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우리집의 고양이 가족

如岡園 2011. 1. 5. 18:25

 어떤 새이거나 자기 둥지를 제일 좋아하듯이, 사람도 자기집 같이 그윽하고 편안한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집이 객관적으로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자기 나름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일정한 고장에서 조상대대로 대를 물려 가면서 한 집에서 살아왔던 우리네 생활 습성은 고향을 떠난다거나 집을 옮겨 다니며 사는 일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겨 왔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다가 보니 사는 집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또 대도시에서 셋방살이를 하다가 보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떠돌아다니지 않을 수 없으니 주거의 조건만을 맞추어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단칸방이 있는 움막이어도 제 집이 있어 붙박이로 살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러한 집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살던 집을 바꾸어 이사하지 않고 한 집에서 거의 한평생을 살았다. 슬라브 양옥집에 둘러싸인 작은 기와집이어서 도시생활에서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은 집이었지만, 나무 몇 그루를 심을 수 있는 손바닥 만한 화단이라도 있어 그마나 다행이었다.

 어느 수필가가 말했던가? "대지가 한 60평이나 되고 자그마한 뜰이 있어 화초나 나무를 가꾸어 사시로 꽃을 즐기고 가을이면 낙엽이라도 쓸었으면 좋겠다. 내집이어서 이사할 걱정 없이 오래 살 수 있어 먼곳으로부터 오는 지인의 우편물이 어김없이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집을 가지고 살고 싶다" 고.

 1971년 1월 10일, 겨울답지 않을 정도로 화창하고 포근한 날씨에 나는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 부모 형제 처자를 모두 합해 열 한 식구의 대가족을 거느리고 부산시 연산동 자그마한 집에 둥지를 틀었다. 40평 대지에 스무평 남짓한 건평이었지만 두 집 가구가 살 수 있도록 부엌도 두 개가 있고 마당 한켠에는 장독대까지 갖추어 있어 시골 냄새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모른다.

 화단에는 배롱나무, 자귀나무, 대추나무, 석류나무, 동백나무, 팔손이, 비파나무, 산호수 등 어린 묘목을 닥치는 대로 날라다 심었다. 이것들이 자라면 작은 화단이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면서도 욕심을 부렸다. 그래서 우리집 작은 화단에는 나무가 많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부터는 독립된 방이 필요하여 부엌을 방으로 개조하기도 하고 장독대를 헐어 겨우 책상 하나 들여놓을 수 있는 공부방을 꾸리기도 했다. 지금의 핵가족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가히 복마전에 가까운 것이었다.

 

 규모가 작은 집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가 보니 쥐들이 모여 들었다. 선전포고도 없이 사람이 사는 주거지에 나타나 유리한 생활조건을 확보하는 이 설치류 쥐는 공포와 혐오감, 때로는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연상시키기에, 박멸의 의지를 불태우기에 족하였다.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우리 가족이 유리한 생활조건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집이 쥐에게도 유리한 생활조건이었으니 할 말은 없다. 투쟁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창고로, 헛간으로, 하수구로, 쓰레기통으로, 부엌으로 심지어는 지붕 천장 위로 종횡무진하며 설쳐대는  쥐를 박멸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 솔직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고맙게 등장한 것이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개와 함께 인간과 가장 가까운 애완동물의 하나이지만 나는 집에 동물을 기르는 것을 싫어한다. 그 중에서도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라면 더욱 싫다. 사람을 수발하는 데도 힘이 모자라는데 짐승에게까지 수발을 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가 우리집에 개를 가져다가 기르면 비루나 말코병이 들어 크지를 못한다. 내가 범띠라서 그렇다고들 하지만 사람에게 꼬리치는 비겁한 개에 대한 증오심과 나의 애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내 속심은 판가름하고 있었다. 개와 고양이를 가족처럼 싸안아 귀여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집에는 가족이 많았던 탓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처지에서 고양이는 불청객으로 찾아와 우리집 처마 밑에 혹은 창고 속 사과궤짝에 자리를 옮겨 가며 아예 눌러붙어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불청객이 싫지는 않았던 일차적 이유는 그렇게도 성가신 쥐를 잘 잡는 사냥꾼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배설한 똥은 땅속에 묻고 오줌은 집 밖에서 누고 들어오는 깨끗한 동물이었다. 새끼를 낳을 때에는 사람이 안 보는 곳에서 낳으며, 사람에게 사랑받고, 쥐를 잡으면 자랑하기 위하여 주인이 있는 데서 먹었다.

