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B(논문·편글)

한국 고소설의 敎示的 기능 / 論文(발췌)

如岡園 2013. 1. 18. 19:05

     1.서론

 한국의 고소설은 비도덕적인 내용으로 世道를 萎靡케 하고 허구적인 傳奇性으로 史實을 왜곡 혼미케 한다는 부정적 관점과, 破閑 博聞의 資로서의 博學性과 勸懲의 資, 警世의 鐘으로 삼을 수 있다는 긍정적 관점에서, 이율배반의 모순과 자가당착 가운데서 성장하여 왔다.

 문학적인 비중에 있어서도, 여항의 세미한 잡사나 異聞의 기록이며 쇄어를 엮은 것이란 동양적 소설관을 바탕으로, 지식인의 消遣의 資이거나 餘事의 산물로서 길거리의 한담이나 기괴한 환상, 세간의 선악사, 남녀간의 風情에 대한 상상적 허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소설의 문학적인 가치가 인정되고 문예의 중심적 위치로까지 평가된 것은 근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그렇다고 하여 근대 이전의 소설적 작품들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여 무시하거나 현대적 시각에서 고소설을 평가하여 그 가치를 평가 절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고소설을 바라보는 시각도 현대소설의 구조나 문예미학적 측면에서 고려될 것이 아니라 고소설이라는 입장에서 논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고소설은 敎訓의 書가 못되는 稗說이며 허구적인 小說이 世道를 어지럽힌다는 우려 속에서, 교훈성 권징성을 의식하며 성장하여 왔고, 그 반대급부로 현대소설 쪽에서 보면 도리어 소설의 규칙을 위반했다고도 할 만큼 권징성 교훈성을 직접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한국 고소설의 교시적 기능은 묵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소설의 교양적 가치와 교시성

 소설을 통해서 도덕적인 지식이나 역사, 풍속, 생활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소설 작품을 읽고 역사를 알고 풍속을 알며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문학의 敎示的 기능이다.

 문학의 기능은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것이어서 많은 논의가 있어 왔지만 대체로 두 가지 주장으로 대립되어 왔다.

 그 하나는 문학을 인식구조로 보아 교훈을 주고 가르쳐야 한다는 교시적 기능이요, 다른 하나는 문학을 미적구조로 보는 입장에서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어 기쁘게 한다는 쾌락적 기능이다.

 아무튼 문학의 기능은 독자에게 보다 고차적이요 정신적인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고 교시하는 것이라고 볼 때 어느 한 쪽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 다면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동양에서는 주로 문학의 교시적 기능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으로 인정된다. 허구를 본질로 하고 있는 소설에서조차 공리적인 효용성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은 가치있는 체험의 기록이어서 당연히 교육적 가치를 가진다고 하였다. 다만 그러한 효용가치는 종교와 敎義를 설교하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효과를 교육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상력에 의거하여 인격전체에 작용, 도덕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질시켜 준다는 데 문학의 교시적 효용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고소설은 당시대의 일상적 언어를 매체로 하여 인식적인 기능의 수행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의 고소설을 바라보는 시각도 문예미학적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당시대의 사회생활의 풍습과 세태, 역대고사, 견문, 지식, 나아가서는 당시 사회생활에서 통용되고 있던 생활상식의 기록이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문학의 기능을 문학 외적인 것으로 확대하고 있었던 것이 한국 고소설의 현실이기도 하였다.

