또는 '혼을 부른다'고 하며 그 절차도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예서>에 나타난 고복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죽은 사람의 종(신분이 천한 사람)이 사자(死者)의 웃옷을 가지고 앞 지붕에서부터 용마루로 올라가서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를 잡고 북쪽을 향해 흔들면서 이름을 부른다. 이때에 남자는 관직명(官職名), 자(字) 등을 부르고 여자는 평소에 남들이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부른다. 고복이 끝나면 지붕에서 내려와 고복한 옷을 시체의 가슴 위에 얹어놓는다. 고복하는 옷은 벼슬을 한 사람이면 공복(公服), 혹은 심의(深衣)를 사용하고, 서민은 심의가 없으면 도포(道袍), 직령(直領)으로 대신하며, 부인의 경우는 저고리나 치마를 사용한다.'
그러나 지금 민간에서는 고복의 절차가 다소 약식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즉 지붕에 올라가는 대신 마당에서 부르고 옷만을 지붕으로 던지는 곳이 많으며, 부르는 방법도 '00도 00군 00면 00리 000 복, 복, 복' 이렇게 부르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은 지방차보다 오히려 초혼하는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심하다. 초혼하는 옷도 지금은 보통 웃저고리나 적삼으로 하며, 고복이 끝나고 지붕에서 내린 옷도 사자밥과 같이 놓아두는 곳, 헛간 구석에 구겨넣는 곳, 시체 가슴에 덮는 곳 등 지방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여기서 지금이라는 시점은 적어도 반세기 이전이 됨)
고복의 의미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혼이 나간 것이라 믿고, 나간 혼을 불러서 재생시키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고복한 옷을 시체 가슴에 올려놓는 것이 올바른 관습일 것이다.
수세 걷움
고복이 끝나면 시체가 굳기 전에 대강 시체를 반듯이 펴서 묶어놓는데 이것을 '수세 걷는다'고 한다. <예서>에는 풀솜으로 입과 코 등을 막는다고만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민간에서는 다소 복잡하게 수세를 걷는다. 경기도 지방에서 행하는 것을 예로 들면, 짚단으로 만든 베개를 세 개에다가 시체를 괴고 시송판을 시체 밑에 놓는다. 그리고 끈(허리띠, 대님 등)으로 두 손을 펴서 배 위에 모아 묶고, 두 다리를 곧게 펴서 발바닥을 위로 젖혀 엄지발가락을 묶고, 그 끈은 손을 묶은 끈과 연결한다. 그리고 가슴, 배, 발목 등을 묶는다. 만약 나쁜 병으로 죽은 사람일 경우는 머리통을 칡으로 묶는데, 이는 시체에 부기가 없도록 하고 병균이 전염되지 말라는 예방이라고 한다. 수세를 걷우면 홑이불로 시체를 덮고 병풍으로 가려서 염습(殮襲)을 할 때까지 놓아둔다.
발상
고복이 끝나면 즉시 자손들은 곡을 하고 머리를 풀며 비단옷이나 반지, 목걸이 등 장식품을 제거하고 흰옷으로 바꾸어 입는다. 또한 상주와 주부(主婦)를 세우는데 상주는 죽은 사람의 맏아들, 주부는 죽은 사람의 아내가 되며, 만약 죽은 사람의 아내가 없으면 상주의 아내가 주부가 된다. 또한 호상(護喪)을 세워 모든 상에 관한 일을 돌보도록 하는데, 호상은 상주의 친척이나 친구 중에서 상례에 밝은 사람으로 선정한다.
지금은 발상할 때에 머리를 풀 것이 없어져서 머리 푸는 것은 생략되었으며, 비녀도 사용하지 않으므로 나무비녀를 쓰는 일이 없어졌다. 호상은 친척과 친지 또는 벗들에게 상을 알리는 부고(訃告)를 띄운다. 옛날 부고의 서식은 다음과 같다.
'訃告
姓名 大人 某官某 以宿患 今月 某日 某時 別世專人訃告 某年 某月 某日 護喪 姓名 上'
지금에는 상주 이름과 자손 이름, 발인 일시 등이 첨부되어 있으며 신문지상에 나는 부고의 형식으로 변모되었다.
부고는 보통 편지와는 달리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오지 않으며, 문간에다 끼워두고 구두로 알리게 되어 있다.
