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B(논문·편글)

개화기의 동물우화소설- 논문(발췌)

如岡園 2011. 7. 18. 21:42

          1. 머리말

  動物擬人을 수단으로 하여 동물의 개성과 인성을 결부시켜 세속적 흥미와 함께 교훈을 담은 우의적 성격을 띤 허구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지닌 해학과 아이러니, 풍자라는 강점 때문에 오랜 뿌리를 가지고 한국서사문학의 저변을 장식하고 있다.

 설화에서, 가전에서, 그리고 조선조 후기의 여러 동물우화소설들에서 서사문학의 한 기능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던 이같은 동물의인의 수법이 개화기 신소설에서라고 중단되었을 리는 없다는 전제에서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의 일단을 살펴, 한국동물우화소설의 전통성을 살리고 현대적 맥락을 고찰하는 징검다리로 삼기로 한다.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의 범주에 들 만한 작품은 민천식의 '蠅笑蜜蜂', 육정수의 '과라(나나니벌)의 자',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김필수의 '경세종', 흠흠자의 '금수재판', 無署名의 '水蛇와 蜂의 동맹', 민완식의 '蠻國大會錄' 등이다.

 이들 작품 중에는 소설이란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지극히 짧은 단형서사 작품도 있고, 작품 상호간에 모작 혹은 번안의 의심이 드는 작품도 있지만, 그런 문제는 동물우화소설의 전통성을 고찰하는 입장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이어서 논외로 하고, 개화기 동물우화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골라 그 내용을 고찰하고 전래의 동물우화소설과의 관련성 및 특성을 규명하기로 한다.

 

          2. 작품 개관

     <禽獸會議錄>

 1908년 2월 황성서적조합에서 단행본으로 펴낸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의 표본격인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작가가 세상의 추악함을 근심하면서 성현의 글을 읽다가 잠이 들어 꿈에 산천을 찾아나섰는데 짐승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금수회의소에 이르러 짐승들이 사람의 패덕무도함을 논박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처음에 등단한 회장격인 물건이 사람된 자의 책임을 들어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을 의논하여 사람 중에 인류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려 성토하고, 악한 행위를 회개치 않으면 사람의 자격을 박탈할 것을 제의한다.

 제1석에서 까마귀는 反哺之孝를 내세워 인간의 불효함을 논박하였고, 제2석에서 여우는 狐假虎威를 들어 인간의 간사함을 논박하였으며, 제3석에서 개구리는 인간의 분수없이 아는 체함을 논박하였다.

 제4석에서 벌은 흉칙하고 악독한 인간의 행악을 나무랐고, 제5석에서 게는 인간의 비굴함을 성토하였으며, 제6석에서 파리는 동포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을 비난하였다.

 제7석에서 호랑이는 苛政猛於虎를 들어 인간의 포악함을 논박하였고, 제8석에서 원앙새는 인간의 음란함을 꾸짖었다.

 마지막으로 회장이 인간의 악함을 말하고 폐회를 선언하여 짐승들이 흩어지는 것으로 동물들의 인간성토대회는 끝나는데, 회의를 목격한 작가가 짐승만도 못한 인간 세상을 한탄하면서 회개하여 구원을 얻고자 반성을 촉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이 금수회의록은 인간인 '나'가 꿈속에서 동물들이 모여 인류의 도덕적 타락성을 여덟가지 측면에서 비판하고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것을 기록한 형식으로 이렇다 할 이야기의 줄거리는 없고, 흔히 볼 수 있는 소설적 사건까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어 소설형식의 한 파격이라고도 하고, 토론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여기에서의 토론은 사건을 창조하거나 전개시키지 않고 진행되는 것이어서 소설에서의 대화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엄격히 따지면 소설이 아니라고도 하고 있지만, 조선조 후기 동물우화소설들에서 보이는 동물집회 모티브를 바탕으로 하고 여기에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우화적으로 결부시켜 작품화하고 있기 때문에 훌륭한 동물우화소설의 계승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설 全篇이 동물을 통한 우의적인 대사 형식이 대부분이지만, 序言으로 도입되고 폐회 선언에 이어 결말에서 반성을 촉구하여 구성면에서 매우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금수회의록은 이른바 개화 풍조에 편승하여 가치관의 혼미를 거듭하고 있던 당시 사회 각층의 의식 구조와 지배층의 苛政으로 인하여 온갖 비리가 횡행하던 양반 관료의 부패상에 대한 날카로운 罵倒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를 비롯하여 인륜의 도리를 저버린 인류를 비판하는가 하면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비난, 탐학과 매관매직 등에 대한 비판, 虛名 開化人에 대한 공격, 성도덕의 문란에 대한 비난을 가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권면을 강조하고 있다. 

