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흉만 보고 남의 흠만 지적하는 태도는 그 상대가 누구고간에 반드시 의(誼)가 갈린다. 비록 당신의 공격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상대방은 당신을 불쾌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나쁜 것을 좋다고 칭찬하라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상대편을 인도하도록 장려할 것이 필요하다.
서로 연애 관계에 있는 남녀가 있었는데, 남자는 그 여인의 다른 점은 다 좋았는데, 허리를 구부리고 걷는 모양이 눈에 거슬리었다. 어느날 그 여인은 우연히 허리를 반듯하게 가진 적이 있었다. 남자는 그 순간 자기 애인보고 말하기를, "나는 당신의 지금 그런 자세가 가장 좋소!" 했다. 여인은 그 후부터 자기에게 가장 좋다는 그 반듯한 자세를 취하도록 노력한 결과 구부리고 걷던 습관이 없어졌던 것이다. <로런스 굴드>
남을 싫어하고 재미없게만 생각하는 사람은 남에게 싫음을 받고 재미없다고 대우 받는 사람보다 오히려 더 불행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기쁨이나 즐거움은 다른 사람과 화합함으로써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물이 많고 유식하고 잘 생기고 지혜롭다 하더라도, 무인도에 가서 혼자 살아보면 알 일이다. <라 루시푸꼬>
큰 나무 줄기에서 잘라 낸 나무 가지는 이미 큰 나무의 일부분은 아니다. 이와 한가지 이치로 사람도 누구하고 사이가 갈리면 그것으로 해서 전 인류의 공동체에서 이탈하는 것이 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내부에 미움과 악심으로 해서 이웃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상대가 한 사람이라고 작은 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실지로 접촉하는 것은 언제나 한 사람 한 사람인 것이다. 한 사람 속에 전 인류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우구스티누스>
사람들은 세상 인심이 험하다고 말한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남에게 청하여도, 남이 반드시 그것을 주지 않는다. 나에게 곤란한 경우가 있어 남의 도움이 필요할 적에 반드시 남이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이 세상은 모두가 자기 가족 단위로 살아 나가는 것이니 남의 부족한 것에 보태 주고 남의 곤란한 경우에 도움을 베푸는 점에 있어서는 냉정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남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남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자력으로 해나갈 수 있다면, 그 이상 다행이 없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며, 돈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 점에 가서는 남의 도움이 필요할 적이 있는 법이다.
절대적인 고립을 지키고 남과 교제를 끊고 살아 나간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은 이상 유형 무형으로 혹은 직접 간접으로 사회에 의지하며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 나가고 있는 것이 인간의 생활이다. 이 점으로 보아 우리가 부족할 때, 또는 곤란한 경우에 남의 도움과 원조를 바라는 것은 결코 비굴한 일은 아니다.
대개 사람들은 남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도움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다. 내가 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고, 남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뿐이지, 도움을 주지 않거나, 또는 그 도움이 만족치 못하다 해서 남에게 원망할 것은 아니다.
영어에 '기브 앤드 테이크'라는 말이 있다. '주고서 얻으라!' 우리 속담에도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고 하였다.
당신에게 오는 도움이 적다는 것은 대개 당신이 남에게 베푼 도움이 적었다는 것을 의미할 적이 많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도움을 청해야 할 경우가 있는 반면에 또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도 있는 것이다. 자기가 남을 도울 수 있는 경우에는 남을 돕는 데 소홀히 지내다가 자기가 곤란할 때만 남의 도움을 청하고 그 도움이 적다고 원망하고 한탄하는 것은 잘못이다. 세상이 야박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야박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당신이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에 남을 돕기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씨를 뿌려야 열매를 거둘 수 있듯이 대개 남의 도움이란 내가 베푼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온다는 것을 잊지 말라! 남을 돕는다는 것은 반드시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 한 마디 발걸음 하나로써도 되는 것이다. <미상>
똑똑한 사람은 그가 당한 모든 일 속에서 그의 배울 점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가령, 손님으로 불려 갔는데, 음식상의 준비가 안되고 오랫동안 기다려서 겨우 음식상이 나왔다. 다른 데 예정한 시간도 있고 또 무례하게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기껏 차려 놓은 음식도 흥이 안난다.
이러한 때, 그 주인의 민첩치 못한 점을 탓하는 것보다는 내 집에서 손을 청했을 때는 저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하나의 교훈을 얻은 것이 된다. 남이 잘 하면 잘 한 데에 배울 것이 있고 못하면 못한 데에 배울 것이 있다. <미상>
사람들은 보통 자기에게 만만하고 자기를 칭찬해 주는 사람의 틈바귀에서 생활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자기와 의견이 틀리고 자기를 비방하는 사람들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를 칭찬하고 나에게 만만한 사람들에게는 흥미가 없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나와 의견을 달리 하고 나에게 비방의 화살을 던지고 싶어하는 사람들과의 교제이다. 나는 그들을 대할 때 감정을 품지 않는다. 저 사람은 내 적이다 하는 선입감정에 좌우된다면 내가 지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냉정히 말하며, 어디까지나 진리를 발견하기에 노력할 것이다. 만약 상대방의 의견에 진리가 있다면 나는 쾌히 내 의견을 던지고 그에게 항복할 용의가 있다. 이것도 나에게는 하나의 큰 기쁨이다. 내 자신의 감정에 이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쁜 것이다.
상대방에 이기려면 먼저 자기 자신에게 이길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 이긴다는 것이 언제나 나에게는 유쾌한 일이고 기쁜 일이다. <몽떼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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