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와 까마귀
어느 날 까마귀가 치즈 한 쪼각을 훔쳐서 그것을 조용히 먹으려고 나무 숲 속으로 날아갔다. 까마귀는 치즈를 주둥이에 물고 나무에 앉아 있었다. 마침 여우가 지나가다가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참 치즈 냄새도 좋다. 저것을 꼭 빼앗을 테야, 나는 여우야.)
하고 여우는 생각했다. 나무 가까이 와서 여우는 까마귀에게 말을 던졌다.
"마나님, 당신은 참으로 아름다운 짐승이올시다. 나는 당신네 집안들이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참 그 눈매라든지 공단빛 나는 날개라든가, 아름다운 생김새며, 그런데 참 마나님의 음성도 아름답겠지요? 만일 그러시다면 마나님은 조류의 여왕으로 불리어짐이 당연합니다. 어려우시지만 노래나 한 곡조 불러 주시렵니까?"
까마귀떼의 까욱까욱하는 소리가 음악적이 아님은 다 아는 사실이다. 까마귀는 경계해야 했건만 여우의 아첨에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조심하는 것도 잊었다.
까마귀는 자기의 명창을 여우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입을 열었다. 순간 치즈쪼각은 떨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여우가 원하던 바였다.
여우는 그 치즈를 한입에 삼켜버리고 발걸음을 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마나님 참으로 만족합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마나님의 음성은 매우 훌륭합니다. 그러나 마나님은 지혜가 부족해서 유감입니다."
- 남이 아첨할 때에는 경계해야 한다.
# 여우와 황새
여우가 황새를 오찬에 초청하였다. 다만 수프만 장만하여 넓고 얕은 접시에 담아 놓았다. 여우는 매우 엄숙한 태도로 향연석상에서 주인노릇을 했다. 그리고 여우는 자기 친구에게 이거 보란듯이 국을 먹기 시작하였다. 여우에겐 아무런 고통이 없었지만 황새는 주둥이끝으로 간신히 적실 정도로 접시가 얕았다. 먹기가 매우 곤란했다. 그러나 황새는 오찬을 칭찬하고 머지 않아 답례를 하겠노라 하고 돌아왔다.
이삼일 후 황새는 여우를 초청했다. 유리병에 물고기를 넣은 것 밖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병목이 좁고 길어서 황새 자신은 먹기 어렵지 않으나 여우는 병 속에 비쳐보이는 고기 조각을 핥을 뿐 신통한 수가 없었다. 여우는 골이 났다. 하지만 자기는 전날의 적당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 간사한 짓을 하는 자는 그 때문에 고통을 받을 각오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최후에 웃는 사람이 가장 잘 웃는 사람이다.
# 영감과 아들과 나귀
한 영감이 자기 아들과 장에서 팔 나귀를 몰고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얼마 안되어서 그들은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소녀들 앞에 이르렀다.
"저것 좀 봐, 저런 멍텅구리들이 있어. 나귀를 편안히 두고 자기들은 먼지 속을 허덕거리며 가는 꼴 봐."
영감은 소녀의 말을 듣고 아들을 나귀에 태웠다. 얼마를 더 갔다.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노인이 딴 노인에게 말했다.
"자아, 이것 보아요. 내가 한 말이 틀림이 없다는 것은 이것만 봐도 입증이 되지요. 요사이 젊은 놈이란, 노인을 위할 줄 모르거든. 자 이 애를 봐요. 가엾은 늙은 애비를 옆에서 걷게 하고 저만 타고 가지 않나?"
이 이야기를 들은 노인은 아들 대신 자기가 나귀를 올라타고 갔다.
부인 세 사람이 애기를 안고 있었다. 그녀들은 숙덕거렸다. 노인과 아들과 나귀를 보고,
"지독한 영감도 있다. 가엾게도 어린자식은 피곤해서 터벅거리는데 자기만 왕이나 된 듯이 타고 가다니, 어쩌면 저렇게도 냉정할까."
그리하여 영감은 아들을 뒤에 태우고 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청년 몇 사람이 그들을 불러세웠다.
"그 나귀는 당신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도 짐을 많이 실으면 나귀가 가엽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나귀를 타는 것 보다는 오히려 나귀를 메고 가는 편이 좋겠는데요."
영감과 아들은 나귀에서 내렸다. 나귀 다리를 새끼로 묶어 장대에 끼어서 메고 갔다. 이를 보는 사람은 모두 낄낄거리고 있었다. 조금 후 그들은 나귀를 메고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귀는 발길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새끼는 끊어지고 나귀는 물 속에 빠져서 죽고 말았다. 영감은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부랴부랴 돌아갔다.
-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려다간 한 사람의 마음에도 들게 할 수 없다.
이솝(아이소포스 B.C 620~560);그리스의 유명한 우화작가. 그의 생애는 미상이나, 헤르도토스에 의하면 기원전 6세기에 사모스에서 노예로 있었으나 그의 기지로 해방되어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의 총애를 받다가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 그의 우화집은 기원전 300년 무렵 알렉산드리아의 데메트리오스가 산문으로, 또 2세기에 바브리오스가 운문으로 집성한 것이며, 근세에 와서는 15세기 말에 영역, 독역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솝 우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솝의 우화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오늘날의 인간이나 2천년 전 이솝의 시대의 인간들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솝이 호흡을 같이 했었을지도 모를 옛날 동물들의 생활이나 오늘날의 인간의 생활 또는 행위에도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솝 이야기는 인간 심리의 생생한 원색판 사진과도 같다. 누구나 알 수 있는 평범하고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인간 생활을 쉽게 풀이해 주는 인간 심리의 만화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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