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時風俗

개천절/단군기원/단군신화/단군조선/단군고기

如岡園 2016. 10. 7. 17:05

          # 개천절(開天節)

 한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 10월 3일. B.C. 2333년 단군이 왕검성에 도읍하고 국명을 조선(朝鮮)이라 명명하였다는 날이다. 대한민국 건국 후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여 전국민이 이 날을 기념하며 대종교(大倧敎)에서는 큰 제를 지낸다.


          # 단군기원(檀君紀元)

 환국(桓國)의 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즉위년을 기원으로 한 연호(年號). 원년(元年)은 중국 요(堯)의 즉위 50년(B.C. 2333년)에 해당한다. 고려 말엽 백문보(白文寶)가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조선시대의 말기에 대종교(大倧敎)에서 사용하였다. 그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법령으로 공포해서 모든 공문서에 단기(檀紀)를 사용해 왔으나, 5.16 군사정부에 의하여 1962년 1월 1일부터 이를 폐기하고 서력기원(西曆紀元)을 쓰게 하였다.


          # 단군신화(檀君神話)

 우리나라 시조의 설화. 단군신화는 <삼국유사> 고구려 조, <세종실록> 지리지, 이승휴의 <제왕운기>, 권람의 <응제시주> 등에도 보인다. <삼국유사> 기이편 고조선 조에 실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항상 뜻을 인간세상에 두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 보내서 세상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데리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와서 이 곳을 신시(神市)라 이르니, 바로 이 분이 환웅천왕(桓雄天王)이란 어른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 때에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 속에 살며 항상 환웅에게 빌되, '원컨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다. 한 번은 신이 신령스러운 쑥 한 자루와 마늘 스무 톨을 주고 말하되,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사람이 되리라.'고 하였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기 3 칠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삼가지 못하여 사람이 못되었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해 주는 이가 없으므로 또 신단(神壇) 아래서 축원하기를 '아이를 갖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환웅이 이에 잠시 변하여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니 바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왕검이 당고(唐高; 堯)의 즉위 후 50년인 경인(庚寅; 당고의 즉위 원년은 戊辰인 즉,  50년은 丁巳요 庚寅이 아니다. 아마 틀린 듯하다)에 평양성에 도읍하였다. 국호를 조선이라 일컫고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阿斯達)에 옮기었는데 그곳을 궁홀산(弓<方'으로도 쓴다>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하였다. 단군은 일천 오백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주(周)의 호왕(虎王) 즉위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니 나이가 1908세이었다."

 이 신화의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의 논의가 구구하다. 고조선의 어떤 부족의 시조설화이었던 것이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특히 고려시대에 이르러 민족적인 통일 과업이 추진됨에 따라 민족의 공동 조상으로 등장하여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시조로 숭상된다는 설이 일반론으로 되어 있다. 고려에서 단군을 민족공동의 시조로 내세워 이를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고종 때의 몽고와의 싸움, 그 이후의 몽고의 가혹한 지배를 통해서 저절로 우러난 적개심은 우리 민족이 몽고족보다 우수한 천손족(天孫族)이며 따라서 선민(選民)이라는 자부심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려 말기에 이르러서는 단군이 도읍했다는 평양을 신성한 고장으로 보게 되었다. 조선에 들어와서 세종 때에 평양에 사당을 지어 단군과 고구려 시조 동명왕(東明王)을 함께 모시니 이로부터는 명실상부한 국조(國祖)가 되었다. 구월산(九月山)에는 삼성사(三聖祠;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심)가 있고, 강동(江東)에는 단군의 무덤이 있다는 주장까지 등장하였다. 조선 말기에서 일제시대에 걸쳐 외세의 침략으로 신음하면서 민족의식이 고조됨에 따라 단군은 한걸음 나아가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화하여 대종교(大倧敎), 단군교(檀君敎)가 생기고, <단경(檀經)>,<단전(檀典)>등 경전이 나오는가 하면 개천절을 설정하여 기념하였다. 개천절은 대종교에서 시작한 것으로 해방 후에는 정식으로 국경일로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 단군조선(檀君朝鮮)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그 개국 기원에 대해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 고조선 조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개국한 때는 당고(唐高; 堯)와 한 때라 하였다. 또 같은 책인 <古記>에는 당고가 즉위한지 50년인 경인(庚寅; 사실은 그에 해당하는 해는 丁巳年임)이라 하였다. 그러나 최근까지 우리가 쓰던 단기(檀紀)의 기원은 <東國通鑑>에 의하여 B.C. 2333년(당고 무진년에 해당)으로 추정하고 있다.


          # 단군고기(檀君古記)

 단군에 관하여 기록한 책. 조선시대의 <세종실록> 지리지 평양 조에 <단군고기>라는 책명이 인용되어 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삼국유사 기이편에 단군신화를 기술하면서 <古記>를 인용하였는데, 같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평양을 기술하면서 <단군고기>를 인용하여 단군의 도읍지(都邑地)임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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