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養名言

행복은 진실하기를 요구한다

如岡園 2017. 4. 7. 19:56

 남의 불행 위에 자기의 행복을 만들지 말라. 나에게나 남에게나 따스한 온도가 통하는 것이 진실이다. 행복은 진실하기를 요구하며 진실 그 자체는 행복이 아니라도 적어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러스킨>


 진실한 사랑은 인격을 높이고 그 마음을 살찌게 하고 또 그 생활을 정화한다.   <아미엘>


 그대는 무엇을 소유하고 싶어하는가? 그대가 진실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그대의 소유물이다.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그대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적에는 아직 그대의 것이 아니다. 비록 좋은 골동품을 가지고 있기로 그 골동품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대의 소유물이라고 할 수 없다.

 훌륭한 책을 가지고 있기로 그 책을 이해하지 않고 있는 한, 비록 돈을 주고 샀다 하더라도 아직 그대의 소유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대의 참된 재산은 꽂히고 걸린 물건이 아니라, 그대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은 것을 말한다.    <괴테>


 자기를 실제 있는 그대로 보이려고 하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보이려고 애쓰는 경우 매우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가난한 사람이건 공부를 못한 사람이건 병 있는 사람이건 외로운 사람이건 그런 사람들도 그가 처해 있는 환경과 진실한 성격의 범위 안에 자기를 제한하고 있는 한은 결코 우스꽝스럽지도 추하지도 않다.

 작은 것을 크게 보이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는 척하기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고 또 창피한 꼴을 당한다.

 사람은 자기가 구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안주하고, 자기가 처리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진실을 찾을 것이 중요하다.    <레오빠르디>


 물질적인 결핍이 불행의 원인이 되고 그 도화선이 되는 수도 많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사람에게도 정신적인 불행자가 많다.

 불행의 원인은 사람에 따라서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그 근본은 대개 하나에 귀착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적어도 유쾌한 기분을 갖지 못하는 것은 모든 것을 너무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자기 자신에게 집착심이 강한 까닭이다. 주관에 치우치고 객관적인 입장이 엷은 까닭이다.

 자기 중심의 취미나 기분이나 욕망에 치우치면 자연히 적대시하는 것이 많아진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고 꺼리는 것이 많아 자연히 생활의 범위가 좁아지니 권태가 온다.

 반대로 행복한 사람을 보면 결코 자기의 기분이나 욕망이나 취미를 고집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좁은 자기 기분에만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운 애정과 넓은 흥미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은 내가 먼저 남의 흥미나 애정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기보다, 이쪽에서 자진해서 남의 일에 흥미를 갖고 남에게 애정을 베푸는 것이다. 그 결과는 남에게서도 흥미와 애정의 보답을 받고 있다. 

 사람은 가끔 고독을 호소하지만 그 스스로가 남을 배척했고, 남이 나에게 사랑과 관심을 줄 것만 바라고 자기 스스로는 남에게 관심과 애정을 베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애정이란 돈 거래 모양 타산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계산된 애정이란 받는 사람도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남의 따뜻한 우정이나 애정이 그립거든, 먼저 내가 남에게 그것을 줄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이기적으로 치우친 만큼 사람은 불행하게 되는 것이 원칙이다.    <버터란트 러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