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자아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우쭐하면 실패한다
잔재주를 부리는 사람은 현실 생활에서 약게 돌아, 꽤 잘 해나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실패를 하고 만다. 특히 젊었을 때 성공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예가 많다.
<군중 속의 하나의 얼굴>이란 제목의 미국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사람의 그런 약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어떤 도시의 이름도 없는 한 사나이가 우연한 기회에 텔레비젼에 출연하게 되어, 그의 꾸밈없는 천재적 화술이 일반 대중을 매혹해서 차츰 유명해지고 드디어 뉴욕 천지에서 대활약을 하게 되었다.
그가 텔레비젼에 나가 어떤 상품을 선전하게 되면 그 상품의 판매고가 급격히 증가하고, 그가 새 옷을 입고 나가면 그것이 대뜸 유행했다.
그의 말은 마침내 정치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지고, 그가 우(右)라고 하면 대중은 일제히 우로 나란히 하고 그가 좌(左)라고 하면 대중은 일제히 좌로 나란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쾌활하고 붙임성 있고 사람좋은 청년이었지만, 유명해짐에 따라 아주 거만해지고 사람을 사람같이 안 보는 무례한 행동을 일삼게 되었다.
그를 오늘의 지위로까지 끌어 올리는데 음으로 양으로 크게 공헌한 그의 애인마저가 정이 끊어져 물러가고 말 지경으로 불쾌한 사나이가 되어 버렸다.
'대중이란 어리석은 거야, 내 뜻대로 움직이는 거야' 라고 마침내는 대중을 향하여 공공연하게 우롱하는 말을 하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순간 지금까지 그의 말대로 움직이던 대중이 일제히 외면을 하고 그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의 인기는 뚝 떨어지고 무대에서 사라져야 할 운명에 다다랐다.
실성할 지경에 이르러 자기의 과오를 깨닫지만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은 이런 것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잘못이다.
<군중 속의 하나의 얼굴>이란 영화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 이것은 누구나 좀 성공하면 빠지기 쉬운 함정인 것이다.
이런 위험에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리 초자아가 부모나 선배들 손에 의하여 심어진다.
성공한 사람을 남의 질투에서 구해 내고 마침내 존경과 신뢰마저 획득하도록 하기 위해서 초자아는 지극히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대개가 초자아의 이런 역할에 대하여 그다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좀 성공하면 완전히 욕망의 노예가 되어 초자아를 짓누르고 말므로 실패하는 것이다.
이상이 너무 높아도 마이너스
초자아가 확립되어 있으면 사람은 비록 성공하더라도 그것으로 우쭐대거나 자기 밖에는 사람이 없는듯이 행동하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초자아는 늘 사람을 향상시키게끔 자아를 독려하여 신뢰받을 행동을 하도록 한다.
이와같이 초자아가 현실 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의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초자아의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초자아는 높으면 높을수록, 엄하면 엄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초자아가 너무 높거나 또는 너무 엄하면 이 초자아의 요구에 응할 수 없는 자아는 늘 초자아한테 얻어 맞아 아주 납짝해진다.
너무 양심적인 사람은 양심의 명하는대로 행동할 수 없었을 경우에는 남 갑절 괴로와하게 된다.
지나치게 결백한 사람은 그 때문에 남과 싸워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이 많다.
현실의 우리 행동은 우리의 이상에서 본다면 도저히 만족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그것을 일일이 책하고 거기에 마음을 쓰고 있다면 현실 생활에 견뎌 나갈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초자아가 그 사람의 능력(자아의 힘)에 비하여 너무 높을 때에는 도리어 그 사람은 위축된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다.
부모가 자녀에게 '큰 사람이 되라, 큰 사람이 되라'고 높은 초자아를 육성해 주어도 아이의 능력이 도저히 그것에 미칠 수 없을 경우에는 아이의 자아는 초자아의 높은 요구에 늘 얻어 맞아 나약한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자아는 건전히 성장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초자아는 자아의 세기에 비례하여 형성되지 않으면 도리어 마이너스점이 많은 결과가 된다.
그러나 보통 부모는 초자아와 자아와의 이런 상관관계를 깨닫지 못하므로 무턱대고 과도한 초자아를 어린이에게 주입하려고 한다.
평범한 아이이면 너무나도 높은 부모의 이상에 응할 수 없어 도리어 성미가 비꼬이거나 비굴해질 것이며, 혹은 부모의 행동을 원망하여 성질이 비뚤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이란 것은 자아의 상태(사람의 능력)에 응하여 가감함으로써 그 사람의 자아를 높이고 능력을 충분히 발휘케 할 수 있는 것이다.