# 염습(殮襲)
옛날에는 습(襲), 소렴(小殮), 대렴(大殮)의 절차를 구분해서 행하였다. 습이란 시체를 목욕시키고 일체의 의복을 갈아입히는 것이며, 소렴은 시체를 옷과 이불로 싸서 묶는 것이요, 대렴은 시체를 아주 묶어서 관(棺)에 넣는 것까지를 말한다. 민간에서 행하는 습, 염의 절차를 대강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습(襲)
옛날에는 습(襲)은 죽은 당일에, 소렴(小殮)은 그 이튿날에, 대렴(大殮)은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에 행했으나 지금은 '염습한다'고 하여 한번에 해버린다.
습을 하는 사람은 습할 옷과 목욕 및 반함(飯含)할 기구를 준비한 뒤에 시체를 시상(屍床) 위에 올려놓고, 수세걷었던 끈을 풀고 옷을 벗긴 후 목욕을 시킨다. 목욕은 향수(물에 향나무를 넣은 것)를 가지고 솜에 찍어 시체를 씻기는 것인데, 옛날에는 머리를 감기어 빗기고 전신을 씻긴 후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서 몸 전체를 목욕시켰으나 지금은 얼굴, 손등, 발등 부분에 몇 번 향물을 찍어 문지르면 그만이다. 머리는 짧으므로 감아 빗길 필요가 없어 이 절차는 자연히 생략되었다.
시체를 목욕시키면 조발낭(爪髮囊, 벼로 만든 조그만 주머니)에다 떨어진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 등을 담아서 관 구석에 넣는다. 지방에 따라서는 습의(襲衣)소매나 버선 속에 이것을 넣기도 한다. 그 다음 습의를 입히는데, 옛날에는 습의와 소렴의가 따로 있어서 복잡했으나 지금은 대체로 적삼, 고의, 팬츠, 도포, 두루마기(혹은 심의, 여자는 원삼), 행건, 버선, 악수(幄手, 손을 싸는 것), 대님, 면목(얼굴을 덮는 보자기) 등을 사용하며 습의와 염의의 구별이 없다. 옷을 입힐 때는 홑이불로 시체를 덮고, 사방에서 홑이불의 네 귀를 잡아들고, 속옷을 입힐 때는 홑이불 속에서 알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입힌다.
옷을 다 입히면 염하기 전에 반함을 한다. 반함은 쌀을 물에 불려서 사발에 담아가지고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시체의 입을 벌리고 떠넣는 것이다. 지금 민속에서는 이것을 '양식'이라고 하며 죽은 자가 저승까지 갈 때 먹을 식량이라고 믿고 있다. 쌀을 떠넣을 때는 시체의 입의 오른쪽, 왼쪽, 가운데에 세 번을 넣는데, 첫번 숟가락을 넣으면서 '백석이요', 두번째는 '천석이요', 세번째는 '만석이요'라고 한다. 다음 동전을 역시 쌀과 같이 세 번을 넣는데 이것도 첫번째는 '백냥이요', 두번째는 '천냥이요', 세번째는 '만냥이요'라고 한다. 이것도 죽은 사람이 저승까지 가기 위한 노자라고 믿고 있다.
소렴 및 대렴
반함(飯含)이 끝나면 시체를 묶는다. 시체는 교포(絞布)로 묶으며, 교포는 세로와 가로가 있는데, 먼저 세로로 묶고 다음에 가로로 된 교포를 묶는다. 묶는 매수는 시체의 크기에 따라 5매듭, 7매듭으로 묶으며 묶는 순서는 발끝에서부터 위로 3매, 다시 머리쪽으로부터 아래로 묶고 맨 나중에 가운데 부분을 묶는다. 묶는 방법은 교포 한자락을 두 가닥 혹은 세 가닥으로 쪼개어 시체가 고루 싸이도록 하며 오른쪽 교포가 위로, 왼쪽 교포가 밑으로 가도록 하여 매듭을 짖지 않고 틀어서 끼운 후 남은 자락을 밑으로 향하도록 쓸어넣는다.
시체를 묶을 때는 상주 및 상제 둘이 시체의 머리와 발끝에 앉아서 시체가 비틀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염습하는 사람을 지휘한다.
시체는 머리와 발끝까지 일직선이 되어야 하며, 팔이나 다리 기타 면부가 모두 펴지고 똑바로 되어야 한다. 또한 턱밑이나 다리사이 등 공간이 많은 데는 보공(補空)이라고 하여 옷이나 종이를 뭉쳐 빈 곳을 채운다.