 처음에는 한 마리가 우리집에 무단 입주를 하더니 주인이 해코지를 않는데다가 서식 환경이 좋았던지 또 한 마리가 늘었다. 암수 고양이 부부가 살림을 차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쥐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자연의 질서는 오묘한 것이란 진리를 깨닫게 하는 현상이었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옥상 위 장독대 사이와 기와지붕 구석구석에 새끼고양이들이 떼지어 놀고 있었다.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은 것이었다. 고양이가 사랑스러웠던 것은 그때부터다. 품에 안아 기르지는 않고 있지만 꽃가루와도 같이 부드러운 털에 금방울과도 같이 호동그란 눈으로 귀염을 떨었다. 야생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서도 문명의 도시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어린 고양이는 봄의 향기, 봄의 불길 그것이었다. 

 이제막 길들여 자립할 세상에 내놓아도 된다고 판단했는지 어미 고양이 부부는 그 새끼들에게 자기네 영토를 양도하고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말썽이었다. 도합 여섯 마리의 새끼고양이가 철없이 온 집안을 들쑤시어 다니고 있으니 말이 아니었다.

 기와지붕 틈사귀를 뚫고 천장으로 기어 들어가 소란을 피우는 일에는 질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입한 통로를 겨우 찾아내었지만 막아버릴 수도 없고 열어놓을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었다. 통로를 막으면 지붕 속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열어둔다면 새로이 들어가 난장을 벌일 판이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출입구를 막은 후 사흘을 지켜 천장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출입구를 밀봉했던 일을 생각하면 선웃음이 돌곤 하던 것이었다.

 

 그런저런 세월이 흐른 끝에, 화단의 동백나무는 자라 꽃을 피웠고 꽃을 따라 동박새가 긴 부리로 동백꽃 속 꿀을 빨고 난 계절의 뒤끝에서는 한창 자란 대추나무 그늘 속 참새를 낚아채는 새조리도 찾아들고, 멀쑥하게 커 버린 목련나무 줄기에서는 참매미도 울던 것이었다. 누가 도시의 주택을 메말랐다고 했던가. 자연의 조건에 맞추어 살면 그것이 자연인 것을. 

 고양이가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쥐들이 사라진 뒤는, 자라난 나뭇가지 사이로 새들이 찾아들었고 한동안 고양이 가족도 자취를 감추었다. 쥐를 사냥하지 않고도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었으니 굳이 기와집 지붕 위, 장독간, 헛간을 찾을 필요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 예의 고양이떼들의 함성은 전혀 엉뚱한 데서 왔다.

 먼 데서 반가운 손님이 와서 마당가운데 숯불을 피워 놓고 양념저린 불갈비를 굽던 때였다. 어디서 몰려 온 것인지 부엌쪽 옥상 위에 고양이 가족이 몇 패거리였다.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은 얼러 키운 집고양이처럼 염치없는 동물도 아니었다. 냄새에 반하고 찾아들어 야웅야웅 제각기 울부짖고 있었지만 좀처럼 흔적을 드러내려 하고 있지 않았다. 고기 살점이라도 던져 주고 싶은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그것이 섭섭했고,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자존심을 지키고 있었지 않았나 싶었지만 알 수가 없는 일이어서 그네들이 있었을 법한 곳에 먹던 불갈비 조각을 던지며 그들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저런 체험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내가 살고 있는 우리집의 덕분이란 생각에서 나는 이 작은 내 집을 사랑한다.

 지붕 위를 넘어서는 화단의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단감나무 한 그루를 심어 첫열매 몇 개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나무라면 관상용의 것이기보다 유실수에 의미를 두고 계셨던 부친의 영향에서 유독 감나무를 심었던 것이기도 하다. 푸른 잎사귀 속에서는 미처 몰랐던 단감이 붉어지면서 가지 끝에 매달린 열매는 먹음직하고 탐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이기도 했다.

 붉고 노랗고 파란색으로 단풍진 잎과 어우러진 열매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가랑잎으로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단감의 풍취는 두고두고 볼 만한 것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포식자가 있었던 것이다. 까마귀였던지 까치였던지 아니면 다른 새였던지 그것은 알 바가 아니었고 아깝다는 생각도 없었지만 다만 어느 살아 있는 생명체의 먹이가 되었다는 것에 선(禪)의 경지를 느꼈다. 여기에도 자연의 오묘함은 있다.

 

 

 무상(無常)! 법열(法悅)! 삼라만상은 수레바퀴처럼 순환하고 있는 것. 이제 열이 넘는 가족이 득실거리던 우리집은 빈둥지가 되어 있다. 불갈비를 지져대어도 이제는 고양이 가족마저도 찾아들지 않는 정적에 공허감만 맴돌 뿐이다. 큰 집은 죽음을 불러오고 작은 집은 복을 부른다 하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집이 아주 작은 집이라는 데에 있다.     (2003. 2. 여강산고)        

'여강의 글A(창작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롱불의 추억  (0) 2011.10.09
고향을 사랑하는가  (0) 2011.08.10
흑백 졸업사진 한 장  (0) 2010.09.01
老年의 보금자리  (0) 2010.07.22
망초꽃 엘레지  (0) 2010.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