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잔치의 표상 생일잔치

如岡園 2017. 9. 13. 21:44

  잔치라 하면, 으례 기릴 만한 경사가 있을 때 음식을 차려놓고 여러 사람을 청하여 같이 먹고 즐기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잔치를 벌일 경사라면 흔히 결혼식을 떠올리겠지만, 해를 바꾸어 가면서 일생을 통하여 두고두고 차려 먹는 잔치는 아무래도 생일 잔치가 될 것이다.

 백일잔치, 돌잔치, 환갑잔치, 칠순잔치 하면서 출생에서부터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을 기념하는 일로 이름 지어 행사를 치르게 되다가 보니 인생역정(人生歷程)을 밟아가는 이정표(里程標)인 것 같기도 하여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인생사고(人生四苦) 속에서도 먹고 즐기면서 살아간다는 일이 가장 중대한 과제였기에 잔치는 인생살이에서 불가피한 존재 양상이었다. 

 자손 번성을 삶의 지상(至上)의 가치로 인정하고 배고프고 어렵게 살았던 시대의 잔존물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잔치는 양태를 바꾸어가며 끈질기게 이어 간다.

 먹고 산다는 현실적 문제, 잔치로 인해서 즐겁고 먹고 즐기는 자리에 임하였다는 안위, 인간의 유희적 본성이 연희(演戱) 모티브를 이루고 소박한 오락 취향과 잔치 자체의 유흥적 놀이가 잔치를 흥겹게 한다.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백일잔치, 돌잔치, 자손들이 연만한 어버이를 위하여 베풀었던 회갑연이나 칠순잔치에서 펼쳐지는 취흥과 담론과 축복은 마땅히 즐길 수 있는 본성적 삶의 현장이다.

 출생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고귀한 창조이다. 창조의 영광을 축복하고 기린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이 창조의 영광은 모성(母性)이 누려야 할 특권이기도 하다.

 3일의 행사는 영아가 바깥 세계에 적응되는 인생출발의 시점이다. 그리고 한이레, 두이레, 세이레로 이어지는 삼칠일(三七日). 단군(檀君) 고사(古事)에서 곰이 사람으로 된 것도 삼칠일이다.

 그리고 백일(百日), 신생아 본위의 첫 경축일이다. 첫돌처럼 원근 친척 하객을 모셔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해마다 돌아오는 탄생일이 생일이다.

 생일을 거듭할수록 어린이는 성장하고 관례를 거쳐 결혼을 하는 것으로 인생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백일과 첫돌에는 잔치를 베풀었으나 해마다 오는 생일에는 그날을 기억해 두는 정도로 집안식구끼리 국과 밥을, 그리고 떡을 해먹는 정도다.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늙어가다가 육순이 되면 환갑이 된다. 갑이란 갑자(甲子)를 일컫는 것이니 옛날 기준으로 보면 노소의 분수령이 되는 연령이었으니 자식들이 잔치를 베풀어 줄 만했기에 환갑잔치라 이름을 지어 특별한 생일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이날에 환갑이 되는 주인공 부부는 상(床)을 받고 자손과 하객들의 인사를 받았다. 첫돌에 돌상을 받고 환갑(還甲)에 수연상(壽宴床)을 받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생일잔치는 백일잔치, 돌잔치, 환갑잔치로 대표된다. 

 수명이 연장되어 70세의 고희연(古稀宴)도 생겨나고, 특별한 잔치를 베풀지는 않지만 희수(喜壽), 팔순(八旬), 미수(米壽), 구순(九旬)의 생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61세 환갑잔치가 사라진지는 오래고 나이에 대한 별난 이름을 지어 오랜 나이를 들먹이지만 이것마저 자가발전(自家發電)이다 싶어 고소(苦笑)를 머금게 된다.


