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건강염려증

如岡園 2012. 10. 5. 12:22

 건강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도 탈이지만 너무 신경을 써서 병적인 상태가 되는 것도 문제다.

 사소한 몸의 상태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아무리 검사를 해도 신체적인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중대한 병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혹은 병에 걸리면 어쩌나 하고 고민하는 상태를 건강염려증이라 한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 이 희한한 증세의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또 과연 이것도 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도 싶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날 상당수의 사람들은 모두 건강염려증 환자이고 그 건강을 염려하는 증세가 있음으로 해서 질병을 발견하고 질병을 치유하여 건강에 기여하는 바도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의학 분야도 진보를 거듭하여 난치병을 극복하고 국민의 건강도 크게 증진되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덕분에 사람의 수명이 길어져 가고 있다. 수명장수를 오복의 으뜸으로 삼고 있기도 하지만 미래의 인간사를 두고 생각할 때, 사람의 수명이 길어진 일을 과연 축복을 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도리어 걱정스런 일이 되지나 않을지 모를 일이다.

 신진대사는 생명력의 효율을 높이는 생태작용이며 조직을 활성화시키는 요인이다. 그런데 저출산 고령화 요인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력으로 충만되지 않고, 노쇠한 인력의 축적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나 아닌지도 모르겠다.

 건강하게 늙어가면서도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건강하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은 더 큰 치욕이다. 그렇지만 그걸 어찌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인가.

 

 65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직장생활을 접는 퇴임사에서,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나 끼치지 않도록 건강에 유의하면서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했으면서도 나는 건강을 돌보는 일에 아주 소홀하다. 

 특별히 건강에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워낙 천성이 모든 일에  될 대로 되겠지 하는 미련퉁이 기질이 나에게는 있다.

 60단위의 나이 때까지만 해도 노인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 거추장스럽던 것이, 70단위에 올라서고 보니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70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노인 행세에 이력이 붙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렇게 살다가 보면 과연 언제까지 살아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82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선고께서 72세에 다다라, 조고께서 이 연세에 돌아가셨는데 나는 장수를 하는구나 하시면서 10년을 더 사셨으니, 내가 82세에 다다르면 또 어떤 마음일까 모를 일이다. 건강염려를 하면서 관리를 잘 한다면 10년 정도를 더하여 92세까지는 살아 줘야 하는데 건강이고 뭐고 도대체 챙길성이 없는 천성을 고쳐가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건강과 장수 비결, 노년을 즐겁게 사는 방법, 미녀들의 벗은 알몸사진까지를 매일 메일로 되받아 보내주던 동갑내기 친구가 갑자기 저 세상으로 먼저 가버리면서부터 목숨은 건강을 염려해서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나도 이제 세상을 하직해도 될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허탈해졌다.

 꼭 1년 전, 대학 동기생 몇이 모여 점심을 먹고 고궁을 관람하던 때, 그 더위에 초중등학교 교장선생님처럼 우리 모임 친구들을 참 바지런히도 인솔 안내하던 그 친구. 그래서 우리들은 꼭 교장선생님 같다면서, "교장선생님! 덥고 다리 아파요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 주고 좀 쉬었다 가요." 하고 농담까지 하였지. 그날 점심값의 절반 값에나 해당하는 고궁안 매장의 아이스크림 시세도 모르던 그 순진한 친구.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하느님을 잘 모시더니 하늘나라에서 필요해 좀 일찍 데려갔나!

 나이 들어가면서 친구가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제일 큰 충격이라는 것을 실감하도록 한 예의 친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건강을 잘 관리하면서 산다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올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감당하기가 거북할 정도로 무진장 쏟아지는 정보홍수의 시대! 대중매체는 온갖 정보를 쏟아내어 건강염려증 환자를 양산한다.

 정신분석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건강염려증은 자기가 의식하지는 못하는 억압되어 있는 갈등의 표현으로서의 마음의 병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고도 성장사회에서 볼 수 있는 특유한 질병양상일 수도 있다.

 모르는 것이 약이요, 아는 것이 병이라고 했는데 개념이 통일되지 못한 단편적인 앎은 오히려 병을 초래할 수도 있다. 건강식품이 동이 나고 올기쌀 먹듯이 호주머니에서 약을 꺼내어 먹어대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의술의 발달 탓인지 건강 정보의 공급 효과에서인지 노령화 고령화의 시대로 접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불로초를 구하던 진시황도 갔고,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이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문제는 오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자는 데 있고 그것이 중요하다. 단순한 고령화의 지향이 아니라 건강한 장수가 바람직한 과제다.

 건강에 너무 무관심한 것도 탈이지만 건강에 대하여 너무 신경을 쓰는 것도 문제다. 오늘날의 상업주의는 건강에 대하여 너무 신경을 쓰도록 하여 건강에 대하여 너무 신경을 쓰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히스테리, 노이로제가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요즈음은 걸핏하면 스트레스 운운 하면서 마음에다 병을 심어가고 있는 듯하기도 하여 혼란스럽다.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부신자극호르몬이 분비되고 노르에피네프린이 말초혈관을 수축하고 혈압을 높여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등등, 이런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상식화한다는 것도 지성의 낭비가 아닐까 한다.

 특별한 자각증상이 없으면, 마음을 너그럽게 잡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우울증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장애가 없으며 두드러진 고민이나 불안이 없이 사회적 규범에 적응하면서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면 그것이 건강한 삶이 아닌가 싶다.

 

 태반의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나는 유독 검사라는 것이 두렵고 싫다.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은 심리에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건강 검진이나 예방 접종을 안 받고 살아갈 수도 없는 세상이다. 직장생활에서 공통으로 하는 틀에 박힌 검사에는 충실히 응했다. 병을 알고 치료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규범사회의 질서에 따르자는 논리에서다.

 그런데 문제는 노년에 접어들고 난 연후의 건강 검진, 특히 난치병의 조기 발견을 위한 검사 같은 것은 참 하기가 싫다는 데 있다.

 필경 70을 넘게 사용한 내장이 어린아이의 것처럼 온전할 리는 없을 것이고, 다소 흠결이 있다고 한들 어떠랴 싶고, 염상섭의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에서 개구리를 해부하여 득의만면한 그 생물선생이 연상되어서도 싫다.

 무엇보다도 모든 일에 대책 없이 살아가는 나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은 중병으로 진단이 내려진다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에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가는 것이 상책이라 그렇다.

 나는 은근히 병원 침대에 오래 누워 있어 본 적이 없음을 과시한다. 입방정이 조리방정이라고 그런 일이 생기면 어찌하려느냐고 내자가 핀잔을 주지만 건강에는 지극히 낙천적이요 오만의 극치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엊그제까지 오찬을 같이하고 담소를 나누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버리는 일도 생기는 나이가 되고 보니 타산지석을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특별히 건강하여 건강에 소홀한 것이 아니라 어쩌자는 작정이 없어서 소홀하다. 참으로 무모한 소행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타고난 천성을 좀처럼 버릴 수가 없다.

 참 나 같은 사람에게 건강염려증이란 병은 진정 앓아볼 가치가 있는 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如岡 (2012. 6. 20. 동인지 <길>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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