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B(논문·편글)

우화소설의 세계/까치전

如岡園 2012. 2. 9. 00:35

<까치전>은 어떤 소설인가 

 

    머리말

 <까치전>은 조류의 속성을 인성에 어울리게 의인화하여 폭력과 불의를 통렬하게 풍자한 송사형 동물우화로서 가히 동물우화소설의 표본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까치와 비둘기가 선악(善惡)의 대조적 인물로 성격화되어 있다. 평화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비둘기는 여기에서는 본심이 불칙한 악덕한으로서 까치를 살해하고도 그 책임을 까치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암행어사 난춘으로 하여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범인을 척결하는 구성법은 고소설의 일반적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이 작품에는 30여 종의 조류들을 등장시켜 이들의 성격이 저마다 적절하게 의인화되어 있다. 주쉬 보라매는 관속과 결탁하여 시비를 분간하지 못하는 혼군(昏君)이며, 권력의 그늘에서 뇌물을 즐기는 책방 구진, 비둘기 처가 사촌이라 아양떠는 앵무새 등이 잘 의인화되어 있다. 악한 비둘기에게 원수를 갚고 죽은 까치낭군을 만나 자손을 잇는 구성법은 동물세계의 정의(情誼)와 사랑을 인간사회와 비교해 풍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문학사상> 자료조사연구실 제19차 발굴 작품으로 내놓은 미발표 한글 고전소설로서 원명이 <가치젼>인 이 소설은 <장치젼>과 함께 1책으로 묶여진 필사본인데 작자와 제작 연대는 가리기 어렵다. 다만 이 소설의 표기법, <장끼전>과 합본으로 필사되었다는 점, 새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장끼전>과 공통점이 있다고 보아 <장끼전>의 창작 연대로 추정되는 영,정조 무렵(18세기 후반)의 작품이라고 추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줄거리

 천지만물이 생길 적에 한 우족(羽族)이 있으니 성은 '까'요 이름은 '치'이다. 춘절을 당하여 새 집을 짓고 낙성연을 배설하여 고구친척을 청하여 즐겼다.

 이 때에 까치, 온갖 날짐승을 다 청하였으되 총망중에 남산골에 사는 비둘기를 미처 청치 못하였더니, 비둘기 본심이 불칙하여 낙성연에 청치 아니함을 분노하고 낙성연에 자래(自來)하여 잔치의 주인인 까치는 물론, 손님으로 온 꾀꼬리, 두견, 두루미, 박새, 할미새, 섬동지 등 좌중을 오만방자한 말로 무수히 훼욕(毁辱)하니, 까치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비둘기를 후려치며 너 같은 무도한 놈이 어디 있느냐고 꾸짖었다.

 이에 비둘기가 달려들어 두 발로 까치를 냅다 차니 까치는 만장고목(萬丈古木) 높은 가지에서 떨어져 즉사하고 말았다.

 암까치 망극하여 대성통곡하며 달려들어 비둘기를 쥐어뜯으니 여러 날짐승들이 비둘기를 결박하고 인하여 관가에 고변(告變)하기에 이르렀다.

  때는 강남 황제 즉위 원년이라 붕새로 살림을 봉하여 비금(飛禽)들에게 조서를 내려 '비금우족(飛禽羽族) 3천 중에 빈한자(貧寒者)나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도 세상을 원망하는 자 있거든 속명성책하여 즉시 계문하라.' 하고 만조백관을 계차(啓差)할새,

 백학으로 정승을 삼고 봉으로 판서를 삼고 황새로 대장을 삼고 그 나머지 벼슬은 차례로 정하였다.

 해동청(海東靑) 보라매가 안악군수로 제수되어 본관에 도임한 후 민정을 살폈는데, 문득 구월산 동편에 사는 암까치가 고변하는지라,

 조롱태로 차사를 정하여 절인간증(竊人間證)을 잡아 오라 하고 옥사에 능한 형리(刑吏)를 택한 후에 통인급창(通引及唱) 오륙인을 거느리고 필마단기(匹馬單騎)로 행차하여 까치집에 가 좌정하고 형구를 갖추어 절인간증을 초사(招査)하였다.

 처음에 꾀꼬리를 잡아 들여 엄형국문(嚴刑鞫問)하여 초사하니, 꾀꼬리는 까치 낙성연에 참석하여 춘면곡(春眠曲)을 부르다가 미처 마치기도 전에 목동들에게 쫓겨 심삼유곡으로 날아갔으므로 그간 곡절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고,

 두견을 문초하니 두견은 촉나라 망제의 넋으로 만리타국에 유랑하며 불여귀(不如歸)를 일삼아 산림처사의 낮졸음이나 깨울 따름이어서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였으며,

 까마귀를 잡아 초사하니 까치연에 초청되어 주안을 요기하고 즉시 갔으니 그간 곡절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할미새를 잡아들여 문초하니 할미새는, 직초하면 완악한 비둘기에게 구박을 받을 것이요 은휘하면 중형을 당할 것이라 노망한 체 동문서답을 한다.

