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백화(冬柏花)
우리나라에는 사시 중에 오직 겨울에만 피는 꽃이 없나니, 매화가 남국 난지(暖地)에 있기는 있되 춘매(春梅)뿐이고 동매(冬梅)는 없으며 북국 한지(寒地)에는 실중(室中)에서 배양하는 분매(盆梅)가 있을 뿐으로 동계(冬季)는 백설(白雪) 청송(靑松) 외에 꽃을 볼 수 없는 무화(無花)의 시절이다.
그러나 남쪽지방에는 동백화가 있어 동계에도 능히 염려(艶麗)한 붉은 꽃이 피어 무화(無花)의 시절에 홀로 봄빛을 자랑하고 있나니 이 꽃이 동절에 피는 고로 동백화(冬柏花)란 이름이 생겼다. 그 중에는 춘절에 피는 것도 있어 춘백(春栢)이란 이름으로 불려진다.
< 匪懈堂 四十八詠>에 雪中 冬柏이 있는 바, 保閑齋 申叔舟옹은 題하여 가로되,
"藹底凝陰數己窮 一端春意暗然通
竹友梅兄應互讓 雪中花葉翠交紅"
이라 하였다.
<菁川養花錄>에는 동백화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東國之産 惟有四種 單葉紅花 雪中能開者 俗稱冬柏 單葉者 好生南方海島中 或有春花者曰春栢"
이라 하였으니 이로 보더라도 동일한 단엽이로되 그 개화의 시절이 상이함을 따라 동절에 피는 자는 동백(冬柏)이라 하고 춘절에 피는 자는 춘백(春栢)이라 함을 알 것이다. 이 양화록의 아래 다시 계속하여
'居民 取其實 搾油 以膏髮 名曰冬柏油'
라고 말하였음을 보면 동백이 꽃도 좋고 기름도 좋은 명실(名實)이 상부(相符)한 화목(花木)임을 알 것이다.
동백은 속명이요 원명(原名)은 산다(山茶)이니 山茶란 이름은 동백의 잎이 산다와 근사함에 의하여 생긴 것이라 한다. 일본에서는 椿(쓰바기)이라 하며 한토(漢土)에서는 해홍화(海紅花)라고도 칭하니 이태백(李太白)시집 주(注)에는
'海紅花 出新羅國 甚鮮'
이라고 적혀 있으며 <類書纂要>에는
'新羅國海紅 即淺山茶 而差小 自十二月開 至二月 與梅同時 一名茶梅'
라고 적혀 있는 바 유사형(劉士亨) 시에도
'小院猶寒未煖時 海紅花發晝遲遲'
라는 해홍화(海紅花)를 읊은 시가 있거니와, 이 꽃이 동절의 명화이니만큼 일찍 한토(漢土)에 이식(移植)한 바 되어 시인(詩人) 문사(文士)에게 애상(愛賞)을 받아온 사상(史上) 명화(名花)의 하나임을 알아야 하겠다.
# 난화(蘭花)
동양적 정조(情調)를 표시하는 꽃은 목단과 작약 같은 부려(富麗)한 꽃보다도 차라리 매화(梅花)나 난화(蘭花) 같은 고아(高雅)한 꽃이 될 것이다.
난(蘭)으로 말하면 그 화태(花態)가 고아할 뿐 아니라 경엽(莖葉)이 청초하고 형향(馨香)이 유원(幽遠)하며 기품이 우(優)함과 운치의 부(富)함이 초화(草花) 중에 뛰어나므로 예로부터 군자의 덕이 있다고 일컬어 문인묵객(文人墨客) 사이에 크게 애상(愛賞)되어 왔다.
세인이 흔히 난(蘭)과 지(芝)를 병칭하나 지(芝)는 선계(仙界)의 영초(靈草)로 그 실물을 목도(目睹)한 이가 드문 모양이다. 혹은 말하되, 지(芝)에 자(紫)와 백(白)의 두 종류가 있어 경(莖)의 기장이 1척이 넘는 바 석상(石上)에 생(生)하고 그 형상이 돌과 같으며 사람이 먹는고로 가을에 채취한다고 하나 잘 알 수 없는 바이다.
그리고 흔히 난(蘭)과 혜(蕙)를 병칭하지만 양자의 구별은 일언가변(一言可辨)할 수 있으니 박세당(朴世堂)의 <山林經濟養花篇>을 보면,
'一幹一花 而香有餘者 蘭也
一幹六七花 而香不足者 蕙也'
라 하였다.
한 줄기에 한 송이 꽃이 피어 향기가 넘치는 것이 난이요, 한 줄기에 여닐곱 송이 꽃이 피어 향기가 적은 것이 혜(蕙)니라.
간단히 말하면 난은 꽃이 적고 향기가 많으니 '香聞十里'라고 함이 반드시 턱없는 한문식의 과장만이 아니다. 난화(蘭花)를 향조(香祖)라 또는 제일향(第一香)이라 이름함이 어찌 이유가 없음이랴.
동국(東國)에 진난(眞蘭)이 없다 하나 호남연해(湖南沿海)의 명산에는 방난(芳蘭)이 있다는 바, 제주 한라산 속에도 글자대로 유곡방난(幽谷芳蘭)이 흔히 발견된다 하며 또 제주읍 서 20리 지(地)에 청천(淸川)이 흐르는 도근촌(道根村)에는 진난(眞蘭)이 있는데 꽃빛이 하얀 것이 더욱 아름답다 한다.
청천(菁川)의 <養花小錄>에
'生湖南沿海諸山者品佳 霜後勿傷垂根 帶舊土依古方 栽盆爲妙 春初花發 張燈置諸案上 則葉影印壁 猗猗可玩讀書之餘 可祛睡眠......'
이라 한 것을 읽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유향(幽香)에 심신이 배는 듯한 느낌이 생기게 하는 바 있다.
난(蘭)에는 춘난(春蘭)과 추난(秋蘭)이 있는데 전자는 봄에 피는 것이니 꽃과 잎이 아결(雅潔)하기 짝이 없다.
(文一平의 <花下漫筆>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