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인상경(文人相輕)
문필가는 제각기 자기가 제일이라고 뽐내며 다른 문필가를 얕보는 기질이 있다는 말이다.
명제(明帝)가 반고(班固)와 부의(傅毅) 두 선비에게 분부하여 여러 서적을 비교 검토 수정토록 하였는데 두 사람의 사이가 안좋았던 모양이다.
무선(文選. 6세기)에 전해진 바를 보면,
"문인은 서로 상대방을 얕본다 하거니와 그런 풍조는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반고와 부의의 사이가 그러하다. 두 사람의 실력은 서로 백중(伯仲)했음에도 불구하고 고(固)는 의(毅)를 대단치 않다".
고 하였다.
# 두주불사(斗酒不辭)
말술도 사양하지 않고 마신다는 말이다.
진(秦)나라의 말엽, 유방이 진나라의 서울 함양을 이미 함락했다고 듣자 항우는 크게 노하여 유방을 무찌를 작정이었다. 그 낌새를 안 유방은 두려워하여 몸소 항우의 진중을 찾아가 해명하였다. 이로써 항우의 의혹은 풀렸으나 항우의 모신(謀臣) 범중이 이 기회에 유방을 죽일 생각으로 칼춤을 베풀며 유방의 목숨을 노리는 참이었다.
한편, 유방의 부하인 번증이 유방의 위급함을 듣고 달려와 왼손에 든 방패로 위병을 쓰러뜨리고 오른손의 칼로 막을 걷어 올리며 뛰어들어 항우를 노려보았다. 항우는 이 난데없는 일에 놀라,
"웬 사람인고?"
"유방의 부하 번증이란 자올시다."
하고 곁에서 장량이 일러 주었다.
"오, 장사로구나. 술을 대접하렷다."
내다 준 한 말들이 술잔을 번증은 선 채로 단숨에 들이켰다.
"안주가 있어야지. 돼지고기 어깨살을 주렴!"
번증은 커다란 날고기를 방패로 받아 칼로 썰어가며 먹었다. 항우도 다소 질리는 기미였다.
"대단한 장사로군. 한잔 더 주랴?"
"죽음조차 사앙치 않는 놈이거늘 어찌 말술을 사앙하겠습니까? 다만 한마디 더 여쭙고자 하는 바는 저의 나으리께선 함양에 입성은 하셨으나 차지한 물건은 없으며, 오로지 장군이 오시기를 기다시셨던 것이올시다. 그런데 장군께선 소인배의 말을 믿으시어 큰 공이 있는 나으리를 해치려 하시다니 망한 진나라의 흉내를 내는 것으로서 결코 장군에게 이롭지는 않습니다."
유방은 변소에 가는 척하고 자리를 떠 번증과 함께 황급히 사라졌다. 이리하여 '斗酒不辭'란 말이 생겨났다.
# 낙양지가(洛陽紙價)
아직 인쇄술이 생겨나기 전에는 사본(寫本)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 당시엔 종이도 귀중품이었기에 명작을 서로 베끼는 바람에 서울의 종이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진(晉)나라 때 제(齊)나라에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추하고 말씨도 더듬거렸으나 붓을 들면 문장의 장려함이 비길 데 없었다.
그는 사람 상종도 끊고 창작에 몰두하여 1년 걸려서 제도부(齊都賦)를 써내었다. 그러자 그는 삼도부(三都賦)를 지어낼 소망이었는데 삼도란 촉(蜀)의 서울 성도(成都)와 오(吳)의 서울 건업(建業)과 위(魏)의 서울 업(업)이다.
그러자 용케도 집이 서울인 낙양(洛陽)으로 이사하게 되어 십년을 걸려서 '삼도부'를 완성하였다.
처음에는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윽고 유명한 시인 장화(張華)가 그 구상의 웅대함과 또한 그 환상의 화려함을 탄상하면서부터 삼도부는 대번에 유명해졌다.
그리하여 고관이며 귀족들이 서로 다투어서 이 삼도부를 사본하는 바람에 낙양의 종이값이 비싸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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