 고소설이 오늘날의 소설 개념과는 달리 인식적인 기능의 수행에 높은 비중을 두고 존재하였던 것은 동양에서의 소설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민간의 풍속과 서민들의 삶의 형편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뜻에서 街談巷語, 道聽塗說을 기록하고 시사, 민간전설, 신화를 수집하였던 것이 소설의 탯줄이라고도 할 稗官文學이었으니 이 중에서 비교적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傳奇, 志怪, 博物 등의 부분이 초기 고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허구성과 이야기의 요소를 중심으로 삼는 오늘날의 소설 개념과는 달리 잡록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당시의 소설은 결국 넌픽션의 형태에 접근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제시의 방법을 사용했던 雜錄類 범주의 소설은 당시의 여러 문학장르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문학양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패관문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당시의 소설 양식은 사실기록에 비교적 충실하려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사 서술에의 의욕이 낳은 부산물일 수도 있고 견문 제공과 파한이라는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유몽인은 "시문은 비록 공교롭기는 하나 일반대중이 귀하게 여김은 소설, 叢話를 저술한 것만 못하다. 비단 세교를 보좌하는 것뿐만 아니리 대중이 역시 즐겨 보기도 한다." 하여 일반대중이 시문보다 오히려 소설을 귀하게 여겨 교훈적 기능이 우세함을 인정하고 있다.

 유교경전과 史書와 시를 정통 교과목으로 여긴 유학자들의 눈에, 비현실적이며 공상적인 세계를 제시한 소설들이 비속하고 허탄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世敎, 風敎, 名敎라는 기능 즉 교훈 혹은 교육적 기능에 기대하고 역사에 대한 보충이라는 점에 근거를 두고 고소설은 존재하였기 때문에 소설의 교시적 기능은 고소설에 관한 한 불가결한 문학적 기능이었다.

 

     3. 歷代細事의 인식방편으로서의 기능

 고소설의 전형적 형태를 전기적 유형이라 한다면 그것은 한 인물의 생애와 행적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기 마련이다.

 또한 역대의 저명한 인물의 행적이나 역사적 사건을 평가 선양하기 위하여 소설작품을 지어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우리의 고소설은 역사적 동인으로 말미암아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개인의 행적은 이미 역사적 사실인데다 그가 관련되거나 직접 일으킨 역사적 사건과 직결 확대됨으로써 전기적 유형을 띠게 되고 그러한 전기적 유형은 자연스럽게 역사적 평가, 선양의 동인을 가지고 대두된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적 사실에 바탕하고 역사의식에 근거하여 형성된 전형적 역사소설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평가 선양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역사의식이 다른 허구적 소설에도 전이, 작용하여 고소설 모두를 전기적 유형 속에 포괄하고 역사적 성격을 부여하려고 한 데 문제가 있다.

 列傳系 전기소설에서는 그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들이 그의 실제 행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허구화된 역사소설에서는 역사상의 저명한 인물에서 그 이름과 행적의 윤곽만을 따가지고 꾸며지고, 역사적으로 위장되어 그것이 마치 역사적 사건처럼 작용하는 것도 있다.

 어쨌든 열전계 전기소설이나 역사소설 내지 역사화된 소설은 사건구성에서 안정된 전형을 이룩하여 고소설을 지탱하는 한 축으로 자라온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이것을 자기의 것으로 허구화하여 독자에게 어떤 흥미와 감명을 주겠다는 목적의식을 가진 본격적인 역사소설이 역사 의식을 인식시켜 주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역사소설의 범주에도 들지 않는 상당수의 고소설에서 소설이라는 意匠을 빌려 역사적 사실을 인식시켜 주려는 노력들이 빈번하게 대두되는 현상은 소설의 기능이 요즘과는 달랐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주제와는 상관없이 고소설의 부분 부분에서 인물들의 대화나 상황의 설명을 통하여 설파되는 역사적 사실의 인용이나 열거는 소설이라는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통한 상식적 역사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인용자료 생략)

 이같은 故事나 史實의 열거는 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적카타르시스이고 현학적 취향을 펼친 것이었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여려운 사서를 섭렵하지 않고도 고사나 역사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한 방편이 되기도 했으니 소설의 효용성과 교양물로서의 비중이 이런 데 있었던 것이다.