교포를 다 매고 나면 고깔이라고 하여 창호지를 고깔처럼 접어, 묶은 매듭 부분에 끼워 밑으로 향하도록 접어놓는다. 이것은 열두 대문을 들어갈 때 문지기에게 씨워주는 것이라고 하나, 실상은 시체를 울퉁불퉁한 면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다음에는 칠성판(시체의 크기와 같은 송판으로 북두칠성 모양으로 7개의 별을 그린 것)을 시체 밑에다 대고 베로 감는데, 이때 감는 베를 칠성포라고 하며 일곱 자 일곱 치를 쓴다. 지방에 따라서는 칠성판을 대지 않고 관 밑에 넣어두는 곳도 있다.
칠포를 감는 방법은 칠포를 두 가닥으로 쪼개되 끝의 한 자 정도는 붙여두고 발부터 싸맨 후 어금막혀서 싸 올라오며, 칠포의 끝은 매듭을 짖지 않고 바늘로 꿰매서 붙여둔다. 칠성칠포를 감으면 입관을 하게 되는데, 관에는 들메를 미리 넣어둬야 한다. 시체를 입관하면 관의 빈 곳을 짚이나 옷 등으로 채우고 관 뚜겅을 닫은 후 결관을 한다. 관에 시체를 넣을 때는 홑이불을 관 위에 팽팽히 걸쳐놓고 그 위에 시체를 놓은 후 차츰차츰 홑이불을 늦추어 관 바닥에 시체가 닿도록 하며 나중에 막대기로 홑이불 구석을 눌러 빈 틈이 없게 한다. 결관은 결관바를 사용하는데, 결관바는 짚과 종이를 섞어 외로 꼰 새끼로, 보통 열두 발이며 옆에서 들기 좋도록 망을 떠서 묶는다.
대개 염할 때 시체를 단단히 묶는 이유는 이장(移葬)을 전제로 한 장례의 습속에서부터 나온 방법으로, 염을 허술히 하면 이장할 때 뼈가 흩어져서 곤란하기 때문인 것이다. 지방에 따라 관째 묻는 지방에서는 염습이 다소 다르며, 서울지방에서 화장을 하기 위한 염은 극히 간단하다. 경상도에서는 입관 후 염습한 묶음을 풀어놓는 지방도 있는데, 이는 관까지 묻을 경우이다.
# 성복(成服)
상복(喪服)
염습이 끝나면 상복을 정식으로 입게 된다. 염습 전까지 상제들은 통건을 쓰고 소매 왼쪽을 꿰지 않는다. 그러나 염습이 끝나면 복제(服制)에 의하여 각기 상복을 입는데 상복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효건(孝巾): 두건(頭巾)을 말하며 베로 만든 건(巾), 관(冠)을 받쳐서 쓴다. 옛날에는 복제(服制)에 따라 관을 구별하였으나 지금은 상제 이외의 친척은 모두 효건만을 쓴다.
2)굴건: 굴건은 수질(首질)에 달아서 효건 위에 씌우는 것으로, 베에 종이를 붙이고 그 사이에 칡을 넣어 주름을 세 개 잡아 만든다. 굴건은 아버지의 상이나 어머니의 상을 당한, 즉 참최(斬衰)나 재최복인(齋衰服人)만이 쓴다.
3)수질(首질): 수질은 머리에 띠는 새끼띠이며 짚으로 만든다. 참최수질(斬衰首질)은 겹치는 부분이 왼쪽으로 가고, 양 옆에 늘이는 끈을 삼이나 노끈으로 한다. 재최수질은 겹치는 부분이 오른 쪽이며 베끈을 늘인다.
4)요질(腰질): 허리에 띠는 새끼띠이며 수질과 같은데 작은 끈을 양 끝에 달아서 맨다. 이때 다는 끈도 참최요질은 삼(麻)이나 노끈이며, 재최요질은 베끈을 단다.
5)중단의(中單衣): 최복(衰服)을 받쳐서 입는 베두루마기를 말한다. 요즈음에는 최복을 안 입고 중단의만 입는 것이 보통이다.
6)최복(衰服): 속칭 제복(祭服)이라고도 하며 상제가 겉에 입는 옷이다.
7)상장(喪杖): 상제들이 짚는 지팡이로서 참최에는 대나무로 만들고, 재최에는 오동나무나 버드나무로 밑은 모지게 하고 위는 둥글게 깎아서 만든다.
8)행등: 다리에 매는 행전(行纏)을 말한다.
9)신[履]:상제들이 신는 짚신을 말한다.
10)최상: 여자들이 입는 베로 만든 치마이다.
