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궤택서(노櫃擇婿, 주두나무 궤로 사위를 고르다)
어떤 촌 늙은이가 그의 딸을 애지중지하여, 딸을 위하여 사위를 고를쌔,
주두나무로 궤짝을 만들고 그 궤짝 속에 쌀 쉰 다섯 말을 저축하고 사람을 불러,
"이 궤짝은 무슨 나무로 만들었고 또 쌀이 몇 말인가를 능히 알아맞히면 마땅히 딸을 주리라."
하며 여러 사람에게 널리 물었는데,
그것이 무슨 나무로 만든 궤짝이며 쌀이 얼마인지를 아무도 맞히는 자가 없었다.
연고로 해서 이럭저럭 세월이 흘러 꽃다운 나이만 먹어 가거늘,
딸이 그 세월이 무심하고 뽑히려고 모여 오는 이 없음을 답답히 여겨 드디어 어떤 한 어리석은 장삿군에게 몰래 일러 가로되,
"그 궤짝은 주두나무로 만들고 거기 넣어 둔 쌀이 오십 오 두라. 그대가 만약 정확히 말하면 가히 나의 짝이 되리라."
하고 일렀다.
그 장사군이 그 말에 의하여 대답하니 주인 늙은이가 지혜있는 사위를 얻었다 하여, 날을 가려 초례를 지내고, 혹 무슨 일에든지 의심나는 일이 생기면 반드시 그 사위에게 물어 보았다.
어떤 사람이 암소를 팔거늘,
주인 늙은이가 사위를 청하여 그 모양을 보게 하니 사위가 그 소를 보고 가로되,
"주두나무 궤요."
하고 또 다시,
"가히 쉰 닷 말을 넣을 만하도다."
늙은이가 가로되,
"그대는 망령되도다. 어찌 소를 가리켜 나무라 하느뇨?"
처가 가만히 그 지아비를 꾸짖어 가로되,
"어찌 그 입술을 들고 이[齒]를 세고 '젊다' 하고, 그 꼬리를 들고 '능히 많이 낳겠다.' 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였더니,
이튿날 처의 어미가 병이 나매 사위를 청하여 병을 보였더니, 사위가 상 아래로 나아가 입술을 들고 가로되,
"이가 많이 젊구나!"
하였고,
또한 이불을 걷고 그 뒤를 보면서 가로되,
"능히 많이 낳겠는 걸."
하니,
늙은이와 장모가 노하여 가로되,
"나무를 소라 하고, 소를 사람이라 하니, 참으로 미친 놈이로구나!"
듣는 자가 모두 크게 웃었다.
야사씨 가로되,
늙은이가 부지런히 사위를 고름에, 궤를 알아맞히어야 뽑았으니 이는 가린 것이 그 뿐이 아니요, 사위가 그 처의 가르침을 굳게 지켜 변통이 없었으니 이는 옛말에 하우불이(下愚不移)한 놈이라. 여인이 한갓 나이가 지나감을 아끼고 어진이를 가리어 뽑을 줄을 몰랐으니 세 사람의 실책이 같으니, 다 가히 후인을 경계함이로다.
<蓂葉志諧>
# 장담취처(長談娶妻, 긴 고담으로 장가들다)
옛날에 긴 고담을 듣기 좋아하는 자가 있어 집안이 심히 부요한데, 외딸이 있어 나이 차매 시집 보내게 되었거늘,
"반드시 능히 고담을 오래 하고 길게 하는 자로써 사위를 삼겠다." 하매,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시험하니, 다 얘기가 길지 못하여 툇자라.
어떤 간사하고 잘 속이는 놈이 있어 그 집 영감을 속이고자 하여, 영감집에 가서 일러 가로되,
"제가 적이 고담을 잘 합니다. 그 하도 길어서 끝이 없는 이야기이니, 영감께서 한 번 시험삼아 들어보시겠습니까?"
영감이 가로되,
"내 본시 이로써 구혼(求婚)하는지라 그대가 진실로 능하면 내가 어찌 거짓말을 하랴. 한 번 얘기해 보라."
객이 가로되,
"비록 여러 날이 지날지라도 결코 싫어하지 않겠습니까?"