 독자들이 왜 소설을 읽으며 작가는 무엇 때문에 소설을 쓰느냐 하는 문제는 소설의 기능과 목적을 밝히는 일이 되겠는데 적어도 고소설의 작가와 독자는 현대소설의 작가와 독자의 입장과 같다고만 할 수가 없다.

 현대소설의 작가는 소설이라는 기틀을 통해서 자신과 남의 이야기를 하고, 대상을 명확하게 묘사하려 하고 그것을 기술, 정리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자기 작품에서 도처에 자기 지식, 자기 의지, 즉 자기 자신과 부닥칠 뿐이다. 따라서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 효과를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묘사한 대상도 진정한 대상 자체가 아니다.

 작가가 작품을 쓴다는 것은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가 계획한 발원을 객관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도록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설이 무엇을 위해서 씌어져야 할 지도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고소설에 관한 한 소설의 일반적인 기능이나 목적은 비교적 단조롭다. 즉 소설은 도덕적인 교훈과 지식을 주어야 한다는 功利主義的인 입장에 더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소설은 소설이라는 意匠을 통해 역사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신구서림본 <별주부전>에서는 자라의 水上旅程을 통해 소설을 서술한다기보다는 歷代細事를 밝히는 일에 더 주력하고 있다. 자라가 행장을 수습하여 만경창파 깊은 물에 허위둥실 떠 올라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 가서 만난 첫번째 인물이 아황여영이다. 고소설 <별주부전>은 이 과정에서 소설적 전개에 큰 상관도 없는 堯女舜妻 아황여영의 고사를 말하는 일에 더 깊이 관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을 문예미학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었다기보다는 역대세사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설이라는 도구를 빌려 표명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는 사례이다.

 <별주부전>은 상당 부분 소설미학적 세계를 떠나 상식적 범위의 역사 서술 쪽으로 계속 몰입한다. 굴대부의 이야기, 태공망 려상의 이야기, 조조의 이야기, 적벽강상 큰 싸움의 제갈선생의 사적이 서술되고, 조자룡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소동파가 언급되는가 하면 南宋 충신 岳武穆의 사적을 서술하는 일에까지 이른다.

 이쯤되면 소설의 기능은 문예를 서술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역사를 인식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인용자료 생략)   우리 고소설의 가치는 반드시 윤리적 교훈이나 해학이나 풍자에만 둘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적인 지식을 독자에게 전달해 주려는 데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이렇게 되고 보면 소설 작품은 虛構 뿐만 아니라 敍事까지도 벗어나 설명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문예나 소설전통에서의 잠정적 일탈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의 소박하고 현실적인 생활 태도, 가치관, 지식 따위를 그들 나름의 소박한 서술 형태로 표현한 것이어서, 통속소설의 한 현상으로서 자리매김은 충부하다고 본다. 고소설에 나타난 역사적 현상과 역사관계의 서술 역시, 사실의 정확성에 좌우되지 않고 고소설의 역사적 내용을 감명 깊은 사실로 긍정하면서 수용하였던 것이다.

 正史를 윤색 부연한 연의소설이 사실을 과장함으로써 정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저해한다는 힐난이 구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와같은 正史에 대한 자의적인 과장과 왜곡을 일삼은 소설류가 세상에 널리 퍼져 탐독되었다는 사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儒生의 후학들이나 士類마저 史書 經書를 읽지 않고 연의소설을 통하여 역사를 인식하려는 경향이었던 환경에서 과장과 부연이 있어 史實이 통속화되긴 했어도, 소설이라는 意匠을 통하여 대중에게 역사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다는 점에서 소설의 교시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4. 世敎 風敎 名敎로서의 기능

 소설은 시대와 유행에 따라 일상적인 연대기와 비슷해지기도 했고, 역사적 사실의 재구성에 가까워지기도 했으며, 철학적이거나 풍자적이며 해학적으로도 되는가 하면 몇 가지 풍속적 특징을 담기도 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들어내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소설은 예술이나 지식의 다양한 분야에서 신세를 지며 빌려다 쓰는 것도 많다.