초자아에는 시대 차가 있다
초자아가 왜 보수적이고 봉건적 색채를 지니고 부식(扶植) 되기 쉬운가 하면 그 하나의 이유로서는 부모의 이상, 즉 양친의 초자아를 그대로 자녀에게 부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고 방식은 어릴 때에는 비교적 유연성이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굳어지며 남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고 제 생각을 고집한다.
나이를 먹으면 자기의 생각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사람의 사상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에 주입된 가르침은 그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기 쉽다.
속담에도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지만, 어릴때 몸에 밴 사고 방식이 일평생 변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지금의 40세 이상 사람의 초자아는 그 사람이 20년 전에 양친에게서나 선배, 사회에서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부터 20년 전의 윤리나 도덕이 이런 사람들의 초자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20년의 세상의 진보는 옛날의 백년 이상이다.
과학에 있어서나 문예 문화면에 있어서나 많은 변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물론 윤리관이나 도덕관도 상당히 변하지 않은 한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 허다하다.
그렇지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초자아를 향상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개의 사람은 옛날부터의 낡은 윤리관을 가지고 어린이의 초자아를 형성하려 한다.
이런, 시대에 맞지 않는 초자아가 형성되어지려고 하는 어린이는 현실에 부닥쳐 몹시 당황하게 된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런 초자아는 모순투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아가 강한 어린이는 이런 초자아에 무턱대고 저항하여 여러가지 레지스턴스를 해본다.
부모들이 자기의 초자아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역시 새 시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이것을 흡수하여 자기의 초자아를 현실에 맞도록 수정하고 그것을 어린이에게 부식(扶植)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통은 초자아를 통하여
사회나 회사나 다 낡은 세대는 보수적이고 자기들의 사고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자기들이 지켜나온 윤리, 도덕, 관습을 끝끝내 지키려고 한다.
낡은 윤리, 도덕이 자기들의 초자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지위나 재산이 낡은 질서를 지킴으로써 보증되어 있는 셈이니까 더한층 낡은 것을 고집한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는 감수성이 강하고 새 시대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으므로 걸핏하면 낡은 것에 대하여 반발하려 한다.
그래서 현재의 윤리나 관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른이 어린이에게 이것들을 초자아로서 어린이 마음 속에 심어 놓으려 든다.
물론 초자아를 어린이 마음에 심어 놓으려 하면 어린이는 이에 반발하지만, 저항하는 어린이를 냅다 책하여 초자아의 형성에 성공하면 이번에는 부모가 일일이 가르치지 않더라도 어린이의 마음 속에 형성된 초자아가 어린이에게 현행의 윤리나 관습을 지키도록 강제한다.
이리하여 낡은 윤리나 관습은 부모의 초자아에서 자식들의 초자아에, 더 나아가서는 손자들의 초자아로 계승되며 보존되는 것이다.
낡은 사회의 질서가 언제까지나 용이하게 빼버릴 수 없는 세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그 준수를 다짐하는 것은 각 사람의 것은 각 사람의 초자아를 통하여 인간을 한 틀 안에 박아 넣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틀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무사히 있을 수는 없다. 사회는 날마다 진보해 가는 것이니까 낡은 윤리나 관습으로는 현실에 맞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저항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을 경우 비로소 낡은 틀이 무너지고 새로운 것이 이와 바뀐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대전 이후의 세계 따위가 바로 이런 대 변혁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낡은 틀은 무너져 버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표면적인 점에 있어서 만이고 사실은 낡은 세대, 즉 전전파(戰前派)의 초자아 속에는 역시 엄연히 살아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전전파는 여전히 어버이로서 선배로서 사회의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어린이들의 초자아 속에 뿌리박으려 하는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전전파의 자녀의 초자아 속에도 이런 낡은 윤리가 새로운 것과 뒤섞이어 남아 있는 수가 많다.
어린이의 초자아 속에는 새것과 낡은 것이 소화되지 않은채 뒤죽박죽 섞여서 갈등하고 있으므로 초자아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아무 활동도 하지 못하며 따라서 어린이는 사상적으로 니힐리즘에 걸리고 만다.
전후 청소년층의 본능적이라고도 할 만한 무궤도한 행동성은 초자아가 본능이나 자아의 폭발을 억제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한 심리학
'성공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등감의 극복 (0) | 2013.01.28 |
---|---|
열등감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0) | 2012.12.01 |
이상(理想)은 분수에 맞게 (0) | 2012.10.29 |
마음의 분석 (0) | 2012.07.27 |
마음의 메카니즘 (0) | 2012.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