 금년으로 팔순이 된 내가 자식들로부터 팔순잔치의 제안을 받았을 때, 평소 생일잔치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나는 묘한 감정의 파장을 일으켰다.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면서 짚고 넘어가는 인생 이정표의 한 표석에 들어섰다면 그만이지만, 출생 그리고 그 생일의 축복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고, 감당할 수 없는 번거러움이라는 생각에서 부담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나의 출생은 우리 가정에서 너무 큰 축복으로 야단스러웠지만 역으로 내 개인적인 입장에 있어, 어려서는 붉은 팥이 섞여있는 찰밥에 역겨운 미역 냄새가 나는 미역국을 먹는 날이어서 싫었고, 자라서는 어깨를 억누르는 짐으로 작용해 의식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연간 열 번이 넘는 조상의 기제사(忌祭祀 )를 챙기다가 보면 여남은 식구들의 생일까지 어떻게 번번이 차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주장이었다.

 그러다가 자식들을 낳게 되고 성인이 되어 손자 손녀가 생기게 되면서부터 그놈들의 생일을 기념해 주어야 했으니 '해피 버스데이'를 구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고, 그 본을 보여야 했으니 억지춘향격으로 생일을 차려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런 경우 내자(內子)의 작용도 한 몫을 한다. 자녀들의 교육상으로 봐서도 칠순, 팔순을 찾아먹어야 한다는 논리인 데다다른 사람들에게 말대답도 된다는 것이니 그럴 법도 하다.

 칠순, 팔순 생일을 기하여 그 흔해빠진 해외여행도 자랑거리가 되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이미 어지간히 나다닌 데다 이 나이에 싱거운 노릇일 뿐이고, 은근히 이럭저럭 써놓은 그들을 엮어 책이나 하나 펴낼까 했지만 그마저 출판공해가 아닐까 하여 접고 말았다. 

 아들 딸 자식들 내외, 손자손녀들이나 모아 저녁이나 한끼 먹자 하고, 다른 행사는 거두절미(去頭截尾)한 것이 통쾌하였다. 인생을 이만큼 살았으니 이름 낼 일도 없고, 살아온 찌꺼기 남겨 두어 봤자 후손들 청소하기만 번거로운 것 아닌가.

 친면(親面)도 없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거래관계에 있는 상대로부터 생일축하 메시지를 받을 때처럼 싱겁다는 느낌이 들  때는 없다. 자신의 생일 축복마저 잊고 있는 입장에서 생일 축하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끼니마저 이어가기 어려웠던 시절, 생일 밥상 그것은 영광의 성찬이고 잔치의 표상이었다. '생일날 잘 얻어먹으려고 사흘을 굶어랴' 하는 말도 있고, '생일 밥 한 끼 놓치면 평생 찾아먹지 못한다'고도 했으니 한 끼 생일 밥상 생일잔치는 소중했다.

 연만(年滿)한 어버이를 위하여 베푸는 생일잔치 하나 없고, 그런 잔치에 끼어들어볼 기회마저 없을 때 그 허전함, 소외감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인간의 유희적 본성이 연회 모티브를 이루고 소박한 오락취향과 잔치 자체의 유흥적 놀이가 식생활에 대한 잠정적 갈구와 결부되어 인간을 본능적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가.


 팔순을 기하여 직계 가족을 모아 최소한의 잔치 본능을 자극하고, 조금은 과분하다 싶은 밥값을 치르도록 한 뒤, 가족 동반 가능한 노래방으로 몰아붙였다. 손자 손녀들의 유희 본능도 들여다보고 할아비의 녹슨 낭만의 속살을 열어보이고도 싶었던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것도 아닌데 어린애처럼 치기(稚氣)를 부려본 것인데 이것이 팔순잔치의 여흥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선과 법석을 떠는 큰 잔치일수록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오붓한 잔치라서 정이 샘솟고 가슴속을 파고 드는 전율이 일게 마련이었다. 

 산수(傘壽), 팔질(八질), 질수라고도 일컬어지는 팔순의 고개에 올라서서 크건 작건 생일잔치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일생의 한 과정을 확인한다. 또 한 고비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자문해 보지만, 할 것이 없고 섣불리 무엇을 하겠다고 설쳐서도 안 되는 일이다. 망령이나 들지 말고 주변사람들에게 누(累)나 끼치지 않도록 죽을 때까지 건강이나 지켜갈 일이다.

                      (2017.7.30. 동인지<길>20호. 如岡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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