 있는 그대로의 문헌, 우화, 철학적 성찰, 윤리적 교훈, 시적 노래묘사 등 각양각색의 요소들을 편입시켜 사용하기도 하여 소설을 어떤 문학의 영역보다 인기 있는 장르가 되게 한다.

 독자는 결국 소설 속에서 자기가 구하는 것을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같은 소설의 성격은 소설이 장수하는 요인이 되게도 한다.

 다니엘 휘에(Daniel Huet)는 엄밀하게 말해서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면서 그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기교를 다해 산문으로 쓴, 사랑의 우여곡절의 허구라고 말했다.

 모든 문학은 그 시대의 문물을 반영 수용하고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의 고소설만큼 그 양식 속에 너무도 많은 것을 담아내려 했던 문예양식도 드물 것이다.

 소설이 문학예술인 이상 문예사회학이나 수용미학의 입장에서 주목해야겠지만, 고소설의 문학적 실상과 문학사적 위상은 반드시 그런 쪽으로만 나아가지 않았던 것도 우리의 소설문학적 현실이었다.

 소설이 문예미학적 측면에서만 애독 창작 되었던 것이 아니라 생활상 필요한 지식이나 교양의 전달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했던 독서물이었음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고소설의 향유자는 소설을 보다 폭넓은 읽을거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고소설을 보는 시각도 반드시 소설미학적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작품 외적 요소를 짚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소설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는 문예양식적 관점에서 형식이나 구조의 파악도 중요하지만, 내용론적 관점에서 어떤 소재가 고소설의 내용으로 소화 수용되고 있는가 하는 양상을 살피는 것도 고소설의 내질을 심층적으로 밝히는 결과가 되어 고소설의 실상 파악에 일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고소설의 내용으로 수용된 역사, 지리, 정치, 사회, 종교, 사상, 상업, 경제, 문화, 예술의 모든 영역을 한꺼번에 일일이 심층분석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소설의 교시적 기능에 바탕하여 한국 고소설의, 세상을 가르치고 풍습을 교화시키며 인륜의 명분을 밝혀 가르치는 世敎, 風敎, 名敎로서의 기능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가장 보편적인 점이 인생살이의 이치를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인생화복의 이치도 천지순환과 같이 하면 잘 풀릴 것이라는 것을 고소설을 통하여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인용자료 생략)

 고소설의 교훈 설교는 주로 苦盡甘來와 積善之家必有餘慶과 인과응보의 天理公道에 따르면 된다는 주제로 나타난다.

 사상적 측면에서 보면 유학사상, 불교사상, 도교사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인륜도덕을 숭상하고 군자가 되어야 하며 청렴결백하고 天命을 따라야 할 것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 (인용자료 생략)

 풍습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고소설은 직접적이다. 고소설이 지니고 있는 극도의 유형성과 전형성은 그것이 민속문학적 관용 형식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고소설 속에는 그 시기 우리 민족의 생생한 풍습적 사항이 파노라마처럼 엮어져 있다. (인용자료 생략)

 고소설 <두껍전>에서 두꺼비의 입을 통해 서술되는 작가의 장광설은 민속 그대로의 현장이기도 하고 생활인의 상식이기도 하다. 천문지리 육도삼략과 의약법도를 백과전서식으로 펼치고 있는데, 소설에서의 이러한 현상은 소설성을 반감하는 요인도 되지만 우리의 고소설에 관한 한 소설성 여부를 떠나 주목해 볼 만한 일이다.

 소설을 인식하는 시각이나 기능이 독자적 측면에서나 작가적 측면에서나를 막론하고 일상적 삶의 다양한 정보, 견문을 넓혀 주는 자료로 활용했던 사실을 방관할 수 없는 것이다.