 한 개 微物에 지나지 않는 禽獸의 발언을 통하여 인류사회의 약점을 공박하는 수법은 연암의 <虎叱>을 방불케 하고 있다.

     <警世鐘>

 이 작품은 1908년 10월 30일자로 광학서포에서 발행한 김필수의 신소설이다. 53페이지에 달하는 비교적 장편에 속하는 개화기 동물우화로서 사슴, 원숭이, 까마귀, 제비, 올빼미, 고슴도치, 박쥐, 공작, 나비, 개미, 자벌레, 나귀, 캥가루, 호랑이 등 열 네 마리의 짐승과 곤충이 차례로 등장하여 인심, 인간성, 양심, 소인배, 간신들의 비리와 사치, 게으름 등 인간의 보편적인 인륜 질서나 도덕성을 비판하고 있다.

 경세종의 내용은 어떤 부잣집 자제로 마음이 교만하고 성품이 패루한 사람이 춘흥에 겨워 산천 경개를 구경하고 있던 중 바람잡는 풍수를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풍편에 무슨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금수, 곤충들이 친목을 위한 원유회를 배설하여 그 곳에 모여들고 있었다. 양을 회장으로 하여 접빈위원, 다과위원, 시간위원을 정해 놓고 회의가 진행되는데 먼저 양회장이 회의 취지의 설명에서, 우리들이 불목하고 괴로운 지위에 있는 것은 인류의 탓이므로 화목을 도모하여 인류를 부끄럽게 하자고 제의한다.

 회의에 앞서 연회석의 차서가 열거되고 식사를 하면서 목침돌림으로 토론이 시작된다.

 제1차로 사슴이 등단하여 隱士를 자처하는 자들과 동류되기를 거부하면서 자식된 도리와 국민된 의무를 지키지 않는 인간을 공박한다.

 제2차로 등단한 원숭이는, 피고는 有勢力하고 원고는 至貧無依하여 금권으로 재판의 오류가 자행되는 세상을 비판한다.

 제3차로 등장한 까마귀는, 비록 겉은 검으나 속은 검지 않다고 自辯하면서 흉년에 임군이 하사한 휼금까지도 탐내어 가로채는 인심을 탄한다.

 제4차에서 청렴과 신의 있는 것을 자랑삼는 제비는, 하늘의 법도를 알지 못하는 백성을 탓한다.

 제5차의 올빼미는, 자신을 낮에는 못보고 밤에만 볼 수 있는 짐승으로 아나 사실은 낮에는 여러 무리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합당치 못하여 쉬다가 밤의 고요할 때를 타서 먹을 것을 예비한다면서, 사람은 눈이 있어도 마땅히 볼 것은 보지 못한다면서 문명의 후진을 탓한다.

 제6차의 고슴도치는, 자신의 호신지책의 완벽함을 내세우면서 겉만 번드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인간을 나무란다.

 제7차로 등단한 박쥐는, 자신이 중립당임을 내세우면서, 勝한 편에 붙어 다니며 이 편에 오면 저 편을 이간하고 저 편으로 가면 이 편을 참소하여 양편의 화의를 끊어놓는 인류를 힐책한다.

 사치하고자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神聖을 나타내기 위하여 호사한 외모를 가졌다는 제8석의 공작은, 분수에 지나친 인간의 사치함을 탓하면서 의복으로 누추한 행실을 덮을 수는 없다고 하였다.