11)버선: 무명으로 만든다.
12)바지, 저고리: 무명으로 만들어 중단의 속에 입는다.
복제(服制)
복제에는 참최(斬衰), 재최(齋衰),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시麻)의 다섯 가지 구분이 있는데, 이 구별은 상복을 만드는 베[麻]의 바탕[質]에 따른 것이다.
1)참최복(斬衰服): 참최는 가장 성기고 추한 베를 말하며, 재최와 구별되는 것은 상복의 가장자리를 접어 넣지 않고 그대로 두는 점이다. 입는 기간은 3년이며, 입는 대상은 다음과 같다.
1.아버지 2.할아버지, 증조, 고조(장손으로 承重할 경우) 3.장자(長子) 4.시아버지 5.시할아버지, 시증조할아버지, 시고조할아버지(맏손자며느리로서 承重할 경우) 6.남편(처,첩)
2)재최복(齋衰服): 재최복은 참최복보다는 조금 덜 성긴 베이며 상복의 가장자리를 접어서 만든다. 재최복은 다시 다음과 같이 나눈다.
재최 3년 - 1.어머니 2.맏아들(어머니) 2.할머니(母, 承重孫) 4.증조할머니(承重曾孫) 5.고조할머니(承重玄孫) 6.시어머니 7.시할머니(承重孫婦) 8.시증조할머니(承重曾孫婦) 9.시고조할머니(承重玄孫婦)
재최장기(齋衰杖朞) - 장기(杖朞)는 상장(喪杖)을 짚고 1년을 입는 복(服)을 말하며, 같은 1년 기간이라도 장기와 부장기(不杖朞)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입는 대상은 아내의 상을 당했을 때 남편의 복(服)이다.
재최부장기(齋衰不杖朞) - 부장기(不杖朞)는 상장(喪杖)이 없이 1년을 입는 복을 말한다. 그 입는 대상은 다음과 같다.
1.할아버지, 할머니 2.아버지의 형제 내외 3.형, 누님, 동생, 누이 4.아들, 딸 5.조카 6.고모 7.장손(할아버지) 8.장증손, 장현손 9.맏며느리, 그러나 여자의 경우 시집간 사람은 한 등을 내려서 대공복(大功服)이 된다.
재최오월(齋衰五月) - 재최복으로 5개월 입는 복을 말하며, 증조부모의 상에 승중(承重)하지 않은 손자, 손녀의 복(服)이다.
재최삼월(齋衰三月) - 재최로 3개월 입는 복이며, 고조부모의 복(服)이다.
3)대공복(大功服): 대공은 좀 고운 찐 베[熟布]로 만든 상복이며, 입는 기간은 9개월이다. 입는 대상은 1.종형자매(從兄姉妹) 2.손자, 손녀 3.며느리 4.조카며느리 5.시할머니 6.남편의 삼촌이나 그 부인 7.출계(出繼)한 사람의 부인이 남편의 본 부모.
4)소공복(小功服): 소공은 곱고 가는 숙포(熟布)이며 5개월을 입는다. 입는 대상은 1.할아버지의 형제자매 2.아버지의 사촌 형제자매 3.육촌 형제자매 4.외할아버지, 외할머니 5.외삼촌 6.생질 7.이모 8.형수 9.제부 10.시고모 11.남편의 형제자매 및 그 아내.
5)시마(시麻): 시마는 가장 곱고 가는 숙포(熟布)이며 입는 기간은 3개월이다. 그 입는 대상은 위에 든 이외에 팔촌에 해당하는 사람의 경우이다.
이상은 <예서>에 기록된 복제규정이나 지금은 부모의 상에만 상복을 입고 그밖의 팔촌까지는 두건(頭巾)과 행전을 칠 뿐이요, 그 기간도 초상을 치르는 기간뿐이므로 정확하지 않다. 또한 여자는 팔촌 이내면 '깃 앞치마'라고 하여 무명치마만 하나씩 두르며, 오복(五服)의 구별은 사실상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 문상(問喪)
성복(成服)을 한 후 저녁제사를 마치면 조객들의 문상을 받는다. 조객은 자기 집에서 상가에 올 때까지 다른 사람과 일체 이야기를 나누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조상(弔喪)의 순서는 조객이 영좌(靈座) 앞에 나아가 분향(焚香) 한 후 곡(哭)을 한 다음, 두 번 절하고 상주에게 와서 절을 하며 "상사 말씀 무슨 말씀", "갑자기 변고를 당하여 얼마나 망극하신가" 등으로 물으면 상주는 울면서 맞절을 한다.