 太極 陰陽 五行 四象 八卦 五方 五色 四季 十干 十二支 六甲의 원칙이며, 하늘과 땅 日月星辰의 운행과 조화를 소설 문장 속에 서술해 우주관을 피력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소설의 문장이라면 현대적 시각에서는 도저히 용납되어질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고소설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인용자료 생략)

 소설에 있어서 인물, 사건, 환경의 서술은 구성과 진행에 요긴한 연결고리로 작용하게 마련이지만, 교시적 기능이 강했던 고소설은 소설의 전개나 구성에 특별한 관계 없이도 세상을 가르치고 풍습을 교화시키며 인륜의 명분을 밝혀 가르치는 일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소설성 여부를 떠나 敎說하려 들었고, 독자는 오히려 그러한 이야기거리에 관심하면서 소설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

 후기 우리 고소설의 상당수는 <두껍전>에서처럼 당시대인이 여러 경로를 통해 습득한 지식, 견문, 당시 일상사에서 통용되는 생활상식들을 여과 없이 수용하고 있다. 

 소설적 서사를 벗어나 설명문이 되어 가는가 하면, 미적 특질을 상실함으로써 소설성을 반감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고소설에 관한한 소설성 여부를 떠나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 고소설의 향유자는 소설을 보다 폭넓은 읽을 거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야기로서의 흥미 속에 생활인으로서의 교양과 지식을 소설에서 얻을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소득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고소설을 보는 시각도 소설미학적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敎示物로서의 기능을 짚어보는 일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5. 결론

 교육이란, 인류 체험을 요약하고 기술화해서 후대에 전하는 일이다. 또한 문학은 가치 있는 체험의 기록이기 때문에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한국의 고소설은 士類에게 있어 비도덕적이며 비사실적이어서 속되다고 異端視한 풍토 속에서 자라왔다.

 작자의 입장에서는 知的카타르시스로서 현학적 취향을 펼친 것이고, 대중 독자에게는 유일한 교양의 창구로서 교육적 가치를 지니는 읽을거리로 존재해 왔다.

 소설이라는 기틀을 통해서 흥미있게 사실을 전달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소설작품을 읽고 역사를 알고, 풍속을 알고, 사람의 도리를 안다면, 소설이 기능하는 바가 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소설의 기능이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어 기쁘게 한다는 기능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한국의 고소설은 당시대의 일상적 언어를 매체로 하여 인식적인 기능의 수행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문학의 기능을 무학외적인 것으로 확대하고 있었던 것이 한국 고소설의 현실이었다.

 한국의 고소설은 역대의 저명한 인물의 행적이나 역사적 사건을 평가 선양하기 위하여 소설작품을 지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같은 고소설의 역사의식은 주제와 상관없이 인물들의 대화나 상황의 설명 가운데서 인용 내지는 활용되기가 일쑤이다.

 또한 한국 고소설은 인생살이의 이치를 가르치려는 데 주력하였다. 人生禍福의 이치도 天地循還의 이치와 같이하면 풀린다는 논리다. 고소설의 교훈 설교는 天理公道에 따르면 된다는 주제로 흔히 나타난다.

 풍습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고소설은 직접적이다. 고소설이 지니고 있는 극도의 유형성과 전형성은 그것이 민속문학적 관용 형식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고소설 속에는 그 시기 우리 민족의 생생한 풍습적 사항이 파노라마처럼 엮어져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국의 고소설은 문예미학적 측면에서만 창작되었던 것이 아니라 생활상 필요한 지식이나 교양의 전달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했던 독서물이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소설이라는 意匠을 빌려 고금사적을 인식시키고 풍습을 교화시키며 인륜의 명분을 밝혀 가르치려 한 것이 한국의 고소설이다. 따라서 고소설을 바라보는 시각도 소설미학적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작품의 외적 요소를 짚어보는 것도 중요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전산입력의 사정상 각주 및 논거가 되는 인용자료는 생략하였음)  

               새얼語文論集 제14집. 한국 고소설의 敎示的 기능 연구. 김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