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정신구조와 사회구조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기본바탕에는 조상숭배와 경로사상이 깔려 있음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전통이나 사회규범은 사회의 각 구성원이나 사회제도를 안정시켜 견고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는 개인의 습관과 사회 관습, 그리고 사회도덕 즉 아마도 법률 이전의 법률 위에 존재하며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경로사상은 크게 역할을 했으며, 조상숭배는 이러한 경로사상을 고조시키는 의식행위(儀式行爲)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과거의 법률은 주로 '유천리(流千里)' 또는 '태삼십장(笞三十杖)' 등의 부정적 규제만을 정하고 있었으나, 사회인을 선하고 의롭게 만드는 것은 집단무의식적인 사회규범이다. 한국 사회의 습관, 풍속, 각종 의식행사는 조상숭배와 경로사상으로 집약될 수 있다.
과거 전통적인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다. 노인은 늙은이의 상징으로 수염을 길게 늘이고 뒷짐을 지고 다니며 '에헴!'하는 기침소리에조차 권위를 붙이려 했다. '노인'이란 말이 존대어로 즐겨 사용되기도 했으며,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나이를 따져 '형(兄)'이라 하거나 상대편을 높이는 데 사용했다. 다툴 때에도 나이를 지적하는 것이 상례이어서 '나이도 몇살 되지 않은 사람'이라 하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나이를 무엇으로 먹었느냐'고 반문하게 된다. 노인에게는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보통이며, 나이가 많다는 것은 피차가 즐겨 쓰는 대화이기도 하다. 노인이 잘못하면 실수나 '망령'이라고 선의로 보아주기가 일쑤다. 이와 같이 나이는 인격과 세력의 표준이며, 노인은 사회적인 권위를 가져, 부락민 중에 다툼이 벌어졌을 때는 노인이 나타나서 시비(是非)를 가리거나, 잘잘못을 가려 따귀때리면 일단 해결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나이보다 가문의 항렬이 중요시되니 늙은 사람은 항렬이 높은 젊은 사람에게 존칭어를 써야 한다. 그런데 동민 중에서 나이도 많고 친척관계의 항렬이 높고 또한 인격을 겸비한 사람일 경우엔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부락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물이 이상적인 지도자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양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자유평등사상이 경로사상을 파괴하였다. 노인이 나가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는 거의 없어졌다. 오히려 젊은이가 대우를 받게 되면서 노인은 반백의 머리를 염색까지 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조 앞에 노인의 권위는 무너지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도덕이나 지성의 틀이 잡히지도 않아 법률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면은 질서를 유지하기에 매우 어렵게 되었다.
경로사상은 단순히 낡은 사상만은 아니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회적인 역할이 어떠했음을 주의해야 될 것이다. 이러한 경로사상은 여러 가지 의식이나 행사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조상숭배에서 볼 수 있으니 제사와 효도에서 뚜렷하다.
제사는 조상에 대한 것과 산신이나 서낭에 대한 것이 있다. 조선왕조 조정에서도 종묘제(宗廟祭)와 사직제(社稷祭)가 있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육체로부터 영혼(넋)이 분리되는 것이라 믿어, 육체적인 동작은 없으나 영혼의 힘은 인간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왔다. 따라서 죽은이와 산 사람과는 부단히 연결되며 관계한다고 생각했다.
제사는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이의 영혼과 만나는 것이며, 그를 대접하는 것은 즉 하나의 관계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파악된다. 죽음은 살아 있는 이와 육체적인 관계면에서 단절될 뿐이지 정신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관계한다고 할 수 있다. 제사는 죽은이를 추모하고 기념하는 것이기보다는 죽기 전날, 즉 관념상 '살아계신'날에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삿날은 죽은 날 하루 전이 된다.
제사는 효성의 표현이며 동시에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살아 있는 사람이 그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제사를 지낼 때 신으로 하여금 '흠향(歆饗)'하라고 대문을 열고 빨랫줄을 풀어 신의 내방을 고대하는 것이다. 제사를 잘 지내는 것은 효도의 연속이며, 동시에 그 영혼으로부터 음덕(蔭德)을 입어 자손의 번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의 영혼을 중요시하는 의미에서 조상의 유골(遺骨)을 좋은 명당(明堂)에 모시고 자손의 영화를 누리고자 하여 묏자리를 보는 풍수가 크게 요구되면서 사회적 폐를 일으키기도 했던 것이다.
지관(地官)을 초치하여 묘지를 선정한다. 지관은 먼저 사자(死者)의 사주(四柱)를 보고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따져서 묏자리를 찾는데, 그 땅이 타인의 소유인 경우에는 고가를 치르게 된다든지, 우선 몰래 장례를 지내고는 필경 이장(移葬)을 하는 등 사회적 폐가 많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때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던 것은 적어도 조상을 단순히 추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세와 연결시킨 데서 생긴 것이다.
이와 비슷한 또하나의 조상숭배 풍습이 있으니 초분장제(草墳葬制)가 그것이다. 초분이란 죽은 시체를 지상에 두고 풀이나 짚으로 덮어 3년 내지 10년까지 두어서 살이 다 썩은 후에 매장하는 이차장(二次葬)의 일차장(一次葬)을 말하는 것이다.
죽은이의 영혼이 무당의 몸을 빌어 구체적인 육신과 영혼이 일시나마 한덩어리로서 인긴과 관계하는 것이 무당의 사명이다. 무당은 종교의 종사자로부터 신 자체가 되어 공수를 내릴뿐더러 자손들을 만져볼 수 있으며 하소연하는 넋두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무당을 통해서 영혼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무당은 신의 자격으로 인간을 만져주는 구체적인 존재이며, 주제하며 기원하는 것으로 사제자(司祭者)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조상숭배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경로사상의 구체적 표현이며 죽은이에 대한 효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둘째 조상숭배는 죽은이의 영혼과 산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죽은이는 산 사람에게 계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니, 그러한 표현을 제사와 장례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상숭배를 통해서 씨족의 단결을 보다 견고하게 하고 경로사상을 강조해 갔고, 다시 경로사상은 사회적인 지도자상을 형성하여 사회결속에 이바지했던 것이다.
결혼식을 비롯한 각종 통과의례는 두 사람만의 축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가문과 가문의 결속, 연결이며, 이 의식으로 인하여 부락민은 좀더 유대를 강화하는 등 처음부터 사회적 기능을 지닌 것이다.
의식은 거의 종교적 행위로부터 독립되었으며 사회적 규범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시되어야 한다. 서양문화에서의 의식은 종교와 밀접되어 있어서 신랑과 신부만이 신에게 고하고 몇 사람으로부터는 축하만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의례형식이 크게 복잡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의식의 사회적 기능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梁在淵 외 3인 共編 韓國風俗誌 참조)
'歲時風俗'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경의례(農耕儀禮) (0) | 2012.11.14 |
---|---|
추석/추석절/중추/중추절/가위/가윗날/한가위 (0) | 2012.09.26 |
전승놀이 및 오락/투전, 골패 (0) | 2012.03.30 |
무속신앙(巫俗信仰) (0) | 2012.02.17 |
섣달그믐날/ 설날/ 세배/ 세의 (0) | 2012.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