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나의, <길> 同人 10년

如岡園 2013. 9. 29. 21:39

           나에게 글쓰기를 길들여 준 10년 지기(知己)

 

'길'동인 10년은 나의 정년퇴직 후 무직생활 10년과 맞물린다.

 42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대학 강단을 떠난 것이 2003년 2월 24일이었고, 그해 이른 봄 '길'도 첫발을 내디뎌 8월 15일에 창간호를 발간했다. 그러고 10년, 2013년 8월 15일 지령(紙齡) 14호의 성과는 괄목상대(刮目相對)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하고 중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하나는, 시인도 수필가도 소설가도 아닌 사람이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반드시 체육교사를 해야 된다는 이치는 맞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뜬금없는 우려였지만 어찌되었건, 시인이다 소설가다 수필가다 하는 문인의 자격은 매력이 있는 전문성이다.

 대학 강단에서 한국고전문학을 전공하고 연구 강의하면서는, 학문영역에 치중하다보니 학술 논문과는 변별되는 창작품으로서의 수필은 도리어 잡문 정도로 인정되어 그런 글을 쓰는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청춘 시절에 갈망했던 문학의 길, 창작에의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남의 작품을 물고 늘어져 따지고 드는 학문세계의 숲에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 문예를 창작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참으로 엉뚱한 방향에서 왔다.

 어떤 일간지에서 수필 성격의 짧은 칼럼을 연속으로 싣고 있었는데, 필자를 추적하여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연구실을 찾아온 미모의 여성 독자가 있어 나를 황홀하게 했다.

 단아한 한복차림에 글을 읽은 소감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 문학소녀 기질의 여인인가 싶었지만 꽃을 안고 연구실까지 방문한 진의를 알 수는 없었다. 꽃뱀이었을까? 이왕이면 그녀가 문예(文藝)의 요정(妖精)이어서 글을 쓰는 길이라도 인도했으면 했다.

 정년에 즈음하여 이런저런 잡문들을 모아 산문집 하나를 내고부터 수필을 써야겠구나 싶었다. 

 작문을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고정관념일 것이다.

 각개 문학 장르의 특성과 개념도 모르고, 소설은 내용이 방대해서 쓰기가 어렵고, 시는 몇 줄만 얽어내면 되니까 쉽다. 수필은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니 만만하다. 이런 식으로 달려들어 허명(虛名)을 얻고 문인(文人) 행세를 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문인 행세를 하려면 이른바 문단(文壇)에 등단을 해야 하는 모양이지만, 시험을 쳐서 관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싫었다. '이 나이에 무슨' 하고, 애늙은이 같은 기질은 진짜 늙은이 시절에 와서도 어김없다. 무슨 무슨 동인(同人)이다 하고 제멋대로 얽어 부침(浮沈)하는 무리에 끼어들기도 싫었고, 넣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내가 찾아든 곳이 '글로써 같은 길을 가는 <길>'이다.

 <길>은 동인 모두가 창립 멤버요, 그야말로 같은 길을 함께 의연히 걸어가고 있다. 

 동인의 성향이 시인도 있고 소설가도 있고 평론가도 있고 학자도 있다. 제각각의 분야에서 한몫을 톡톡이 하면서 젠체하질 않는다. 그것이 좋았다. 

 14호까지의 발간에 한 호(號)도 거르지 않고 나는 3편씩을 등재했다. 

 원고제출까지는 일기장을 검사받는 초등학생의 심정이 된다. 책이 되어 나오면 글을 잘 썼다고 동그라미 서너 개를 받은 듯 감동스럽다. 

 정년퇴직 10년!

 생활권을 옮겨 다니면서도 <길>은 영원한 나의 동반자이며 지기지우(知己之友)다.

 

                                                                                     (2013. 8. 15. 동인지<길>14호. 如岡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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