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가용문자(可用文字)/인착초랑(認錯初郞)

如岡園 2017. 2. 7. 22:18

          가용문자(可用文字, 문자를 쓰면 수이 보지를 않는다)

  옛날에 그 아들에게 취처케 하여 보내면서 경계하여 가로되,

  "말 가운데 만일 문자를 쓰면 남들이 감히 수이 보지 못할지니, 네가 처가에 가서 혹시 자리를 권하거든 답해 가로되,

  '불한불열 호시절(不寒不熱好時節)에 하처불가 좌호(何處不可座乎)라! 춥도 덥도 않은 이리 좋은 시절에 어딘들 앉지 못하겠느뇨!' 하고, 마침 달밤을 만나거든, '월명창외 애무면(月明窓外 愛無眠)이라, 달밝은 창 밖에 사랑 때문에 잠 못 이룬다.'하고, 만일 오동나무를 보면, '가합 금재(可合琴材)라, 가히 거문고의 감이 되기에 충분하도다.' 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너를 유식하다 하리라." 한즉,

 신랑이 처가에 이르매 과연 좌석을 권하거늘, 도무지 아비의 가르침을 잊고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가로되,

 "불속불속 하처 불좌호(不速不速何處不座乎)라, 속하지 않고 속하지 않으니 어딘들 못 앉으랴!" 하였고,

 마침 오동나무를 보고는,

  "단기상하 용어작도판 호의(斷棄上下用於斫刀板好矣)라, 아래 위를 잘라 버리면 작도판으로 쓰기 알맞다." 하였고,

 밤에 달이 밝으매 창을 밀고 가로되, 

 "월명창외 애매모(月明窓外愛梅母)라, 달밝은 창밖에 매모(梅母)를 사랑하노라." 하니,

마침 처의 이름이 애매(愛梅)요, 그 처모(妻母)가 뜰에 있다가 이 망칙한 소리를 듣고 놀라 피했다.

 또한 이튿날 아침에 양치질을 하게 되었는데, 곁에 양치할 물과 흰 소금을 두었거늘, 신랑이 이것조차 처음 보는 위인이라, 그것을 한 곳에 모아 타 가지고 한꺼번에 마시니, 장모가 보고 비웃으면서 가로되,

 "이를 닦고 양치하라 했거늘, 이를 마시니 웬일인가?"

 신랑이 가로되,

 "목구녕의 때를 전부 씻었습니다." 하였다.


부묵자(副墨者) 가로되,

슬프도다. 아들을 아는 것은 그 아비 만한 자 없다더니 아비가 현우(賢愚)를 묻지 않고, 능히 그 아들을 아는 것은 대개 서로 알기는 일사일물(一事一物)이 아니라, 아비가 그 아들의 재주가 얕고 학식이 짧은 것을 알지 못하고, 마침내 족히 못남을 드러냈으니, 진실로 가히 한 번 웃을 만한지라. 장주가 <저소(袛小)>라 했음은 가히 큰 것을 품지 말라 함이요, '짧은 걸로 두레박질한 것은 가히 깊은 것을 푸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 사람의 부자를 두고 이름인가.

                                                                                                                           <破睡錄>


          인착초랑(認錯初郞, 인식착오가 된 새신랑)

 어떤 선비가 어려서부터 문장가가 될 소질이 풍부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 아내를 맞이하는 첫날밤에 그 신부가 눈썹을 낮히하여 고해 가로되,

 "문한(文翰)이 비록 여인의 숭상할 바 아니나, 저 또한 문장에 고질이 되어 마침 한 귀절을 얻음에, 그 짝을 생각치 못하니 만약 그 짝을 채운다면 오늘밤의 즐거움을 누리려니와 그렇지 못한다면 예의는 비록 이루었다 하더라도 모름지기 그 짝을 채운 뒤에 비로소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 오히려 늦지 않으리니, 또한 옳지 않으리이까?"

하니,

 선비가 물어 여인이 읊어 가로되,

   "탄면궁향 백운퇴변 생하뢰(彈綿弓響白雲堆邊生夏雷)라. 솜타는 활소리는 흰구름 높이 뜬 가에, 한여름의 우뢰소리로다." 하거늘,

 선비가 한밤내 고생고생하였으나, 마침내 그 짝을 생각치 못하여 스스로 그 마음에 부끄러워하여 가로되,

 "내가 꽤 이름 있는 훌륭한 선비로 문명이 있었더니, 이제 한 개의 아녀자에게 굴욕을 당하니 어찌 분하지 않으,리오. 혹은 내가 여러 책을 읽지 않아서 그러한가?" 하고, 동방이 이미 밝아오매 바로 가까운 곳의 산사를 찾아 널리 더듬어 책을 읽더니.

 이미 여러 해가 지나감에 마침 가을밤을 당하여 함께 배우는 여러 친구들과 더불어 구름낀 달밤에 못가에서 술마시다가 문득 그 처가 말한 글귀의 짝을 얻고, 기꺼움을 이기지 못하여 이에 여러 사람을 향하여 그 지나간 얘기를 하고, 그 얻은 바 글귀의 짝을 외어 가로되,

 "식엽잠성 녹수음중 쇄추우(食葉蠶聲綠樹陰中灑秋雨). 뽕 먹는 누에 소리는 푸른 나무그늘 속에 뿌리는 가을비로다." 하였다. 

 말을 마치매,

 그 사람으로 더불어 나이와 모양이 비슷한 자가 그 가운데 있어서 음심을 품고, 어디 탈이 나서 집에 돌아가 치료해야겠다고 말하고 이날 밤에 빨리 가 그 여인의 집 문을 두드리어 그 글귀의 짝을 말하며 이에 함께 자게 되었는데,

 여인은 비록 지각있는 사람이었으나, 수년 전의 화촉(華燭)의 밤에 이미 그 얼굴을 익히 보지 못하였고, 하물며 일이 여합부절(如合符節)할 뿐 아니라 모양은 또한 비슷하였고 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의심없다 하고 함께 하늘로 올라갈 듯한 기꺼움을 누리었더니.

 아침 해가 밝자, 신혼의 예를 치른 그 선비가 늦게야 비로소 그 집 문턱에 당도하거늘, 온 집안이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지라.

 여인이 부모를 대하여 울면서 고해 가로되,

 "예의를 저이한테 이루고 의로움을 이이한테 맺었으니, 예도 가히 꾀할 수 없고, 의 또한 가히 잊을 수 없도다. 한 가지 계획이 있으니 죽음만 같지 못하도다." 하고,

 드디어 기둥에 부딪히어 죽는지라, 그 사람인즉 비록 그 형벌에 복할지나 어찌 옥처럼 부수어지고 꽃처럼 흩어지리오.


부묵자 가로되,

슬프도다. 여인의 뜻은 자기의 문장을 자랑하여 낭군으로 하여금 경동케 하여, 그 업을 더욱 힘쓰게 함에 있었으나, 어떤 연고로 그 따위 돼먹지 않은 자가 가만히 향내를 도둑질할 생각을 내어 깊은 골방에까지 이르렀으며, 그의 죽음이 비명으로 인함이라. 아깝고 아깝도다. 만약 이 여인으로 하여금 다뭇 문장을 능사로 하지 않았던들 어찌 이러한 일이 있었으랴. 여인이 문장을 즐김은 가히 세상을 경계함이어늘, 능히 삼가 말하지 않은 것은 또한 거의 증벌받은 바이니, 시전(詩傳)에 이르되, '철부경성(哲婦傾城)'이라 하고 또한 가로되 '무이유언(無易由言)'이라 하니, 그 이를 두고 이름인저.

                                                                                                                <破睡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