 군수 보라매는 절인간증의 초사 핵변을 할 길이 없어 민망하던 중,

 형리 따오기가 본방 풍헌을 불러 하문(下問)하면 알듯하다고 하여 즉시 솔개미 풍헌을 잡아 물은 즉,

 솔개미는 각양 공전(公錢) 수쇄하기에 분주하여 까치 낙성연에도 가지 못하였고 동네 일 알기는 동수(洞首)만 못하니 동수 두꺼비를 잡아들여 함문하면 진위를 알 수 있다고 하여 군수는 즉시 동수를 잡아들이도록 하였다.

 두민(頭民) 섬동지는 이름은 '두꺼비'요 자는 '볼록'인데 의사가 창해(滄海) 같아 그른 일도 옳게 하고 옳은 일도 그르게 하는 자다.

 그때 마침 비둘기의 처자 동생이 심야에 금백(金帛) 주옥(珠玉)과 채단을 가지고 섬동지를 찾아가 이 일을 잘 주선하여 희살(戱殺)이 되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다.

 섬동지는 '有錢이면 使鬼神'이라고 하면서 책방 구진과 수청기생 앵무에게 금은 보패를 드려 좌우 청촉을 하고 각청 두목과 제번 관속에게 뇌물을 쓰면 고독 단신 암까치는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니 자연 희살이 될 것이라고 하여 비둘기가 말과 같이 하였다.

 관령을 좇아 잡혀간 두민 섬동지는,

 봉황대군의 국기일(國忌日)에 풍악이 불가하다고 하는 비둘기를 까치가 취중에 분개하여 달려들어 걷어차다가 실수하여 떨어져 죽은 것이라고 거짓 진술하여 비둘기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였고,

 뇌물을 받은 책방 구진은, 성정이 조갈한 까치가 조급히 제결에 죽고 못깬 것을 애매한 비둘기가 정범으로 몰렸다고 아뢰었으며,

 수청기생 앵무는, 비둘기의 처가 자기의 사촌이라고 사또에게 애걸하여 정범인 비둘기는 무죄가 되었고 '有錢이면 使鬼神이란 말이 옳다'고 하며 의기 양양하게 돌아갔다.

 암까치는 희살로 판정이 나서 정범이 무죄가 됨을 보고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까치의 시신을 붙들고 통곡을 하니 그 형상을 보는 자 설워하지 아니하는 이 없었다.

 암까치 설움을 진정하고 모든 비금(飛禽)에게 가긍한 사정을 통지하여 까치의 장례를 지내고 제사를 필한 후 적적공방 찬자리에 슬픈 눈물 한숨으로 무정 세월을 뜻없이 지냈다.

 삼년상을 지나매 암까치 더욱 애통하여 지아비 원수 갚기를 주야로 축원하던 중 암행어사 난춘(鸞춘)이 민정을 살피러 내려왔다. 

 하루는 할미새의 집에 이르러 쉬고 있었더니 할미새가 무심결에, 까치가 새집을 짓고 낙성연을 하다가 비둘기에게 맞아 죽었으되 대살(代殺)치 못한 말을 설화하였다.

 어사 난춘이 이 말을 듣고 분함을 참지 못하여 이튿날 고을에 들어가 출도하고 좌정 후에 교졸을 놓아 시척 암까치와 절인간증되었던 자들을 잡아들였다.

 암까치로부터 두민 섬동지 놈이 비둘기한테 뇌물을 받아 먹고 무소(誣訴)하여 아뢴 말이며, 책방과 수청기생이 청전(請錢) 받아먹고 본관에게 알소하여 희살되게 한 사연을 낱낱이 들은 난춘은 비둘기를 결박하여 나입하라 하고 까치의 시신을 검시하니 맞은 상처가 분명하였다.

 이어 두꺼비를 잡아들여, 사정(私情)을 위하여 뇌물을 받고 공사(公事)를 폐한 죄로 착가엄수(着枷嚴囚)하는 일변, 본쉬(本쉬)를 봉고파직(封庫罷職)하고 정범 비둘기는 오형을 갖추어 물고하여 삼문 밖에 끌어 내치고, 책방 구진이와 수청기생 앵무는 청전(請錢)을 위하여 국정을 흐린 죄로 감사정배(減死定配)하였으며, 섬동지를 올려 형문 구십도에 무인절도로 귀양보내고 나머지 절인간증은 각각 엄곤(嚴棍) 삼십도에 방송하였다.

 암까치는 동헌에 들어가 수의사또께 치하하고 비둘기 간을 가지고 지아비 산소에 이르러 그 간을 묘전에 진설하고 순무어사(巡撫御使)를 만나 가부(家夫)의 원수 갚았음을 고하였다.

 짜른 탄식 긴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던 암까치가 일일은 금침에 의지하여 졸던 중 꿈속에서 까치를 만나 잠깐 배합(配合)한 것이 잉태하여 알을 까니 일남 일녀라, 장중 보옥같이 귀히 길러 남혼여가(男婚女嫁)하여 손자새끼 번성하고 암까치 나이 칠십에 승천하였다.