늙은이가 가로되,
"길고 길면 더욱 좋고, 자못 그대의 얘기가 길지 못할까 그것만이 염려로다."
객이 재삼 굳게 약속한 다음, 해어진 옷을 걷으며 말해 가로되,
"옛날에 수많은 되놈들이 말을 타고 쳐올쌔 백만 정병이 다 능히 이를 적대치 못하는지라 이에 조정에서 능히 이를 막을 자를 구하니, 한 모성(毛姓) 가진 대신이 의논해 가로되, "오늘의 계획은 자성(子姓) 가진 자를 구하여 병정을 삼아야만 능히 이를 막겠습니다." 조정 가운데서 다 가로되, "그것은 어쩐 연고냐?" 대신이 가로되,
"자성(子姓)이란 곧 서성(鼠姓)이니 옛날에 황제가 충우를 정벌하매 여러 마리의 쥐떼가 적진의 활줄을 끊어 적을 멸하여 개선할쌔, 황제가 그 쥐들의 큰 훈공을 가상하여 상갑(上甲)을 명하고, 고려가 홍건적을 칠 때에 평양의 여러 쥐들이 또한 적진의 활줄을 끊어서 적을 섬멸하여 이기고 돌아오게 한고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당을 지어 제사지내며 그 사당의 이름을 가로되, <상갑사(上甲祠)>라 한즉 오늘의 제승(制勝)함이 자성(子姓)이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지라 드디어 쥐 한 마리를 가리어 명하여 대장을 삼은 뒤에 이에 적문을 팔도 여러 굴 속에 있는 쥐들에게 알리고 속히 기약한 날에 일제히 모이라 하니, 기약한 날이 되매 여러 쥐가 함께 모인즉 대장쥐가 단에 올라 명령을 내리어 가로되, "너희들 여러 선비는 각각 차례로써 점고하여 단상에서 부르는 물고(勿古)의 소리를 들어라." 하니, 뒤에 있는 쥐가 앞에 가는 쥐의 꼬리를 물고 나아가서 여러 쥐가 일제히 응하거늘, 이에 장수 쥐가 드디어 '물고 물고' 하니, 물며 물고의 소리가 입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여 날이 다하고 밤이 지나도 오직 가로되, '물고 물고 물고......'라 하고 오륙일에 이르러도 끊이지 아니하니, 늙은이가 이제 염증이 나서 물어 가로되, "이제 몇 개의 쥐가 남았느뇨?" 답해 가로되, "이제 오는 자는 겨우 한 고을의 쥐의 수니, 일도(一道)를 다 하자면 오히려 멀거든 하물며 팔도의 허다한 쥐일까 보오리오." 늙은이가 가로되, "길도다 길도다 이는 길도다. 그러나 한 낱 말에 지나지 않으니 족히 들을만 하지 못하도다." 객이 가로되, "끝에 가서 진실로 지극히 기발한 말이 있으나 아직 쥐들이 다 오지 못했으니 한갓 물고 물고만 하고 있습니다. 물고 물고 ......"
하고 자꾸 계속하거늘 늙은이가 이미 그 긴 얘기임을 허락하여,
"이제 그만 그치라."고 하여 또한 약속을 어기기 어려워 드디어 그 딸로써 아내를 삼게 했는데, 이따금 그 사위로 하여금 옛날 얘기를 하라고 하면 매양 물고(勿古)로 색책할 뿐이니, 늙은이가 세상을 마칠 때까지 물고의 말을 다하지 못한 것을 말하여, 이에 그 늙은이와 사위를 칭하여 '장담옹(長談翁)과 물고랑(勿古郞)'이라 하였다.
야사씨 가로되,
섭공(葉公)이 용을 좋아하여 용을 그리는 자가 오고 조문(趙文)이 칼을 즐기매 검객이 문에 차니 주인된 자의 좋아하는 바가 있은즉 기변자(機辯者)가 반드시 그 좋아하는 바로 인하여 인도하는지라. 물고랑이 가히 일컫되 잘 치고 기어히 마치는 자니, 그 또한 골계의 풍류가 아니랴.
<蓂葉志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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