 제9차의 나비는, 자신이 꽃을 찾는 것은 꽃에 중매를 맺어주어 열매를 맺게 하는데, 세상의 淫婦와 蕩子가 있음은 한스럽다는 것이다.

 제10차의 개미는, 땀내지 않는 무리가 곧바로 不汗黨이라면서 수고하지 않고 재물을 얻고자 하는 인간을 나무란다.

 제11차의 자벌레는, 자신의 屈身은 진보의 방침이요 측량의 모범이라면서 토지 측량의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탓한다.

 제12차의 나귀는, 사람이 된 목적을 알고 직분을 다하여 한평생을 보람있게 살기를 주장한다.

 새끼를 사랑하는 성품과 보호하는 기구까지 구비하여 자식을 깊이 사랑한다는 제13차의 캥가루는, 棄子의 악습이 있는 인륜의 패덕을 지탄한다.

 제14차에서 호랑이는, 그가 죽을지라도 인류에게 교훈을 남기나 인류는 교훈거리가 못된다고 나무란다.

 이렇게 차례로 인류사회를 성토하는 연설회가 모두 끝나고 양회장의 폐회 선언으로 친목을 다지면서 기념 사진까지 촬영하여 돌려 받고 작별을 했는데, 숨어서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의 귀가 열렸는지는 의문이라는 내용으로 이 작품은 끝을 맺고 있다.

 '경세종'은 6장으로 나뉘어져 1장- 유산객들이 서로만남. 2장- 금수, 곤충들이 친목회를 열음. 3장- 양회장의 취지와 설명. 4장- 연회석의 次席. 5장- 폐회. 6장- 촬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소설의 핵심 내용은 제4장 연회석의 차서에서 차례대로 등장하는 동물들의 입을 빌려 표현되고 있다. 

 체제나 구성면에서 '금수회의록'과 흡사한 방법을 쓰고 있어 이의 模作이나 飜案일 가능성은 있으나 동일 작품이 아닌 이상 체제나 수법이 같다고 하여 그 창의성을 묵과할 수는 없다고 본다.

 금수회의록과 특별히 다른 점은 동물집회 현장이 꿈으로 유도되지 않고 遊山客을 등장시켜 유산객들로 하여금 금수, 곤충들의 친목을 엿보게 함으로써 동물들의 비판 현장을 현실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의 유도에 있어서도 단도직입적인 인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동물들의 화합을 도모함으로써 인류를 스스로 부끄럽게 하자는 것이며, 끝장면에 촬영까지 곁들여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갈지라도 마음은 연합하여 친목할 목적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특별히 주목할 사항은 전대의 동물우화소설에서 흔히 쓰여지고 있던 동물의 속성에 걸맞는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회장은 양이요, 원숭이는 접빈위원이며 사진사이고, 다람쥐는 다과위원이며, 닭은 시간위원이다. 이는 전래의 동물우화소설의 수법을 답습한 일례가 된다.

 묘사는 사물과 일정한 현상에 대해 지배적인 인상을 그려내는 것이고 보면 동물우화소설에서의 직함 부여는 묘사의 절묘한 일면이라 하겠다.

    <蠻國大會錄>

 만국대회록은 1926년 2월 동양대학당에서 발행된 송완식의 작품으로 연대적으로는 다소 뒤떨어지지만 금수회의록, 경세종과 동류의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이다.

 내용은 어느해 섣달 그믐께 작가가 병마에 신음하는 중 까마귀 소리를 듣고 사람이 금수만도 못함을 탄식하다가 病困을 못견디어 잠깐 눈을 붙였는데 꿈에 짐승들이 인류사회를 성토하는 蠻國大會場에 안내된다.

 회장인 원숭이의 장황한 개회사에 이어 뀌뚜라미, 여치, 하늘밥도둑의 奏樂이 있고 쓰르라미의 독창, 매미의 합창이 인류성토연설회의 식전 행사로 거행된다.