# 치장(治葬)
고례(古禮)에는 대부(大夫)는 석달 , 선비는 한 달만에 장례를 지냈으나 지금의 세속에서는 3일, 5일, 7일만에 장례를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장일(葬日)은 장지(葬地)가 결정된 다음에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장지는 명당(明堂)이라고 하여 풍수지리설을 근거로 선택되는데, 상식적인 장지의 구비조건은 햇볕이 잘 들고 돌이나 물이 없을 것이며, 봉분을 이룰 만한 여유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장일(葬日)이 되면 옛날에는 신주(神主)를 만들어 혼백(魂帛)과 같이 영좌(靈座)에 두고 상주 및 복제인(服制人)들이 관을 이끌고 가묘(家廟)에 고한 후 관을 내갔는데, 지금은 신주도 만들지 않고 혼백도 없이 지방(紙榜)으로 대신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사당(祠堂)이 없으므로 바로 관을 들고 마당에 나가 상여 앞에 영좌를 만들고 발인제(發靷祭)를 지낸다.
발인(發靷)
관이 나오면 상여에 관을 얹기 전에 발인제를 지낸 뒤 상여에 관을 얹고 장지로 출발한다. 상여는 출발 전에 집을 향하여 두 번 절하며 이때 상제들도 울면서 맞절을 한다. 장의행렬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명정(銘旌) - 영거(靈車) - 만장(輓章) - 공포(功布) - 상여(喪輿) - 운삽(雲삽) - 보삽 - 상주(喪主) - 무복지친(無服之親) - 빈객(賓客)
옛날에는 방상(方相), 여자종이 앞에 섰으나 지금은 없어져버렸다.
산역(山役)
상여 출발 전부터 장지에서는 광중(壙中)을 파고 묘지를 만든다. 산에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산신(山神)에게 간단한 제사를 지내고 상주가 먼저 흙을 네 귀에서 한 삽씩 판 뒤에 비로소 일을 한다.
상여가 산에 도착하면 상여 옆에 영좌(靈座)를 설치하고 조객(弔客)들의 조문(弔問)을 받는다. 산역하는 데 있어 광중의 굴토(堀土)는 하관 시각 전까지 완료되어야 한다.
하관(下棺)
하관할 시간이 되면 상제들이 상여에서부터 관을 운반하여 광중에 넣게 된다. 풍습에 따라 관을 버리고 시체만 하관하는 경우와 관째로 넣는 경우가 있다. 하관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광내(壙內)를 솔가지로 깨끗이 쓸고 양 옆에 백지를 깐 다음 시체를 넣는다. 이때 지관이 미리 짜놓은 금정(金井)과 시체의 방향이 일치되어야 한다. 시체는 보통 머리가 북쪽으로 발이 남쪽으로 가는데, 이것을 좌향(坐向)이라 하며 자좌오향(子坐午向)은 이것을 말한다. 시체가 들어가면 광내의 빈 곳을 흙으로 채우는데 이것을 '모토'라고 한다. 다음에 동심결을 상주가 두 손으로 받쳐 드리면 일하는 사람이 받아서 시체 중심에 놓는다. 그리고 명정(銘旌)을 드리는데 관째 묻는 경우는 명정이 필요없다고 한다. 그 다음 홍대로 시체를 덮는데 홍대는 옻나무가 좋다고 하며 그 이유는 썩지를 않고 나무뿌리가 침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홍대를 다 덮으면 상주가 먼저 흙을 한 삽 떠서 넣는데 이것을 '취토'라고 한다.
하관을 할 때는 살(煞)이 있는 사람은 보아서는 안된다고 하며, 지관은 이들을 나이로 지적하여 멀리 피하도록 한다.
하관이 끝나면 회(灰)를 섞은 흙을 먼저 넣고 다진 후 다음에 보통흙을 넣어 다진다. 그리고 광중이 다 메워지면 평토제(平土祭)를 지내는데 지방에 따라서는 봉분이 다 된 후에 평토제를 지내기도 한다.
상주들은 산에서 산역을 마칠 때까지 계속 영좌 앞에 서서 곡을 하며 조상을 받는다. 옛날에는 여자 상제는 장막을 치고 그 안에서 곡(哭)을 했다고 한다.
# 치장 이후의 제의(祭儀)
반곡(反哭)
산에서부터 본집으로 반혼(反魂)하는 의식이다. 즉 장지에서 영거(靈車)를 모시고 집에 이르러 신주(神主)와 혼백 상자를 영좌(靈座)에 봉안(奉安)하고 상주 이하가 모두 모여서 곡한다.