 

     評說

 까치는 인가 부근이나 농경지, 야산의 낙엽수림을 기호환경으로 하여 인간과 더불어 살아온 새 중의 하나다.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고 지혜로우며 사랑을 받는 까치는 우리의 넋과도 일맥상통하는 서조(瑞鳥)로 인식되어 예로부터 우리의 설화, 민속에도 자주 오르내려 정이 깃들여 있다.

 이집 저집 지붕을 날아다니며 '깍깍'하고  안부를 묻는 듯하다 하여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고도 하였다. 

 까치에 견주어 신화 속에 나타나는 비둘기는 곡모신(穀母神)의 사자이다.

 동명왕이 부여국 왕자들의 박해를 피해서 남하하였을 때 그의 모신(母神) 유화는 비둘기로 하여금 그 목에다 보리의 씨알을 간직하게 하여 아들의 뒤를 쫓게 하는데 동명왕은 자기 뒤를 좇아 날아오는 비둘기를 화살로 쏘아 잡아 비둘기의 목을 따서 보리 씨알을 꺼낸 뒤 물을 뿜어 회생시켜 신모(神母)에게 돌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보면 신화에서의 비둘기는 농사의 풍요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까치전>은 이와같은 까치와 비둘기를 의인화한 소설이다.

 그런데 소설 <까치전>은 비둘기와 까치의 송사가 주된 사건이고, 여기서 까치는 선의의 피해자인 반면 비둘기는 포악한 가해자이다.

 <까치전>에서 비둘기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생활인의 주변에서 발견되는 비둘기의 속성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이리라.

 까치가 길조(吉鳥) 희작(喜鵲)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비하여, 비둘기는 곡식을 축내고 성질이 표독하며, '비둘기 집처럼 허술하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집을 못지으면서도 까치가 지은 집을 빼앗아 차지한다는 새로 알려져 있음으로 해서이다.

 신화적 의미에서, 신의 사자라는 입장에서 동등하였던 까치와 비둘기는 현실 생활을 여실히 반영하고 풍간(諷諫)한 동물우화소설에서는 그 속성이 정확하게 관찰되고 파악되었기에, <까치전>에서 비둘기는 포악한 가해자로 까치는 선의의 피해자로 의인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까치전>은 비판정신에 입각, 조류를 의인화하여 지배계급의 횡포와 소송사건을 둘러싼 재판의 부당성, 뇌물수수를 통한 사회의 부패성을 풍자하려는데 주목적이 있다.

 조류의 생김새나 체격이나 성격, 행동거지에 어울리게 의인화하여 직위를 부여하기도 하고 행위를 묘사하기도 하여 그 표현기법에 특이한 점이 있다. 

 소설은 작중 인물들 사이의 갈등 구조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인데 특히 우리의 고소설에서는 대립관계가 거의 단색적으로 설정되어 권선징악이라는 윤리학적 상상력 아래에서 도식적으로 처리되어 왔다.

 동물우화소설의 대부분은 존장(尊長)의 우위 다툼이나 쟁송(爭訟)에서 벌어지는 등장 인물간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서술 구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으로 전개된다.

 <까치전>은 대립의 행위화가 곧바로 서술단위를 이루고 있는데, 한 집단에서 소외 당한 비둘기와 까치 사이에 대립이 벌어지고 이 대립에서 까치가 죽음을 당하는 것이 제1의 갈등이고, 제2의 갈등은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는 암까치와 부정한 방법으로 무죄를 입증하려는 비둘기와의 대립으로 형상화되어 까치가 패배를 당하였다가 암행어사 난춘의 출현으로 올바른 송사의 이상을 성취하고 있다.

 이러한 전개는 송사를 모티프로 한 다른 동물우화소설들과는 달리 이중적 복합적 구성을 취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더해주는 결과가 된다.

 특히 작품의 막바지에 이르러 암까치가 남편까치의 원수를 갚고 생자녀(生子女)까지 하여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도록 결구된 것은 고소설의 일반적 구조와 일치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작품의 구성면에서 보면 <까치전>은 고소설 통유의 주인공의 일대기가 아니라 사건 중심으로 대립과 갈등을 표출하고 있어서 소설적 흥미를 돋구어 주고 있다. 

 문장 표현에 있어서는 의인화의 수법이 뛰어나 조류의 생김새나 체격이나 성격, 행위가 적격하게 의인화되고 있어 동물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작가의식면에서 보면 <까치전>은 비판정신에 바탕을 두고 소송사건을 둘러싼 뇌물수수, 그로 인한 재판의 불공정성, 지배계급의 횡포와 사회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풍자하려고 하였으며, 사회정의를 의식하여 선의의 양심이 승리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이러한 작품의 출현은 조선조 후기 서민의식의 각성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권력남용의 와중에서 노정(露呈)되는 민중의 애환, 인간의 교활성, 인간적 정한(情恨)과 열망을 <까치전>은 서민적 시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金在煥 著 <寓話小說의 世界>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