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초(Japaneses banana)
'미인'이라는 꽃말을 가진 파초는 꽃말이 말해 주듯이 그 모양이 시원스럽고 인상적이다. 남국의 정서를 지닌 식물로서, 넓고 시원스런 잎에는 가련한 꿈이 어린 듯해 더욱 인상깊다.
파초라 하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석양을 받으며 서 있는 식물, 마치 열대 원주민의 야성적인 일면을 보는 듯한 식물로 머리에 떠올린다. 야자수와도 같이 낭만이 서린 식물을......
파초는 흔히 바나나로 오인하기가 쉽다. 어쩌다 파초의 꽃이 피게 되면 모르는 사람들은 바나나가 달렸다고 잘못 판단한다. 그러나 바나나와 파초는 꽃빛부터가 틀린다. 파초가 황갈색인 반면에 바나나는 자홍색이다. 뿐만아니라 바나나는 섭씨 25도는 유지되어만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파초는 여간해서 꽃을 피우지 않으며 꽃이 핀다 해도 새가 번식을 도와줘야만 하므로 새가 없는 곳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파초는 바나나의 사촌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온실이 아니면 남부지방이나 제주도와 같은 아열대성 기후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파초에 얽힌 전설 중에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도 있다.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따 먹은 열매는 사과가 아니고 바나나라는 것이다. 미루어 생각해보자면, 옷을 벗고 살았던 에덴 동산은 언제나 열대기온이었을 터이고 그러므로 추운 곳에서나 재배되는 사과일 확률은 극히 적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가깝게 접촉하는 과일 즉 바나나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정나라의 한 나뭇군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사슴을 잡아 파초 잎으로 덮어두고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감추어 둔 사슴이 생각나 산으로 찾아갔지만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한갖 꿈으로 돌려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중국고사에서 초록몽(蕉鹿夢)이라 하는데, 세상일이 허무하며 꿈과같이 덧없을 때 쓰는 말이다. 파초 잎이 사슴 한 마리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는 데서 비롯된 고사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중국에 오학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는 졸음이 와 몽롱한 중에 한 미녀를 만났다.
"실례지만 이름이 뭐요?"
오학사는 그녀의 미모에 넋을 잃고 물었다.
"초(蕉)라고 합니다".
미녀는 이렇게 대답하고 사라지려 했다. 오학사는 엉겁결에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아 끌었는데 그만 한 쪽이 찢어지며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신을 차린 오학사는 자신이 동헌에 앉아 꿈을 꾼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손에 쥐어있는 것은 미녀의 치맛자락이 아닌 파초 잎이었다. 오학사는 뜰에 내려와 화단을 살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파초의 한 잎이 찢어져 있었고 그의 손에 쥐어진 파초 잎을 맞추어 보니 놀랍게도 꼭 들어맞았다. 때문에 꿈속의 미녀는 파초의 영(靈)이었다는 것이다. 제법 그럴싸한 파초의 꽃전설이다.
파초는 꽃이 그리 쉽사리 피지 않는다고 해서 우담화(優曇華, udumbara)라고도 한다. 우담화는 인도의 상상상(想像上)의 나무인데 3천 년에 한 번씩 꽃이 핀다고 한다.
파초의 꽃말은 '미인'이다.
# 부용(芙蓉, Cotton rose)
원래 연꽃의 다른 이름이 부용인데 이 꽃의 맑고 아름다운 모습이 언제부터인지 부용이라는 이름을 빼앗고 말았다.
그러나 둘 모두 청순한 꽃으로 꼽히므로 연꽃을 수부용(水芙蓉), 나무인 이 꽃은 목부용(木芙蓉)이라고 하여 구별하기도 한다.
부용에 얽힌 이야기 중에는 성천(成川) 기생 부용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화류계의 인물이기는 하나 그 용모나 성품의 고아함이나 일세를 압도하던 시가를 보더라도 황진이 이후 명기(名妓)를 꼽는다면 단연 부용일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기적(妓籍)에 있으나 원래는 시가 전문이었으며 문학을 아끼고 사랑했다. 뿐만아니라 함부로 몸을 더럽히지 않았으므로 마치 부용이 진흙에서도 더럽히지 않고 꽃피는 것과 흡사하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부용은 그의 숙부가 본래 문장에 뛰어나 어린 시절부터 글을 배웠다.
문장에 대한 재능이 특출해 부용은 나이 16세에 성천군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단다. 그런가하면 김이양의 문학에 심취하여 나이 차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첩이 되었다. 매일 시가를 읊다시피 하며 15년간을 동거하다가 김이양이 죽은 후 수절하다가 자결했다. 죽은 후에도 그녀의 유언에 의해 천안 광덕리에 있는 김이양의 묘 앞에 매장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닉칼한 것은 생전에 부용은 부용꽃에 대한 시를 지은 일이 있었다. 부용이 부용을 읊은 것이다.
"부용이 피었는가 못 가득 벌겋고야
사람들 이르기를 나보다도 곱다건만
언덕 위에 내 지날 새 어쩌타 꽃 안 보나"
부용의 아름다움은 낮에도 좋지만 달밤에 보는 부용의 아름다움은 일품이다.
무궁화 꽃을 닮은 이 꽃은 덧없이 아름답기 때문일까? 수명이 짧아 일일화(一日花)의 속절없음이 조금은 아쉽다. 그 대신 줄기 끝에 꽃망울이 모여 있어 매일 한두 송이씩은 계속 꽃피므로 늦서리가 올 때까지 꽃을 즐길 수가 있다.
중국에서는 한 때 부용이 사랑을 독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 촉나라의 맹준왕(孟俊王)은 부용을 어찌나 좋아했든지 궁궐안에 다른 꽃을 다 치우게 하고 부용만 심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거성(居城)의 성도 안에 목부용만 심게 했다. 그 길이가 무려 16km가 넘었다 하니 목부용의 이름도 가히 짐작할 만하다.
부용의 꽃말은 '섬세한 미모', 그야말로 꽃의 외모와 어울리는 것이다.
'꽃말 꽃의전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추리/센토레아 (0) | 2015.06.09 |
---|---|
제비붓꽃 (0) | 2015.01.13 |
선인장/시프리페듐/아킬레아 (0) | 2014.03.11 |
백일홍/해당화/프리지아 (0) | 2013.10.08 |
금잔화/다알리아/엉겅퀴 (0) | 2013.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