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고향이 없다. 출생지를 고향이라고 말한다면 더욱 그렇고, 선대의 고향을 고향이라고 한다면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 그리워하고 사랑할 대상이 없어 고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상대대로 그 땅에서 삶을 누려왔고,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초가삼간이었을망정 어린 시절 살던 집이 있었고, 늙어 찌그러졌어도 나를 알아주는 친구, 친척, 이웃이 있는 곳이라면 어찌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으며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 헤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소리 /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 정지용의 '향수'처럼 고향을 실감나게 그린 시도 드물 것이지만 74년 전에 발표된 시이니 지금의 고향 모습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태반은 마음속에 이런 모습의 고향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대학시절 고향을 떠나 자취생활을 하면서 이 시를 얼마나 낭송하였던가. 이 시에 곡이 붙여지면서는 또 마음속으로 얼마나 따라 불렀던가.
정든 고향의 모습이 그대로 있어 주어 나를 반겨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출향인의 심성임에랴 무엇을 탓할까마는,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또 어디 있을 수가 있는가.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사는 사람과, 그냥 고향에서 고향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과는 생각이 다르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출향한 사람은 고향이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는 모습으로 있어 주기를 바라고, 고향을 지키고 사는 사람은 세상을 따라 고향의 풍정(風情)도 변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아무러면 어찌하랴 자기 나름의 고향 사랑인 것을.
고향은 어머니 품속 같은 따사로운 온기가 서려 있고 뜨거운 연정이 서려 있는 곳, 까마귀라도 내 고향땅 까마귀라면 반갑고 고기도 저 놀던 물이 좋아 회귀하지 않느냐. 복사꽃 살구꽃 피는 따뜻한 마을이 있고, 동리 밖 느티나무 그늘에 모여드는 정든 사람이 있는 곳이 고향이 아니더냐.
고향을 그리워하고 찾는 것은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고,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양지바른 산언덕에 잔디 이고 누워 계신 조상을 잊을 수 없어 그런 것이 아닌가. 이런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출향인이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것은 풍광을 관람하는 관광객의 호기심과는 다를 것이다.
문전옥답을 뒤엎어 꽃밭을 만들어 장식하고, 생뚱맞은 신조(新造)의 정자며 누대를 지어 억지 풍류를 조장하며, 하찮은 문화행사 서막을 장식하는 종소리나 제야의 종소리를 흉내 내기 위하여 억만금을 들여 종각을 만들었다면 그것을 보고듣기 위하여 고향을 찾아가는 얼간이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
고향의 전통적 정신문화는 철저히 보존 전승을 해야 하되, 상업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문화적 유적은 옛 모습 그대로여야 하고, 복원을 하는 일이라면 전문가에 의한 철저한 고증이 따라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지방문화재일지라도 문화재를 사유재산 개념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런 것들을 방관하고 제멋대로 돌아가는 고향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새로운 삶을 열어가기 위하여 작심하고 떠난 사람들이다. 애향심을 조장하고 귀향을 유도하는 데는 그들이 고향을 못 잊어하고 그리워하는 원초적 본심을 파고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고향을 기리고 애향심을 조장하는 행사가 참으로 많은 세상이다. 이 분망한 현실에서, 고향의 정에 얽매인 한가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 그런지는 몰라도 무언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조상의 이름을 팔아 이득을 보는 사람을 두고 속담에, '조상의 뼈를 팔아먹는다'고 하였다. 못난 자의 행위를 빈정댄 말이렷다. 조상의 뼈를 팔아먹을 처지가 못 되는지 요즘 세상엔 고향을 파는 사람은 많아진 모양이다.
고향의 정조(情調)를 빌어 허명(虛名)을 얻고, 고향을 배경으로 하여 일신의 영달이나 소득을 얻으려 한다면 그 얼마나 혐오스러운 일일 것인가.
더구나 당초에는 고향과는 별로 인연도 없는 사람이 뒤늦게 고향에 이주하여 와서 살면서 애향심으로 호도하고 경제적 문화적 이득을 누리면서 고향이 자기 것인 양 휘저어댄다면 분통이 터질 일이 아닌가. 이런 일을 두고 옛말에도 '들어온 놈이 동네논 팔아먹는다'고 빈정댔던 것이지.
타인의 애향심을 조장하여 개인 영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이 있다면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지방자치 시대에 와서 이른바 민선 관료의 현실은 더욱 입맛을 씁쓰레하게 한다.
젊은 세대가 낡았다고 머리를 내젓는 조선시대 관료는 그래도 벼슬길을 접고서는 낙향하여 안빈낙도하면서 후진들을 보살폈다. 그런데 어찌된 현실인지 요즘 세상에는 일부러 벼슬하러 고향으로 기어들어와 순진한 토착민심을 충동질하여 표를 얻고 지방 수령이 되어 농간질을 하다가, 임기가 끝나면 보따리를 싸들고 제 살던 도시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사람보다 등급이 떨어지는 소가 웃을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고향을 그리워하고 사랑할 자신은 참으로 없다.
내 고향 특산품, 00시 내 고향, 고향장터 등으로 상품화된 고향에 시장을 보러 갈지는 몰라도 향수를 달래려 귀향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사적(反射的) 광영(光榮)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선현이나 실존 인물을 선양하고, 허명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현존하는 특정인을 우상화하는 저급한 문화적 감각을 경멸한다.
예술의 대중화이며 문학의 저변확대라면 할 말이 없지만, 이름 모를 자칭 시인 예술가 문인이 부쩍 많아진 것도 어색한 고향의 분위기이다.
사후(死後) 백년을 넘어 문학사에 정평이 난 작가의 작품이라야, 교재로서의 가치가 부여되고 그가 연고한 향토에 기념비 하나쯤 세워줘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서구 선진국의 실정인 데에 비하면, 이런저런 경력 좀 있는 출향 명사 이름 고향에 내어놓고, 제이름 내기가 바쁜 것도 권세누리고 돈 버는 일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길을 떠났던 나그네가 장기간에 걸친 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고향의 산과 들이 다가들고, 눈에 익은 학교, 관공서, 느티나무가 보이고 정든 사투리가 들려 반갑듯이 그런 모습의 고향을 사랑하고 싶다.
출향인의 향우회는 또 어떤가. 본말이 전도된 목적의식에서 벌어지는 말잔치하며, 이름 내기에 바쁜 현실에 현기증이 들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페이소스는 불이 지펴지려는 순간 폐막의 벨이 울려 막이 내리고 마는, 주제와 구성이 모두 잘못된 드라마와도 같아 허망하다.
그렇다면 고향을 사랑할 수 없는가. 인식을 바꾸고 기대를 버리면 된다. 현실의 와중에서 벗어나버리면 된다.
고향 사랑은 내 마음에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다. 남이 사랑하라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남에게 사랑하라고 한다 해서 남이 사랑할 일도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시간이 있으면 자주 가서, 혹시 유대의 끈을 늦추거나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객지를 떠돈 세월이 반백 년을 넘어섰으면서도 오매불망한 고향땅이다.
고향을 사랑하는가.
아무래도 향수는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아름답게 보이는가 보다. 소년 시절을 보내던 시골집, 소나무 우거진 뒷동산이며 같이 뛰놀던 동무들, 그리고 나를 알아보는 고향사람이 없는 고향은 사랑할 마음의 밑바탕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세상이 바뀌어 돌아갈수록 고향을 잃어간다는 허허로운 생각에 마음이 울적할 뿐이다.
(2011. 7. 30. 동인지<길12호>. 如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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