 성토 대회의 첫 연설자로 등장한 돼지가 주색에 빠져있는 인류사회를 성토하고, 두 번째로 등단한 양은 순종을 미덕으로 삼고 젖을 먹을 때에도 공손히 무릎을 꿇고 먹는다면서 불효막심한 인류사회를 나무란다.

 세 번째로 등장한 파리는 고초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들을 마구 살륙하는 인류사회의 잔인 무도함을 성토하였고, 파리의 말을 이어 등단한 소는 자신들이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많은 데도 도살을 일삼는 인류사회에 박애가 무슨 박애냐는 것이다.

 솔개가 까치집 뺏는 것은 연유가 있는 것이지 침략이 아니고 동물의 사회는 공존공영이라면서, 침략을 본질로 한 군국주의, 아편주의, 자본주의를 비판한 솔개는 약육강식의 인류사회를 논박하면서도 사람을 곁에 두고 손님 대접이 아니라면서 넌지시 비꼰다.

 호랑이와 사촌간이라는 고양이는 '고양이 반찬가게 보인 셈'이라는 속담을 뒤집어 '고양이는 반찬가게를 보여도 사람은 보이지 말라'는 肉談으로 시작, 남을 속이기만 위주하고 빼앗아 먹기만 일삼는 사람 사회를 탓한다.

 고양이가 단에서 내리자 회장을 부르고 단에 날아오른 벌은 노동은 우주의 생명이라면서 놀고 먹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노동천시 풍조를 나무란다. 

 그 다음으로 등단한 원앙은 죽은 숫원앙의 목을 겨드랑이에 간직한 과부 원앙의 수절을 일화로 엮으면서, 인간에게 연애의 자유만 찾지 말고 사랑이 신성한 것임을 깨달으라고 충고한다.

 誌上空文의 만민평등을 문제로 들고 나온 모기는, 근일 인류사회에서 평등의 주장이 높지만 마민평등은 天則인데 공연히 사람들이 차별을 하여 놓고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자승자박이나 다름이 없다면서 실행 없이 큰소리만 하는 인류를 못마땅해 한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까마귀는 미신에 쫓겨, 죽은 부모를 섬기느니보다 산 부모를 섬기라는 주장이다.

 먹을 것이 둘이 생기면 하나는 먹고 하나는 저축을 하였다가 엄동설한에 늙은 부모와 처자식을 데리고 무사히 지내며 노동을 생명으로 삼고 養生送死의 도가 사람만 못지 않다는 개미는 저축심이 없고 예의가 무너진 인류사회야말로 개미만 못한 것들이라고 한다.

 우렁찬 목소리로 회장을 부르며 다음 차례로 등단한 사자는 남을 사랑하는 것은 동물의 본능인데 짐승들을 함부로 부려먹고 때려잡는 인류의 말로만 내뱉는 가소로운 愛他主義를 비판한다.

 이어서 등단한 기린은 인류사회의 상업적이며 사기적이고 혹세무민하는 종교를 비판한다.

 방정맞은 목소리로 회장을 부르며 등단한 여우는 사람이 항용 간사한 것을 가리켜 여우와같은 놈이라고 하지만, 지혜로써 묘책을 꾸며 생명을 구하는 것은 간특한 일이 아니며, 정당방위로 인정된다면서 횡령, 강절도가 횡행하는 간특한 인류사회가 지혜 있고 영리한 여우를 간사하다고 하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등단한 개는 비록 금수일망정 돈에 욕심을 내어 다투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간사한 인간들은 별별 교묘한 제도를 다 만들어 약육강식을 일삼으니 참으로 불쌍한 무리라는 것이다.

 그 다음의 자라는, 재물만 중히 여겨 임금 죽이기를 빈대 죽이듯하고 나라 팔아먹기를 넉마 팔아 먹듯하는 인간에 비해, 나라 조직이 변변치는 못하나 임군을 위해 충성한 자신의 선조를 내세워 충군애국의 글자만 남은 인류사회를 비판한다.

