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時風俗

전승놀이 및 오락/ 제기차기, 승경도, 쌍륙

如岡園 2013. 1. 10. 14:01

          # 제기차기

 제기차기는 남자 어린이들의 옥외 놀이로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었으나 근래에는 점차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놀이 방법은 엽전이나 구멍이 뚫린 주화의 구멍을 중심으로 종이나 포백(布帛)을 여러 갈래로 싸서 너풀거리게 한 다음(이것을 제기라고 한다) 서서 발 안쪽으로 차 올리는 것이다.

 혼자서 노는 수도 있으나 대개는 상대를 두고 차올리는 횟수를 많이 오래도록 계속하는 편이 이기도록 되어 있다. 1대 1로 승부를 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몇 사람씩 편을 짜서 겨루기도 한다. 제기는 동전 만한 납덩이를 사용하기도 한다.

 1년 중 수시로 할 수 있으나 대개 농한기인 겨울철이나 특히 정초 명절에 아이들이 즐기는 놀이이다.

 제기차기의 원류는 일반적으로 축국(蹴鞠)에 두고 있다. 축국은 중국 고대에 있어 무술을 위한 놀이이며 넓은 마당에 높은 장대를 세워 거기에 망을 치고 털로 싼 가죽 공을 여러 사람이 다투어 차고 그 공을 가설된 망 위에 얹어 승부를 결하는 것이었다. 사용되는 공은 뒤에 공기를 불어넣어 이른바 기구(氣毬)로 발전하였으니 오늘날의 축구와 방불하다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인이 축국에 능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의 김유신은 축국을 빙자하여 짐짓 김춘추(뒤의 태종왕)의 옷고름을 밟아 이로 인하여 누이인 문희(文姬)를 왕후로 삼게 한 사실(史實)이 전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이 땅에 축국이 두루 퍼졌음을 알 수 있으며, 이규보의 시편에도 기구(氣毬)에 관한 것이 있어 고려시대에도 전승되었음을 짐작케 하는 바이지만,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는 이에 대한 별다른 명문을 볼 수 없다.

 대개 축국은 투호(投壺)와 같이 상류층의 아희(雅戱)의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되며, 신라를 이어 고려에 전승되었던 이 놀이는 그 상무적(尙武的) 요소로 인하여 조선왕조의 기휘에 걸려 소외된 것이나 아닌지 모를 일이다. 다만 그것이 민간에 흘러서 쇠잔한 모습으로 변한 것이 어린이들의 제기차기가 아닌가 한다.

 

          # 승경도(陞卿圖)

 승경도는 종경도(從卿圖)라고도 하며 또 승정도(陞政圖), 종정도(從政圖)라는 이름도 있다. 주로 양반 가문의 젊은이들의 호상을 받아온 실내오락의 한 가지이다.

 근래의 것을 보면 조선왕조의 관직명을 도시(圖示)한 지면(紙面; 중앙에는 官職名을 변두리에는 外職과 則罰을 배치하였다)을 놓고 주사위(1에서 5까지의 눈을 새긴 輪木)나 윷을 쳐서 나온 눈 수대로 승진하게 마련이며, 문과의 코스로 들면 영의정, 무과를 택한 경우에는 도원수(都元帥)를 거쳐 사퇴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만일 계속 '도', 즉 1이 나오면 점점 강등되어 파직(罷職)이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사약(賜藥)을 당하여 패하게 된다.

 이 놀이는 장차 관계에 나설 청소년 층에게 관직의 승차(陞差)를 이해시키며 공명심을 자극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서민적 놀이는 아니지만 전국적으로 보급된 정초의 실내유희임에는 틀림없다.

 승경도와 같이 지면에 간격을 긋고 관등을 표시한 다음, 주사위를 던져 그 나온 수대로 승진하여 최고의 관작을 따는 것으로 승부를 결하는 유희는 원래 중국 당대(唐代)에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후 송, 원, 명을 거치는 동안 여러 가지 비슷한 것이 나타났다.

 

          # 쌍륙(雙六, 雙陸)

 쌍륙은 한자로 雙六 또는 雙陸이라고 표기되며 악삭(握삭)이라고도 하였다. 대개 한무제(漢武帝)의 서역(西域) 개척 이후 중국에 유전된 많은 잡희 중의 하나로 생각되고 있다.

 서역 잡희는 수, 당대에 가장 성황을 이루었고, 많은 놀이가 그 무렵 한반도에 전입되었는데, 이 쌍륙놀이도 그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문헌으로는 고려 때 이규보의 시에 '閑呼玉局爭雙六 醉把朱朱弄十三'이라는 귀절이 있고, 심수경의 <遣閑雜錄>에 '한가로이 옥국(玉局, 쌍륙판)을 지켜보며 쌍륙을 겨룬다. 취하여 붉은 말을 잡으며 열 석 줄을 다룬다'라고 돼 있다.

 대개 사대부 등 유식층의 남녀 간에 행하여진 놀이였으나 특히 중류 이상 가정의 부녀자들이 즐긴 놀이였다.

 별다른 일 없이 밖에 나돌지 않고 1년내 집안에서만 국척하던 과거 사회의 부녀자들에게 실내오락이 별로 없었던 것은 그들의 이중고(二重苦)를 여실히 나타낸 것이라 하겠으나, 그런 상황에서 부녀자들의 쌍륙놀이에 대한 애호도를 십분 짐작할 것이다. 

 이 놀이는 근대까지도 여러 지방에 전승되어 왔으나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놀이의 방법은 안팎 각각 六간살로 된 진마판(進馬板)을 놓고 쌍방이 15개 또는 그 이상의 말을 준비한 다음, 1에서 6까지의 눈을 가진 六모의 주사위 둘을 던져 나타난 눈 수대로 말을 진행시켜 상대편보다 먼저 종점에 이르는 편이 이기는 것이다. 말의 진행에 있어서는 도중에 상대편 말 두 필과 마주치면 죽어서 후퇴하는 등 여러가지 규칙이 있으며 지방에 따라 그 규약은 같지 않고 쓰이는 말도 일정하지 않다.

 그리고 이 놀이는 1년 중 수시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대개 정초에 많이 놀고 추석이나 겨울의 한가한 때에 즐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