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일(元日설날)
남녀가 모두 세 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이라 하고, 친척이나 어른들을 찾아가 절하는 것을 세배(歲拜)라 하며, 시절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그때의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 술을 데우지 않는 것은 봄을 맞이하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부인들은 잘 차린 어린 계집종을 보내어 좋은 말로 서로 문안을 드리는데 이를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벼슬을 하는 집안에서는 옻칠을 한 책상을 대청에 비치해 둔다. 그러면 밑에 거느리는 아전들은 종이를 접어 이름을 써 가지고 와 책상 위에 놓아 두고 간다. 이를 세함(歲啣)이라 한다.
생각컨대 왕기(王錡)의 <寓圃雜記>에, "서울 풍속에 매년 설날이 되면 주인은 모두 하례하러 나가고 다만 백지 장부와 붓, 벼루를 책상 위에 비치해 둔다. 그러면 하례객이 와서 자기의 이름을 쓸 뿐 환영, 환송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이것이 곧 세함(歲啣)의 시초다.
맵쌀로 떡을 만드는데, 치고 비벼 한 가닥으로 만든다. 그리고 굳어지기를 기다려 가로자르는데 얇기가 돈과 같다. 그것을 끓이다가 꿩고기, 후추가루 등을 섞어 세찬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을 만든다. 그리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을 떡국을 몇 그릇째 먹었느냐고 한다.
생각컨대 육방옹(陸放翁)의 <歲首書事詩> 주(註)에, "시골 풍속에 설날에 반드시 탕병(湯餠)을 먹는데 이를 동혼돈(冬혼돈), 연박돈(年박돈)이라 한다"고 했다.
수성(壽星), 선녀(仙女), 직일신장(直日神將)의 그림을 '세화(歲畵)'라 한다. 또 금(金), 갑(甲) 두 장군의 상(像)의 길이가 한 길이 넘는데 하나는 도끼를 들었고 하나는 절(節)을 들었다. 그것을 궁문(宮門)의 양 문짝에다 붙인다. 이것을 문배(門排)라고 한다. 또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한 상을 겹대문에다 붙이기도 한다. 척리(戚里)와 항간에서도 역시 이 그림을 얻어다가 붙이는데 그림이 문짝에 따라 작게도 한다. 문설주에는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붙인다. 속담에 금장군과 갑장군은 울지공(울遲恭)과 진숙보(秦叔寶)요, 붉은 도포에 검은 사모를 쓴 자는 위정공(魏鄭公:魏徵)이라 한다.
생각컨대 송민구(宋敏求)의 <春明退潮錄>에, "도가(道家)에서 상소하여 천문(天門)의 수위 금(金), 갑(甲) 두 사람을 그리는데 갈장군(葛將軍;諸葛亮)은 깃발을 들고, 주장군(周將軍;周瑜)은 절월(節鉞)을 들었다"고 했다. 지금의 문배(門排)가 곧 이 갈장군과 주장군 같은데 세속에서는 전기(傳奇)중의 당문황(唐文皇;太宗) 때의 일을 견강부회(牽强附會)했을 뿐이다.
붉은 싸리나무 두 토막을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든다. 길이는 세 치 가량. 혹 작게는 반 쪽의 콩만큼 만들기도 한다. 이것을 던지는 것을 사희(사戱;윷놀이)라 한다. 네 개가 모두 엎어진 것을 모, 네 개가 모두 잦혀진 것을 윷, 세 개가 엎어지고 하나가 잦혀진 것을 도, 두 개가 엎어지고 두 개가 잦혀진 것을 개, 하나가 엎어지고 세 개가 잦혀진 것을 걸이라 한다. 그리고 말판에 29개의 점을 찍고 두 사람이 상대하여 던지는데 각각 네 필의 말을 쓴다. 도는 한 점을 가고, 개는 두 점을 가며, 걸은 세 점을 가고, 윷은 네 점을 가며, 모는 다섯 점을 간다. 말판에는 도는 길과 지름길이 있고 말에는 느린 것과 빠른 것이 있어 내기를 결정한다. 설날에 이 놀이가 가장 성하다.
생각컨대 사(윷놀이)는 <說文>에 '비(匕)'라 했다. 특히 네 나무의 뜻을 취하여 사희(사戱)라 했다. 이수광(李수光)의 <芝峯類說>에는 '탄희(탄戱)'라 하고 '탄'은 곧 '저포(樗蒲)'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희'는 '저포'의 종류이나 그렇다고 곧 '저포' 그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세속에 설날 또 윷을 던져 새 해의 길흉을 점친다. 대개 세 번을 던져 짝을 짓는데 64괘(六十四卦)로써 한다. 요사(요辭)가 있다. (64괘의 요사는 같은 카테고리 '정월의 占卜민속' 條에서 밝혔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함)
항간의 부녀들이 흰 널조각을 짚단 위에 가로로 놓고, 양쪽 끝에 갈라서서 굴러뛰기를 몇 자까지 올라간다. 그때 패물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낙을 삼는다. 이것을 초판희(超板戱;널뛰기)라 한다.
생각컨대 주황(周煌)의 <琉球國記略>에, "그곳 부녀들이 널빤지 위에서 춤을 추는데 이를 판무(板舞)라 한다"고 했다. 이것과 비슷하다. 이조 초에 유구가 입조(入朝)할 때 도리어 어떤 이가 그것을 사모해서 본받은 것인지?
중들이 북을 지고 시가로 들어와 치는 것을 법고(法敲)라고 한다. 혹 모연문(募緣文)을 펴놓고 방울을 울리면서 염불을 하기도 하고, 혹 쌀자루를 지고 문 앞에 와서 재 올리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또 떡 한 개로 속세의 떡 두 개와 바꾸기도 한다. 속담에 중의 떡을 얻어 어린이에게 먹이면 마마를 곱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상감(正朝)께서 중들을 금하여 성문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므로 성밖에서만 아직도 이런 풍습이 남아 있다.