 과학 문명에 일조를 하여 傳書鳩라는 이름을 가진 비둘기는 인간의 과학 문명이 사람 죽이는 곳에만 이용됨을 비방한다.

 자신들은 철두철미 남녀평등이라는 닭은 인간 사회의 그릇된 남녀평등 주장을 비판한다.

 사람이 五腸이 없다고 無腸公子라고 이름한다는 게는 비록 오장이 없을망정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하지 않는다면서 사치와 허영에 들뜬 인류사회를 규탄한다.

 뭍에서 살려면 뭍에서 살고 물에서 살려면 물에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개구리는 쓸 데 없는 법규를 만들어 자승자박한 인류를 가련타 한다.

 마지막으로 등단한 호랑이는 자신들을 포악한 짐승이라고 하나 효성이 지극한 동물이며 充腹을 하느라고 한 두 마리 잡아먹는 것이지 오히려 말로만 정의니 인도니 평화니 하고 지껄이면서 약소 민족을 멸망시키는 인류사회의 무장평화가 문제라고 한다.

 호랑이의 '어흥!' 하는 바람에 病中一夢을 깨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만국대회록 역시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시간적 공간적 배경 안에서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갈등을 겪으며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가 없이 단순한 회의록 형식으로 각각의 동물들이 제각기의 문제를 가지고 인류사회의 비리를 성토하는 토론 형식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내용의 전개가 다소 다르긴 하나 금수회의록에 등장하는 동물이 모두 등장하여 유사한 각도에서 인류사회를 비판하고 있고 그 연설 주제도 같은 점, 삽입된 우화의 일부 일치, 특히 까마귀의 연설 내용 대부분이 금수회의록의 표절로 보이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금수회의록의 模作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보다 많은 새로운 내용의 첨가라든지 실증을 내세워 서술하려는 노력 등으로 볼 때 금수회의록의 영향에서 그러한 수법을 취한 것 뿐이어서 새로운 창조력을 전적으로 묵과하기는 어렵고, "배경과 함께 '나'와 '어머니'라는 인물이 설정되어 있어 사건 및 인물 묘사의 일단이 보이며, 작품 말미에 현실적 상황과 시간의 변화에 대한 작자의 배려가 보이고 작자 개입도 없어 형식미가 진전되었다"는 점을 두고 볼 때도 독창성에 대한 의지를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금수회의록이나 경세종 같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보다 완벽한 삽입 우화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도 작가가 전대의 동물우화를 의식한 역연한 흔적으로 짚어 볼 수 있다.

 만국대회록의 구조면에서 특별히 말할 것은 원숭이의 개회사에서 각 동물의 特長이 압축되어 있으며 차례로 등단하여 연설하는 동물들의 연설 주제가 일목요연하게 제시되어 있고 주장을 보다 충실히 하기 위하여 고사, 일화, 사례, 신문 기사 등을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진화론이 설명되며 1차 세계대전 후의 사회 현상, 시사 문제 등을 거론하여 주장을 앞세운 반면, 소설적 허구성이 결여되는 약점도 가지고 있다.

     <그 밖의 작품>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은 상기 작품 외에도 신문 잡지에 연재되었거나 투고 형식으로 발표된 몇몇의 작품이 더 있다.

 민천식의 '蠅笑蜜蜂'은 1908년 2월 <장학월보> 1권 2호에, 육정수의 '과라의 자'는 1908년 4월 <장학월보> 1권 4호에 수록된 것으로 파리, 벌, 螟령, 顆라, 개미 등을 매개로 우화적 형식을 빌려 도덕성을 교화한 작품이다.

 장학월보는 1908년 1월 20일에 창간된 장학잡지의 일종으로서 학생들의 면학을 권장하며 사기를 진흥 발달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따라서 학생들의 '소설란'을 따로 두어서 여기에 수시로 응모하도록 하여 이를 심사하고 입선 작품을 同誌에 게재하였는데, '승소밀봉'과 '과라의 자'는 등외로 입선된 작품이다. 소설이란 이름의 지극히 짧은 단형 서사작품인 이 두 작품은 각각 3페이지에 불과한 동물우화이다.

