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심리학

초자아의 공격-수치심/수치심이 일을 방해한다(2)

如岡園 2015. 2. 12. 20:50

          수치심이 일을 방해한다(2)

 

     자기의식 과잉은 수치에 민감

 수치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의식 과잉'이라고 하는 말이 잘 쓰여진다.

 모르는 회사를 방문했을 경우 모두가 자기를 노려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거나, 전차 안에 앉아 있으면 앞의 사람이 전부 자기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앉아 있을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은 자기에 대하여 너무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자기의식 과잉)

 좀 냉철하게 관찰하면 모두가 자기를 주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그렇게 고쳐 생각해 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의식 과잉'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기를 잘 나타내 보이거나 잘 보여지고 싶은 욕구가 대단히 강한 데서 생긴다. 결국 이러한 사람은 초자아가 강하다.

 그런데 현실의 자아가 이 높은 초자아의 욕구에 응해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초자아의 요구가 항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초자아의 욕구는 충족되지 못하면 그만큼 더 동경은 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를 잘 나타내 보이고 싶고, 잘 보여지고 싶은 의욕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자아는 그와같이 높은 초자아의 요구에 응답할 수가 없어서 본인은 항상 주변 없는 자기를 보고 수치심으로 가득 찬다.

 이러한 자기의식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특히 잘 보이려는 욕구를 버지지 않으면 안된다. 즉 초자아의  요구 수준을 자아가 실현 가능한 선까지 끌어내려야 한다.

 그렇지만 초자아의 요구 수준을 끌어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까닭은 초자아의 높이는 훨씬 옛날에 형성된 것이며 지금에 와서는 자기의 감정 속에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단계에 있을 때는 수정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들이 어릴 때 배운 역사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 새로운 역사를 읽고 그 잘못을 정정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기의 몸에 붙은 습관이나 사고 방식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드라도 그렇게 간단히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비록 시간이 걸려도 끈기있게 그 잘못을 계속 수정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끊임없이 수정하노라면 이번에는 차츰 새로운 사고방식이 생기게 된다.

 

     무리를 하지 말 것

 연설이 서투른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대중 앞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할 때 항상 얼굴이 빨갛게 되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잘 할 수가 없다.

 어째서 이와같이 항상 연설에 실패하는가 하는 것을 연구해 보니, 그는 대연설가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그의 꿈은 옛날의 대연설가처럼 거침없이 연설하고 대중을 매혹하는 데 있었다. 어쨌든 그의 이상은 터무니없이 컸었다.

 그리하여 그가 연설하려고 할 때는 고금(古今)의 대인물이 한 것처럼 명연설을 하려고 무리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긴장해버리기 때문에 도리어 혀가 굳어지고 얼굴이 화끈거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의 실패의 원인이 너무나 초자아를 높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그는 멋지게 위엄있게 명연설을 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자기의 실력에 알맞는 연설을 하겠다는 식으로 될 수 있는대로 마음을 편하게 가질려고 노력했다. (요구 수준을 낮춤)

 그랬더니 얼굴도 달아오르지 않고, 혀도 굳어지지 않아 훌륭하게 연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연설한 후 타인의 비평을 듣고, 나쁜 데를 하나하나 노력해서 고쳐갔다. 그 결과 그의 말솜씨는 대중을 매혹할 정도로 개선되어 갔고 그 후로부터는 훌륭한 연설을 할 수 있었다. 

 

     일이냐 체면이냐

 자기 의식의 과잉, 곧 자의식의 과잉은 감수성이 강한 사람에게 많다. 그 이유는 감수성이 강한 사람은 '이상아(理想我)'가 강하게 되고 또 사소한 외부의 자극에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상대가 자기를 노려보는 것은 자기를 없신여겨서 그러는 것이 아닌가라든가, 상사(上司)가 조금 성낸 것이 몸에 사무쳐 항상 마음에 꺼려하는 것 따위는 감수성이 강한 사람에게 많다. 

 이러한 사람은 수치심도 남보다 곱절이나 더 강하기 때문에 항상 부끄러운 것을 피하는 데만 마음을 쓰고 있다.

 그래서 세일즈맨이 되어도 될 수 있는대로 부끄러움을 안 당할려고 마음을 쓰기 때문에 긴요한 일에는 등한히 하게 된다. 일보다도 체면 제일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자기의 체면보다 일을 잘 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일을 잘 해나가기 위해서는 자기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도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만큼 자기의 일을 소중히 알고 일에 열중한다.

 어떠한 일에도 이와같이 무아의 경지에 다다를 때 가장 능률이 오른다. 일을 위해서 자기의 욕망과 체면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훌륭하게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은 쓸데없는 수치심에 사로잡혀 일을 게을리 할 여유도 없다.

 우리들이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샐러리맨으로서 일을 해나가고 있을 때는 일이냐 자기냐 하는 이율배반(二律背反)에 항상 서게 된다.

 이런 경우 일보다 자기를 돌보는 사람은 점점 경쟁터에서 낙오되고, 거꾸로 자기보다 일을 언제나 앞세우는 사람은 점점 타인을 앞서서 성공자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영업이나 섭외의 일이라는 것은 자기의 체면에 매어있지 못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종류의 일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적인 것은 그다지 소용되지 않으며 될 수 있는대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고 사람 마음의 동향을 잘 살펴 상품을 팔고 절충해 나가야 한다.

 아주 어리석기 이를 데 없는 사실을 늘어놓아야 할 때도 있다. 당초부터 영업의 일을 지망한 사람은 이러한 것도 각오하고 있으므로 그다지 저항을 느끼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이를테면 신문 기자로부터 광고부에 돌려지거나, 경리부나 총무부의 일에서 여업부로 돌려진 사람은 어쩐지 어리석은 생각만 들어 일을 해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경리나 총무가 나는 본직이다. 이런 영업의 일은 바보같아서 할 생각이 내키지 않는다고 하여 열중해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고 일은 제이 제삼의 것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영업의 일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것에 열중하지 않아 진보가 없다. 만약에 처음에는 싫었어도 그 기분을 억누르고 영업의 일에 열중하면 인심의 묘한 소재를 파악할 수 있고 또한 기업 경영의 구체적인 면을 공부할 수 있다.

 이러한 공부는 장차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자기의 체면보다 일을 중히 생각하는 사람은 이것을 마스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위해서 체면을 버리는 것이 샐러리맨에게는 가장 필요한 생활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