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란 무엇인가
1) 환경에 적응되지 않는 것이 진화한다
생물이 진화한 자취를 더듬어 보면 대단히 흥미 있는 사실에 부닥친다. 옛날에 지구 전 표면을 덮고 번식하던 생물(중세대의 파충류 따위)도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차례차례로 멸망하고 지금은 근근이 화석의 모습으로 지난날의 번성하던 때를 가르쳐 줄 따름이다.
공룡 같은 생물이 옛날에 번영한 까닭은 당시의 환경에 잘 적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의 조상이라고 볼 수 있는 포유류는(哺乳類) 거의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당시에는 미약했다.
포유류는 그때의 환경에 적응되지 않은 지극히 불안정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언뜻 보아 미약한 듯한 인간의 조상은 환경에 적응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생존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까지 발전할 수가 있었다.
이와 반대로 중세대의 환경에 완전히 적응되어 융성했던 생물은 한 환경에 너무나 잘 적응되었기 때문에 도리어 진보가 저지되어 기후 풍토가 변한 다음 세대에는 적응할 수가 없어 완전히 도태되어 버리고 말았다.
진화론을 들추어 보면 도처에서 이러한 사실에 부닥친다. 환경에 너무나 잘 적응하는 동물은 진보가 저지되고 어느 시대에도 잘 적응될 수 없었던 인간의 계통만이 끊임없이 진화한 것이다.
전캄브리아기의 갯지렁이류는 아마 현재 해변에서 볼 수 있는 갯지렁이와 별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은 이 갯지렁이류가 참으로 환경에 질 적응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환경 자체도 거의 변화하지 않았으므로 이 벌레는 몇 억년 동안을 별다른 진화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이와같이 진화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생물에만 일어난다. 그것은 인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은 불안을 느끼며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하는 바람에 점점 진보한다.
그렇지만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생활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 않으므로 더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환경에 불안을 가진다는 것이 인간을 진보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2) 불안을 회피하려고들 한다
불안은 인간을 진보시키는 데 도움이 되므로 항상 무엇인가 불안을 품는 것이 오히려 인간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가 불안을 두려워하고 꺼려한다.
불안 없는 생활이란 안정된 생활을 말한다.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위험을 될 수 있는대로 피해야 한다.
세일즈맨이라도 요령 있는 사람은 불안을 피할 수 있는 일의 방법을 알고 있다. 세일즈맨은 대개 매달의 목표액을 지시받는다. 만약 목표액에 도달하지 못하면 윗사람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매달 어떻게 하여 그 목표액을 달성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액을 초과한 달은 그것을 전부 그 달에 보고하지 않고 일부를 다음 달에 돌려서 다음 달의 일을 수월케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조정해 나가면 목표액을 아주 초과하는 달도 없는 대신에 목표액에 미달되는 달도 적어서 불안 없는 기분으로 다달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백 사람 가운데 아흔 아홉 사람은 불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만약 그렇지 않고 불안을 스스로 받아들이고자 결심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사람은 남보다 배로 노력하게 되므로 오랜 동안에는 특출한 인물이 되기 마련인 것이다.
3) 불안이 진보를 촉진시킨다
적극적으로 생활 속에 불안을 도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여태까지의 안정된 생활에서 지극히 불안정한 생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것은 찬바람 부는 데서 냉수를 끼얹는다든지, 한겨울에 목욕탕물 바깥으로 나온다든지 할 때 느끼는, 오싹해지고 불안스럽고 불쾌한 그런 기분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열 살이나 열 다섯 살 또래의 소년들이 한겨울에 냉수마찰을 태연스럽게 하는 것처럼, 시초에는 불안스럽고 괴로운 일이라도 단련만 하면 할 수 있게 된다. 불안스러운 생활도 익숙해지면 오히려 자극이 있어서 생의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이러한 긴장된 생활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매일 불안한 환경 속에 있으면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불안을 극복하고자 무진 노력을 한다. 이러한 생활은 이전의 생활의 반복이 아니고 항상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창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생활인 것이다.
노력에 의하여 여태껏 불안했던 환경을 극복할 수 있게 되면 이번에는 수월케 살아갈 수가 있다. 그래서 더 까다로운 일을 맡아서 자기를 새로운 불안과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것이 달성되면 또다시 더 까다로운 일에 착수한다. 이러한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항상 새로운 것이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능력의 한계에 바싹 맞닥드린 생활(일)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끊임없이 능력을 발달시켜 갈 수가 있다. 이러한 사람은 매일 안정되고 수월한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인간과는 오랜 동안에 크게 차이가 생기고 만다. 성공한 사람이란 모두 이와같이 자진해서 불안을 받아들여 그것을 극복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 감수성이 강하면 불안을 느끼기 쉽다
사람에는 사회 생활에 잘 적응하는 타입과 잘 적응하지 못하는 타입이 있다. 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타입의 사람이 환경에서 불안을 더 많이 느낄 수가 있다.
소위 신경질적인 사람이란 이러한 타입에 속한다. 신경질적인 사람은 감수성이 강한 타입이다. 감수성이 강한 사람은 감각이 예민하므로 외계의 자극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때문에 사소한 자극이라도 영향력이 크다.
자극의 영향력이 크면 그 인간의 감정의 균형은 깨어져 불안을 느끼게 된다.
감수성이 강한 사람은 완전욕(完全欲)이 강하다.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잘 안되면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 또한 조그마한 실패에도 안절부절못한다. 결백하며 양심적이고 초자아가 대단히 높다.
이 때문에 마음이 안정할 때가 거의 없다. 항상 실패하지 않을까 마음졸이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쓰고, 자기가 한 일을 몹씨 뉘우친다.
외계의 자극은 항상 민감하게 느껴지고 정신을 불안케 하며,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가지 수단을 생각한다. 이리하여 감수성이 강한 사람은 불가피하게 생활에 항상 노력을 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불안스럽고 안달하는 긴장감에 견디어 내지를 못한다. 그래서 애써 노력을 하드라도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마음은 갈등 속에 갈팡질팡한다.
윗사람으로부터 일을 좀더 잘하라는 꾸중을 들으면 왜 꾸중을 받았을까, 자기는 미움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번 승급에는 가망이 없을는지 모른다, 따위로 부질없는 일에만 신경을 써서 마음의 에네르기를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또 조금이라도 일에 실패하면 아주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기는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해 본들 소용없는 것이 아닐까. 친구들은 모두 다 잘하는 듯하는데 나 혼자만이 왜 이렇게 서투를까 하고 남보다 더한층 열등감에 사로잡혀 일에 정력을 기울이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마음에 생긴 불안이라는 것은 현실을 잘 타개해 나가도록 하는 데 마음을 쓰게 하지 않고 도리어 불안 자체에 마음을 쓰게 하므로 아주 일을 망쳐버리는 사람이 감수성이 강한 타입 가운데는 대단히 많다.
그래서 감수성이 강한 사람은 불안이라는 것은, 잘 이용만 하면 참으로 유익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왜 자기는 불안을 느끼는가 하는 것을 잘 검토해서 불안의 원인을 제거해 나가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공을 위한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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