 欽欽子의 '禽獸裁判'은 1910년 6월에서 8월까지 49회에 걸쳐 <大韓民報>에 연재되다가 정간으로 미완된 작품으로 금수회의록과 동류의 동물우화소설이고 '水蛇와 蜂의 同盟'은 1912년 2월 <경남일보>에 2회 연재된 無署名 작품이다.

 동물에 가탁하여 인간을 교화하고 개화기의 시대 의식을 반영한 풍자성을 띤 글은 비단 소설의 범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도 언론의 자유가 제약된 상황에서 논설을 대신해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였다.

 <황성신문> 1899년 8월 2일자의 '淸國之士가', 1901년 8월 10일자의 '夢遊動物園' 등과 같은 성격의 글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몽유동물원은 몽유록을 겸한 동물우화 형식의 토론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전대의 동물우화에 착안하고 현실의 개화의지를 유감없이 표출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이야기는 다수 산재하여 왔고, 소설의 형태로 정제된 것이 개화기의 동물우화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3.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의 특성 

 개화기는 우리의 전통사상이 새로운 변혁기를 맞아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슬기롭게 대처하려는 의식전환의 시기였다. 그러나 역사의식의 결여는 시대의지에 역행하는 모순을 야기시키기도 하였고 민족공동체의식의 성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새로운 시대 앞에 지식인들의 좌절과 변신이 있는가 하면 정치, 경제의 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정신적 파탄이 뒤따라 갈피를 못잡는 시대이기도 하였다.

 개화기 소설은 이같은 봉건 질서의 붕괴와 근대 자본주의 질서의 성장이라는 사회구조 속에 놓이는 특수한 시대의 산물이었다. 

 개화기의 부조리와 모순을 풍자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의식개혁을 전제로 하여 인간심성의 결함과 인간사회의 모순, 부조리, 비도덕적, 반윤리적 행위를 비판하고 군국주의자의 침략 행위 앞에 약소민족의 잠재한 울분을 동물의 입을 빌려 토로한 것이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이다. 따라서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은 시대의 사회상, 인심의 기미가 어느 시대보다 적나라하게 노출된 인간사회의 풍속도였다.

 소설 형식면에서 볼 때,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은 '승소밀봉', '과라의 자' 등 몇몇 단형서사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성이 없는 토론체 소설이란 점이다.

 토론체 소설이란 일견 소설이라고 할만한 구체적 발전적 사건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성이다. 시사 문제를 주로 그 대상으로 하여 두 사람 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서로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개진해 나가거나 묻고 답을 하지 않으면, 당시대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 비꼬아 풍자하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의지의 갈등에 의한 사건이란 일어나는 법이 없다.

 문학적 양식의 측면에서 보면 사건과 결부된 이야기 형식으로서의 소설적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소설이 아니라고도 하지만, 소설이 한 시대의 인심, 풍속과 정치, 사상을 가름할 수 있는 풍향계이고, 世敎, 風敎, 名敎라는 소설의 기능을 확대하고 보면, 양식을 가지고만 소설 비소설을 논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아무튼 토론체 소설은 사건의 전개보다는 작가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적합한 양식으로서 개화기에 있어 매우 효과적인 자기 표현 수단이었음은 분명하다.

 동물의인의 우의적 수법을 활용하여 풍자의 효과를 강화하면서 개화에 대한 자기 주장을 폭넓게 펴고 있는 것이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이다.

 우화란 인간의 정황을 인간 이외의 사물들 사이에서 생기는 일로 꾸며서 말하는 짧은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우의와 암유를 통하여 기지로써 인간 생활을 풍자하고 윤리적 교훈을 주어 지혜로운 삶을 교시해 주는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통하여 풍자문학의 최고봉으로 인식되어 왔고 널리 애용되어 온 표현 수법이다.