남녀가 일년 간 머리를 빗을 때 납지(臘紙)로 만든 주머니에다 빠진 머리카락을 넣어 빗상자 속에다 묵혀 둔다. 그랬다가 반드시 이날 황혼에 문 앞에서 태운다.
생각컨대 손사막(孫思邈)의 <千金方>에, "정월 인일(寅日)에 백발을 태우면 길하다"고 했다. 설날 머리카락 태우는 일이 이에서 비롯되었다.
귀신 이름에 야광(夜光)이라는 것이 있다. 밤에 사람의 집에 들어와 신을 훔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신 주인은 불길하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은 이를 두려워하여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일찍 잔다. 그리고 마루 벽 위에다 체를 걸어둔다. 그러면 야광이가 와서 그 구멍을 세다가 다 못 세고 닭이 울면 도망간다고 한다. 혹 어떤 이는 "야광은 구귀(구鬼)다. 구광(구光)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구(야위다)'와 '야(夜)'의 우리나라 말이 비슷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생각컨대 이 설(說)은 틀렸다. 야광은 약왕(藥王)의 음이 와전된 것이다. 약왕의 형상이 추하므로 아이들이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어린이를 일찍 재우고자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 해일(亥日), 자일(子日), 사일(巳日)
정월 첫 亥日을 돼지날, 첫 子日을 쥐날이라 한다.
이조의 고사(故事)에, 궁중에서 나이가 젊고 지위가 낮은 환관(宦官) 수백 명이 횃불을 이어 땅에 끌면서 "돼지 주둥이 지진다" 하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곡식의 씨를 태워 주머니에 넣고 그것을 재신(宰臣)과 근시(近侍) 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는 풍년 들기를 비는 뜻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주머니를 하사하는 일은 이윽고 폐지했다가 상감(正朝)이 등극하자 다시 부활했다. 주머니는 비단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해낭(亥囊)은 둥글고 자낭(子囊)은 길다.
쥐날에는 시골에서는 콩을 볶으면서 '쥐 주둥이 태운다, 쥐 주둥이 태운다!'고 주문(呪文)을 왼다.
돼지날에 팥가루로 세수를 하면 검은 것이 희어진다. 돼지의 빛깔이 검으므로 반대로 그 뜻을 취한 것이다.
뱀날에는 이발을 하지 않는다. 뱀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 인일(人日)
동인승(銅人勝)을 각신(閣臣)에게 나누어 준다. 그것은 작고 둥근 거울로 자루가 달렸는데 신선을 새겼다.
이날과 삼월 삼짇날, 칠월 칠석, 구월 구일에 과거를 베풀어 선비를 뽑는다. 이것을 절제(節製)라 한다.
# 입춘(立春)
경기도의 산간지방 육읍(六邑)에서 움파[蔥芽], 산개(山芥;멧갓), 승금초를 진상한다. 산개는 이른 봄 눈이 녹을 때 산 속에 스스로 자라는 개자(芥子)다. 더운 물에 데쳐 초장에 무치면 맛이 매우 맵다. 그래서 육식(肉食)의 뒷맛으로 좋다.
승검초는 움에서 기른 당귀(當歸)의 싹이다. 깨끗하기가 은비녀 같은데 그 다리에 꿀을 끼워 먹으면 매우 좋다.
승정원(承政院)에서는 초계문신(抄啓文臣)과 시종신(侍從臣)에게 궁전의 춘첩자(春帖子)를 제술(製述)케 하는데 패(牌)로써 제학(提學)을 불러 운(韻)을 내고 채점하도록 한다. 설날의 연상시(延祥詩) 및 단오첩(端午帖)에도 모두 이 예(例)를 이용했다.
항간 시정(巷間市井)에서 일반적으로 대련(對聯)을 사용했다.
壽如山 富如海
去千災 來百福
立春大吉 建陽多慶
國泰民安 家給人足
堯之日月 舜之乾坤
愛君喜道泰 憂國願年豊
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
國有風雲慶 家無桂玉愁
鳳鳴南山月 麟遊北岳風
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
柳色黃金嫩 梨花白雪香
北堂萱草綠 南極壽星明
天上三陽近 人間五福來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鷄呼新歲德 犬吠舊年災
門迎春夏秋冬福 戶納東西南北財
六鰲拜獻南山壽 九龍載輸四海珍
문설주에 붙이는 단첩(單帖)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春到門前增富貴
春光先到吉人家
上有好鳥相和鳴
一春和氣滿門楣
一振高名滿帝都
사대부들은 대개가 새로 지어 쓰거나 혹은 고인의 좋은 귀절의 말을 골라 쓰기도 한다. (京都雜志에서)
京都雜志: <경도잡지>는 조선 정조때 실학자 유득공(柳得恭,1749~?)이 지은 풍속지인데 두 권으로 나누어 서울의 문물제도와 풍속 행사를 기술하고 있다. 제1권에는 우리나라의 의복, 음식, 주택, 시화 등 제반 문물제도를 19 항목으로 분류 약술(略述)하고, 제2권에서는 서울의 세시 풍속을 19 항목으로 분류 약술하고 있는데, 특히 제2권은 <東國歲時記>의 모태가 되고 있다. 이 책이 완성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내용으로 보아 정조(正朝) 때 이루어진 것이다. <경도잡지>가 정조 때, <열양세시기>는 순조 때, <동국세시기>는 헌종 때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이 <열양세시기>가 가장 앞선 풍속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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