우제(虞祭)
우제는 죽은 사람의 신체를 땅에 매장하였으므로 그 혼이 방황할 것을 염려하여 지내는 제사로, 초우(初虞), 재우(再虞), 삼우(三虞)가 있다. 초우는 장일(葬日)에 거행하며 장지가 멀어서 그날로 집에 도착하지 못하면 주막집에서라도 지내야 한다. 재우는 초우를 지낸 뒤에 처음 맞는 유일(柔日, 乙 丁 巳 辛 癸)에 지내며, 삼우는 재우 뒤에 강일(剛日, 甲 丙 戊 庚 壬)을 당하면 지내는데, 그 의식 절차는 초우와 같다.
초우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1.진설(陳設): 상주 이하가 목욕한 뒤에 집사자(執事者)는 영좌(靈座) 앞에 술잔, 숟가락, 나물, 과실, 포, 식혜 등 제기 제물을 차려놓는다. 그리고 혼백을 열어놓으면 상주 이하 모두 들어와 곡을 한다.
2.강신(降神): 축(祝)이 곡을 그치게 하면 상주는 분향하고 두 번 절한 뒤에 술잔에 술을 따라 오른손으로 술잔을 들어 퇴주잔에 세 번으로 나누어 부운 후 빈 잔을 제자리에 다시 놓고 두 번 절한 후 물러난다.
3.진찬(進饌): 먼저 어(魚), 육(肉)을 차려놓고 다음에 밥, 국, 떡, 부침개 등을 차려놓고, 다음에 삼적(三炙)을 합하여 진설(陳設)한다.
4.초헌(初獻): 상주가 영좌 앞에 나가 잔을 받아 술을 딸아서 세 번 모사(茅沙) 위에 붓고 반잔을 남겨 본위치에 놓는다. 다음 밥그릇 뚜껑과 국그릇 뚜껑을 열고 상주 이하가 모두 엎드리면 축문을 읽는다. 축문이 끝나면 상주 이하는 다시 곡한 다음 상주는 두 번 절하고 물러간다. 그러면 집사자는 술잔을 퇴주잔에 쏟고 빈 잔을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5.아헌(亞獻): 두번째 잔을 드리는 것으로, 주부(主婦)가 거행한다. 절차는 초헌과 같되 축을 읽는 것이 없고 주부는 네 번 절한 후에 물러간다.
6.종헌(終獻): 친척이나 주인의 아들 또는 딸이 거행하는 것이니 절차는 아헌과 같되 잔드리는 사람만 잠깐 곡한 뒤에 남자면 두 번 절하고 여자면 네 번 절하며, 철주(撤酒)하지 않는다.
7.유식(侑食): 집사자가 잔에 술을 채운 뒤에 밥그릇에 숟갈을 꽂고 젓가락을 올려놓는다.
8.합문(闔門): 상주 이하 모두 문밖에 나가서 잠시 동안 기다린다.
9.계문(啓門): 문을 열면 모두 들어가서 자기 자리에 서며 집사자는 국그릇을 물려내고 숭늉을 대신 놓는다. 축읽는 사람이 이성(利成, 禮畢)을 고하면 집사자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처음대로그릇에 담고 밥그릇 뚜껑을 덮는다. 이때 주인 이하 모두 곡하며 두 번 절하면 축읽는 사람이 혼백을 닫고 축문을 태운다.
졸곡(卒哭)
졸곡은 무시곡(無時哭)을 마친다는 뜻이며, 삼우를 지낸 뒤 강일(剛日)에 거행한다. 절차는 우제와 같으며 졸곡 뒤에는 비로소 때없이 곡하는 것을 그치고, 글로써 문상한 사람들에게 답장을 한다.
소상(小祥)
초상 1년 후에 지내는 제사이며, 제의 절차는 우제와 비슷하다. 소상이 끝나면 기년복(朞年服)을 입은 사람은 복을 벗고 평소의 옷으로 바꾸어 입는다. 지금 세속(世俗)에서는 소상 때에 문상을 받으며 제물과 술을 조객들에게 나누어 먹인다.
대상(大祥)
초상 후 2년만에 거행한다. 대상이 끝나면 신주는 가묘(家廟)로 옮기고 상청(喪廳)을 뜯으며 상복을 벗는다.
張 德 順 외3인共編 <韓國風俗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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