 다만 길게 말할 수 없는 단점 때문에 변화하는 시대의 구체적 事象에 대하여 적격하게 반응할 수 없고, 과학적 지식이 고양된 현대사회의 의식세계를 합리적으로 표출하는 데는 많은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동물우화의 강점에 매료되고 주제의식이 과잉된 개화기 소설 작가들이 그네들의 사상을 보다 많이 개진할 수 있는 방편으로 동물의 입을 빌려 연설 형식의 소설을 창안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던지도 모른다.

 그 다음으로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의 특징으로 잡을 만한 것은 典故 및 속담과 격언, 사례와 일화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典故는 작자의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미의식에 앞설 때 흔히 나타나는 수법으로서 그 전고의 구성에 의지하여 자신의 논리나 주장하는 바 주제의 타당성을  상대에게 확실히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심리에서 채택된다고 하였는데, 고소설에서도 흔히 쓰이던 수법이었다. 그러나 고소설에서는 추상적 개념의 전달이나 현학적 입장에서 덧부치기로 나열, 서술한 경우가 많았지만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에서는 보다 확고한 논리의 전개를 위한 보조 수단으로 쓰이고 있었다.

 등단 동물들의 연설 속에 삽입 인용된 典故, 우화, 사례, 격언과 속담, 시사등의 요소는 인간적 속성의 약점을 설파하는 데 있어 보다 강력한 뒷받침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 다음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의 특성으로 지적할 만한 것은 주제의식의 과잉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개화기 신소설 전반에 걸친 특성이기도 하지만,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이 얼핏 보기에 전래의 동물우화소설과 궤를 달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주제의식의 과잉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신소설은 개화기 시가와 함께 당대의 사회의식을 가장 강하게, 그리고 집중적으로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시기의 소설보다도 작품의 사회적, 사상적 의미가 크다. 따라서 신소설은 거개가 근대지향의식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개화기 작가의 의식 속에는 전대 봉건적 구질서를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개화사상을 강요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고 본다. 

 동물우화소설의 경우에도 팽배하는 주제의식을 단순한 동물우화로 표출하기 어려웠던 입장이었기에 동물우화의 우의성을 십분 살려 가면서 연설 형식을 취함으로써 유감없이 주제의식을 펼쳐갈 수 있었던 것이다.

 '승소밀봉'이나 '과라의 자' 같은 전래의 단순한 동물우화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한, 소설이라는 이름의 지극히 짧은 단형 서사작품 정도면 개화기 인간사회의 한 단면을 동물의 생태와 결부시켜 흥미와 교훈을 던져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주제의식이 과잉했던 '금수회의록'을 비롯한 '경세종', '만국대회록', '금수재판'의 작가들은 보다 많은 것을 알려 일깨우고 싶었던 것이다.

 '금수회의록'만 두고 볼지라도, 제5석의 무장공자 '게'의 연설 한 편만으로도 훌륭한 동물우화소설로 정립시킬 수가 있었지만, 게의 입을 빌려 배알 없는 인간을 나무라는 일만으로는 직성이 풀릴 수 없었기에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파리, 호랑이, 원앙 등을 차례로 등장시켜 까마귀처럼 효도할 줄 모르고, 개구리처럼 분수 지킬 줄도 모르고, 여우보다 간사하고, 호랑이보다 포악하고, 벌처럼 정직하지도 못하고, 파리같이 동포 사랑할 줄도 모르고, 원앙새처럼 정절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사회의 부조리를 말하는 말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주제의식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고,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이 우화의 속성을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우화소설의 입지를 흐리게 한 결과도 된다.

 끝으로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은 前代의 동물우화소설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동물우화소설은 전래의 동물우화를 바탕으로 하여 이를 소설로 변용, 다른 고소설과 비견해도 양이나 질에 있어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우리 소설사의 특별한 성과이다.

