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如岡園 2017. 1. 17. 10:59

  '空手來 空手去'라 했으니 어차피 버리고 떠날 인생길, 황혼길에 접어들면 버려가면서 살아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도 인생이다.

 우리가 가진 것 중 80퍼센트를 버려도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간다.

 모든 것을 중요하다고 여겨서, 어떤 것도 버리지 못하는 정신현상, 이것을 저장강박증(貯藏强拍症)이라고 한다던가. 의학적 지식이 발달하고 수명이 길어지다가 보니 별별 일도 병으로 자리매김 되어 이러쿵저러쿵하는 세상이다.

 이름마저 거창한 컴플시브허딩신드롬(Compulsive hoarding syndrome) - 貯藏强迫症.

 물건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 지난날의 좋고 나쁜 기억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경우들, 이런 마음들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담아두고 살아간다면 문제가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물자가 부족하고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면 어느 정도 이 저장강박증 증세 같은 수집 보존벽(保存癖)에 싸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습관이나 절약취미로 수집을 하고 보존을 하는 것은 이 저장강박증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습성에 있어서는 매한가지다.

 

 사람이 오래 살아 일생(一生)이 누적되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모아진 것이 많게 마련이다. 이 중에서 정신적인 것은 악몽이 되는 것도 있고 아름다운 추억거리도 있을 것이며, 물질적인 것일지라도 손때가 묻고 사연이 있어 정신적 생명을 가지고 나를 떠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추어진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것과 같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아무튼 사람은 늙으면 추억을 되새기고 지난 것들을 어루만지고 산다. 그리하여 지난날 누적된 삶의 찌꺼기를 버리지 못하고 산다.

 그렇지만 모아진 것이 너무 많아지고 쓸데없는 것이 되면 그것이 오히려 짐이 되어 급기야는 버려야 할 일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이 버려야 할 것을 가려내는 일에 갈등이 따른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것을 두고 저것을 버려자니 그것이 아깝고 저것을 두고 이것을 버리자니 사연이 있는 물건이라 버릴 수가 없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라면 선택의 여지마저 없어져 자칫 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마음의 상처가 된 해묵은 피해의식이나, 몹쓸짓을 해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고 평생을 죄의식에 시달려 온 그런 생각들, 그런 것은 마땅히 모두 지워 없애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떠받치고 있었던 것, 소망 사랑 신념 같은 영혼의 소리, 애지중지하면서 곁에 두고 있는 사물들, 그런 것에는 그 나름으로 정신적 생명이 딸려 있어 버리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일거리가 없어지고 미래가 사그라져 가는 노년의 인생이 지금까지 가지고 왔던 것을 버려야 한다면 무엇에 재미를 붙이고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타고 다니던 승용차를 포기했을 때 느끼는 허탈감이 유별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이동수단이기 이전에 하나의 분신이었음을 입증한다. 

 절약으로써나 취미로써가 아니었더라도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축적된 삶의 흔적들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 난감해질 때가 있다.

 우선 모아둔 책이 그렇고, 자질구레한 생활도구, 입지도 않으면서 장롱 안에 걸려 있는 해묵은 옷가지들, 취미 삼아 모아둔 음반, 테이프, 사진첩, 영상자료, 필기구들이 급변해버린 시류(時流)에 떠밀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말았으니 그것이 문제다.

 정년을 마치고 직장을 떠나면서 그리고 노년에 접어들어 이사를 다니면서 버리고 또 버렸지만 공연히 아까운 생각이 들어 마냥 가지고 다니는 것들, 쓸모가 없어 저것은 꼭 버려야지 하면서도 버리고 후회했던 것들이 생각나 버리지 못하는 습성, 늙어가면서 나는 얼추 저장강박증환자가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간사(家間事)에 소관이 다른 부부 사이에도 마찰이 있게 마련, 한쪽은 책을 버리라고 성화고, 다른 한쪽은 오래된 집기류(什器類)를 내다버리라고 맞선다.

 취향에 따라 종류야 다르겠지만 살아오면서 필요했고, 손때가 묻고 정이 든 물건은 그 사람의 분신(分身)과도 같은 존재이니 거기에 영혼이라도 깃든 듯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꼭 찾아보아야 할 내용이 하필이면 남에게 주어버렸거나 내다버린 책 속에 있던 것이어서 애석해하던 일을 생각하면 책을 함부로 내다버린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인터넷을 두들기면 없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그 일천한 역사로는 서지(書誌)에 들어 있는 지식 모두를 저장하지는 못하지 않았는가.

 한우충동(汗牛充棟)을 들먹일 만큼 대단한 장서가(藏書家)는 아니지만 그런 학자를 부러워할 줄은 알았던 전력(前歷)에서 책을 버린다는 것은 가슴을 도려내는 것과 같았다. 

 소장품의 정리는 생시에 서두르지 말고 사후 자식들에게 미루어두는 것이 좋다는 선배 교수의 의견에 공감이 가지만, 크게 자랑할 만한 것도 없고 그것을 이어갈 아이들도 아니니 그마저 망설여진다.

 버리지 못하고 남겨진 모두가 대의(大義)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 상도(想到)하여 볼 때, 나는 자아의 욕구가 강한 에고이스트임이 명백하여 스스로가 혐오스럽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그렇다 치고, 정신적으로 지난날 잊지 못할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일을 두고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상반되는 일이다. 상처가 되어 곪아 병이 되는가 하면, 희망의 꿈으로 피어나 활력으로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저장강박증 증상을 긍정하고 옹호하는 바는 아니지만, 버리지 못하는 정신상태를 연민하고 보듬어 준다는 입장에서, 정신적인 것이건 물질적인 것이건 가지고 있는 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일에는 동의하고 싶다. 특히 노령에 있어서는 그것만이 노령의 삶을 떠받쳐주는 자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남이 탐을 내고 부러워하거나 말거나, 나에게는 짐이 되고 소용에도 없는 것이 될지라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왕이면 T.V 명품 쇼에라도 내놓아 억! 소리나는 명품 하나, 재산 분배로 후손들이 박이 터지는 유산 좀 있었으면 기를 쓰고 버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으련만 그런 능력은 없어 허탕이고, 이어받을 후계자를 잃은 소장서(所藏書)와 쓸데없는 잡동사니 물건들만 서재에 뒹굴고 있어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그런 것 말고, 그 옛날의 추억 하나, 아니 몇 개라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서 마음의 거문고 울리는 환희! 그런 아름다운 만년(晩年)이 된다면 인생은 참 살맛이 날 것이다.

 세인(世人)이 괄목(刮目)할 보물은 없지만 예전을 추억하는 눈은 밝고, 기계 같은 삶으로 하루하루를 엮어 살아온 옹졸함은 없었기에 지성의 거울로 세상을 비춰볼 수는 있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가.   

                                                                                                (2016. 12. 5. <길19호>.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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