 간단없는 문학사적 흐름을 두고 보더라도 조선조 후기에 번성을 이루었던 동물우화소설이 신소설 시대에 이르러 갑자기 중단되었다고는 볼 수가 없으니 신소설 시기에 등장한 '금수회의록', '경세종', '만국대회록', '금수재판'은 전대 동물우화의 전형적 소재를 시대에 맞게 활용한 동물우화소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이 전래의 동물우화소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동물들의 집회 및 잔치가 소설을 펼쳐가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조 후기 동물우화소설에서 '서동지전'은 서대주가 태종 황제로부터 상금과 벼슬 교지를 받고 잔치를 배설하는 자리에서 이야기가 벌어지고, '까치전'은 까치집의 낙성연에, '섬동지전'은 장선생 노루의 숭록대부 축하연에, '녹처서연회'는 녹처사의 생일연에, '노섬상좌기'는 짐승들이 두꺼비의 주선으로 溝穴을 얻어 안둔하게 된 것을 경하하는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사건이 발단되는 것이다.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은 비록 인간을 성토하기 위하여 동물들이 회의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집회의 동기가 다르고 등장인물들이 대담이라기보다는 차례로 연설하는 것으로 진행되어 있을지라도 동물집회 모티브라는 점에서 전래의 동물우화소설의 유형을 답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신소설에 우리나라 동물우화소설의 전통이 엄연히 살아 있고, 거기에서 쓰여졌던 소재나 주제의 표현 수법이 상통한다면 그것은 엄연히 전대의 동물우화소설의 연장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맺음말

 구소설의 격식에서 벗어나 개화의지를 담고 미래지향적인 소설을 쓰려했던 개화기 신소설은, 문학성을 앞질러 시대의식이 과잉했던 만큼 소설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동물세계에 우의하여 인간사를 비판하는 풍자의 문학이고, 언어적 재치로 웃음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해학의 문학이며, 망상을 수반한 인간적 결함을 표현하여 지성적 흥미를 유발하는 아이러니의 문학인 동물우화소설이 개화기에도 맥을 이어 나타나 一群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은 그 표현의 강점을 입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언론의 자유가 제약된 상황에서 논설을 대신해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던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은 전래의 동물우화에 착안하고, 현실의 개화의지를 유감없이 표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성과와 의의를 담아볼 수 있다.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은 형식면에서 볼 때 대부분 동물집회 모티브를 골격으로 하여, 동물의 입을 빌려 차례로 연설하는 형식으로 시대의 사회상, 인심의 기미를 들추어 인간사회의 모순, 부조리, 비도덕적 반윤리적 행위를 성토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전형적인 동물우화나 典故 및 사례와 일화를 폭넓게 활용하여 주장하는 바 주제의 타당성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주제의식의 과잉으로 보다 많은 것을 가르치고 일깨우고 싶었던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은 구성이 단순하면서도 표현이 집중되어 조리가 정연한 가운데 변화가 다단하여 강한 인상을 남기는 우화 본래의 기능을 약화시켜 동물우화의 입지를 흐리게 한 점도 있다.

 개화기 동물우화소설이 일방적인 동물들의 연설로 일관되고 있어 소설성의 결여라는 입장도 있지만, 동물을 의인화한 동물우화담이고, 전래의 동물우화소설에서 흔히 쓰고 있었던 동물집회 모티브를 십분 활용하고 있으며, 동물의 생태와 습성에 우의하여 人世를 풍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대의 동물우화소설에 그 원천을 두고 있음은 분명한 일이다. 

 動物擬人을 수단으로 하여 동물의 개성과 인성을 결부시켜 교훈을 던져주는 허구의 단편담인 동물우화에 착상하여 그 골격을 유지해 소설로 변용한 동물우화소설은 조선조 후기에 번성을 이루었고, 개화기에 이르러서도 개화의지를 표출하는 적격한 방편으로 수용, 금수회의록을 비롯한 경세종, 만국대회록 등의 작품을 산출해 한국동물우화소설의 강한 잠재력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우화담은 설화 혹은 소설로 형태와 진폭을 바꾸어 가면서 꾸준히 전승되어 왔다. 전대 동물우화소설의 유형적 소재를 개화기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에 맞게 우화적으로 결부시켜 작품화한 것이 개화기의 동물우화소설이다.   (金在煥 著 <寓話小說의 世界>에서 발췌)

*전산입력의 사정으로 인용문과 각주를 생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